[홍기표 칼럼]신성한 ‘역사’와 ‘역사교사’들의 자부심에 침을 내뱉지 말라

참 재미있는 국감이다.
‘민생 현장’을 꼼꼼히 챙기겠다는 ‘국정감사’이다.
그런 ‘국정감사’가 ‘일선 현장의 교육 내용’에 대해서까지 관심을 보인다.
한나라당의 권철현 의원이 ‘고등학교 근현대사 교과서의 서술 내용’까지 들먹거렸다.
과연 꼼꼼하게 오늘날의 ‘민생 현장’을 챙기신다고 평가(?)할만 하다.다시 한번 그를 통해 우리나라 국회의원은 정말 예측 불가능의 존재라는 사실을 확인할 뿐이다.

소위 정치자금이라는 허울 좋은 명분으로 포장된 부정부패의 사슬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표만 얻어 당선되기 위해서라면 지역감정이라도 조장해야 하고, 자신에게 불리하면 남 헐뜯기를 통해 전세 역전시키고, 그래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당선만 되면 된다는 사고방식을, 2세 뿐만 아니라 전 국민에게 가르치는 국회의원 나리들 아니신가.

자라나는 새싹들에게 오히려 훨씬 심각한 폐해를 일으키며 당선되는 국회의원 나리께서 언제부터 일선 고등학교의 교과서까지 관심을 다 가지셨는지... 더 나아가 그 내용이 ‘편향적 시각을 담고 있어 잘못됐다’는 주장까지 하시다니...

국회의원은 관두시고 고등학교 역사교육을 직접 담당하시던가. 아니면 감히 고등학교 역사교사들은 전부 배알머리 없는 기계라고 하시던가.

둘 중의 하나를 택하실 일이다.
정말 눈뜨고 못 볼 일이다.
기막혀 어안이 벙벙할 지경이다.

그러면 우리나라 역사 및 사회 교과서에 본인의 당선과정에 대한 전략과 전술의 문건들을 확보하여 이를 토대로 대한민국의 국회의원이 되려면 이래야 한다고 가르치겠다면 무어라고 말하겠는가.

이는 결단코 정략적 차원의 문제제기라고 밖에는 볼 수 없다. 아니면 아직도 군사정권 시절의 왜곡 편향된 시각으로 우리 역사를 이해하는 무식쟁이라고 자신을 홍보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한나라당 권철현 의원이 며칠 전 교육부 국정감사장에서 참 희한한 문제제기를 했다.

‘금성출판사’ 간행, 고등학교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의 현대사 분야 서술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그가 제기한 교과서 내용상의 문제는 대체로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첫째, ‘민중사관’적 관점에서 서술했다.
둘째, 남한에 대해서는 비판적이지만 북한에 대해서는 덜 그렇다.
셋째, 해방 후 경제 성장의 의미가 축소되어 있다.
넷째, 결과적으로 ‘반미․친북․반재벌’의 내용으로 서술되었다는 것이다.

이상 권 의원의 주장에 일일이 교과서의 내용을 제시하고 반박하고자 했으나, 교과서 대표저자인 한국교원대 김한종 교수가 곧바로 다시 조목조목 반론을 제기했기에,
김 교수의 입장이 ‘현장교사’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본란에서는 거론치 않는다.

혹시라도 권 의원의 주장에 솔깃하신 일반 국민들을 위해서는 오히려 김한종 교수의 반론을 주의 깊게 음미하셨으면 한다.

그 보다도 권 의원의 ‘역사인식’에 일단의 문제가 있음을 먼저 밝히고자 한다.
일선 고등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치는 사람으로 도저히 묵과할 수 없어서 한 말씀드린다. 아니 ‘역사’를 가르치다 ‘역사’를 더 공부해야겠다고 아직까지 대학캠퍼스를 들락거리는 어설픈 ‘역사학도’의 입장에서 따끔한 충고를 드리겠다.

위의 주장 가운데 한 가지만 예를 들어 보자.
권 의원은 ‘역사교과서’가 ‘반미․친북․반재벌’의 시각으로 서술되었다고 했는데,
그러면 역설적으로 ‘친미․반북․친재벌’의 내용으로 서술되어야 한다는 것인가?
더 나아가 ‘비자주․반통일․재벌비호’의 내용으로 우리 역사를 서술해야 한다는 것인가?

감히 역사 선생을 대표하여 밝히건대,
고등학교 근현대사의 수업 내용에는 친미도 반미도 아닌, 친북도 반북도 아닌, 친재벌 반재벌도 아닌, 오로지 과거의 사실과 사건을 가지고 "이 경우는 친미인데 이런 문제점과 저런 국익에 보탬이 되는 결과도 낳았어. 이 경우는 친북인데 저런 문제점과 이런 고민을 우리에게 안겨다 주었어. 재벌 경제의 탄생은 이런 배경 속에서 이루어졌고, 이에 따라 우리나라의 경제구조는 이렇게 됐으며, 그와 같은 경제 운용이 우리나라 경제에 이런 긍정적, 부정적 결과를 초래했단다."

