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 의원 지역구 포기, 정치개혁 주도권 잡아 큰 그림 그린다?

현역 6선 의원으로 한나라당 상임위원인 양정규 의원이 8일 내년 17대 총선에서 지역구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밝혀 정치권에 상당한 파장이 일고 있다.

우선 당장 양 의원의 불출마 선언으로 북제주군선거구(물론 선거구 획정 문제가 결론은 나지 않은 상태이나)가 무주공산이 됐다는 점 외에 양 의원의 불출마 선언이 몰고 올 한나라당내 공천 물갈이 파장 역시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또 양 의원의 지역구 불출마 선언이 양 의원 스스로가 밝히듯이 정치개혁과 총선승리를 위한 아무런 전제조건이 없는 순수 백지상태의 '백의종군'인지, 아니면 '공천혁명'을 밝힌 최병렬 대표와 일정한 교감 하에 자신이 먼저 '읍참마속'의 심정으로 불출마를 선언해 최 대표에게 힘을 실어준 후 17대 이후의 큰 그림을 준비하는 업그레이드된 정치적 행위인지에 대해서도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양 의원은 지난 8월부터 이미 지역구 불출마를 밝혀왔다

양 의원이 불출마선언은 사실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한나라당은 물론 여야 정치권에서도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로 언제 이를 공식적으로 선언하느냐는 문제만 남아있었다.

양 의원은 이미 이번 정기국회가 끝나면 불출마 선언을 하겠다고 측근들에게 밝혀왔으나 최병렬대표의 '공천혁명' 발언으로 그 시기가 다소 앞당겨졌을 뿐인 셈이다.

양정규 의원은 물론 지난 16대 재선거에서 "이번에 당선되면 다음에는 절대로 나오지 않겠다"고 밝혀왔다. 그러나 재선거를 통해 가까스로 국회에 입성, 6선 의원이 된 후 불출마선언을 간접적으로 내비친 것은 지난 8월15일이었다.

당내 중진의원 중 최초로 현역의원 '물갈이론' 제기

이 때는 원희룡 남경필 의원 등 한나라당내 소장파 의원들 사이에서 '재창당' 발언이 공공연히 나돌던 시점이었다.

양 의원은 이날 "새롭고 유능한 인물이 당에 대거 영입돼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내년 총선에서 공천물갈이가 필요하다"며 공천 물갈이론의 첫 신호탄을 쏘았다. 이 때만해도 당내에서는 양 의원의 발언에 대해 반신반의 하는 정도였다.
양 의원은 16일에도 "후진들에게 지역구를 양보하겠다"며 불출마 의사를 밝혔었다.

그러나 양 의원의 발언이 있고 난 후 9일만인 24일 고향 후배인 원희룡 의원이 마치 양 의원의 발언을 기다렸다는 듯이 <오마이뉴스>와 인터뷰를 통해 "내년 총선에서 60대 이상은 힘들다. 한나라당에서 용퇴하는 현역이 무더기로 나와야 한다"며 '총선 물갈이론'을 제기해 한나라당내에 일파만파의 파문을 던졌다.

이 때부터 최 대표와 최대표가 기획위원장으로 전격 발탁한 원희룡 의원, 그리고 이회창 전 총재의 최측근이면서도 대표경선에서 최 대표를 지지한 양 의원간에 "모종에 컨센서스가 있었던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었다.

여기에서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한나라당내 제주출신 의원 중 양정규 원희룡 의원(원 의원은 지역구가 서울이기는 하지만)은 물갈이론을 주장한 반면, 정치발전특위 위원장을 맡은 현경대 의원은 "인위적 물갈이는 안된다"며 상향식 공천제 보완주장을 일축했다는 점이다. 즉 제주출신 국회의원 3명이 물갈이론의 한 가운데 서 있으면서 밀고당기는 파워게임을 벌였다.

소장파와 중진의원 사이에서 물갈이론 속도조절

양 의원은 그러나 이때도 소장파와 중진의원들 사이에서 고무줄을 댕겼다가 풀어줬다 하는 방법으로 적절한 속도조절을 하며 