최소한 이렇게 가르치고 있으며, 아이들이 직접 다양한 평가를 내리도록 토론까지 유도하며, 아이들 간의 서로 다른 주장이라도 경청하라는 민주적 시민자세까지 가르치려 노력하고 있다.

그런데 권 의원의 역사인식대로라면 위와 같이 가르치면 절대 안 되겠네요.

또한 권 의원께서는 우리나라 교육부에서 검인하고, 우리나라 전체 고교의 절반 정도에서 역사교사들의 논의를 거쳐 채택된 교과서를 불신하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 교육부를 불신하고, 우리나라 전체 고교 역사교사의 절반 혹은 그 이상을 불신하고 있다고 밖에는 생각되지 않는다.

우리나라를 소위 이끈다는 국회의원이 우리나라 역사교사 절반 이상을 불신하고 있으니 자라나는 2세 교육에 심각한 문제점이 아닐 수 없다.
이는 당신의 자식에게 너희 학교 역사교사는 믿을 수 없다 라고 교육시키는 꼴이다.

도대체 이 나라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인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니 정략적 차원에서 이 문제를 들고 나왔다는 의혹을 떨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면 더욱 문제 아닌가. 이제는 정치권에서 객관적 학계의 입장까지 좌지우지하겠다는 발상에 다름 아니다.

역사를 오늘날 정치권의 이해관계에 따라 쓰면 뱉고 달면 삼키는 수단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바로 그런 시절이 군사정권시절의 교과서였다.

5․16을 혁명이라 하고 4․19를 단순히 의거라고 하는 가당치도 않는 역사 말이다.
혼란에 빠진 나라를 구해내고 민족중흥을 이루었다는 박정희 찬양가가 국사교과서에 실려 있던 시절의 역사 아닌 역사 말이다.

국민적 합의 없이 비정통적으로 등장한 정권을 놓고, 그 업적을 감안하여 긍정적 측면만 가르치면 안되냐는 그런 역사 말이다.

군부세력이 제공한 ‘혼란의 도가니’, ‘빨갱이 해방구’, ‘북한 공작원의 침투설’ 등등의 허위 보도자료를 그대로 게재한 언론과 그들 추종세력이 ‘광주폭동’이라고 주장한 그런 역사 말이다.

이제 우리나라의 역사교사는 이상의 내용을 바로 우리네 역사라고 가르치는 선생이 되어야겠네.

군사정권시절의 무식한 역사인식이었는데, 아직까지 그런 시각에 물들어 있으니 참으로 가소롭소. 불행히도(?) 당신의 그런 ‘같지도 않은’ 역사인식을 이상 우리네 교육현장에서는 받아들일 수가 없어요.

역사란 결코 그런 것이 아니다.
쓰면 뱉는 것이 아니라 고통과 인내를 감안하여 교훈으로 삼고, 달면 얼싸 좋다 하고 삼키는 것이 아니라 냉철한 분석을 통해 더욱 신장시키도록 가리키는 것이 역사이다.

경고하건대
두 번 다시 ‘역사’ 및 ‘역사교과서’ 및 ‘역사교사’에 대한 왜곡된 사실을 강요하지 말라.

과거 군사정권․독재정권 시절에는 가(可)했는지 몰라도 지금 같이 민주화된 사회 속에서 그대들의 정략(政略)이 더 이상 대한민국의 역사가 될 수는 없다.

신성한 ‘역사’와 ‘역사교사’들의 자부심에 침을 내뱉지 말라.가소롭다 못해 당신과 같은 사람과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다는 현실이 비탄스럽기까지 하다.

역사학자들의 진지한 연구와 냉철한 분석을 왜곡시키지 말라.
그대들이 흔히 하는 말로 과거의 역사는 ‘학자들의 연구’에 맡기고, 2세들에 대한 우리나라의 ‘역사교육’은 현장의 ‘역사교사’에게 맡겨라.

더 이상 자라나는 2세들에게 어설픈 ‘역사 아닌 역사’로 혼란을 초래케 하지 말라.
묵묵히 대한민국 2세들에게 진정한 ‘우리의 역사’를 가르치는 교사들의 힘을 빼지 말라.

그 잘난 정권 획득에 여념이 없을 당신네들에 비하면, 우리네 역사교사들은 질적으로 다르다. 2004년 오늘날 학교 현장에서 ‘우리의 역사’를 가르치는 ‘역사교사’들의 자부심은 예전과 다르다.

더 이상 정권 홍보에 내몰리지도 않으며, 더구나 당신이 주장하고 있는 쪽이든 아니든 편향된 시각의 ‘역사교육’은 이제 대한민국에서 설 자리가 없다.

해괴망측한 정치적 논리로 ‘잘나기도 하고 못나기도 한, 그래서 우리 모두에게 교훈을 주는 신성한 역사’에 감히 칼질을 하려 들다니 하늘이 무섭지도 않은가.
아니, 후손들에게 부끄럽지 아니한가.

2004. 10. 6(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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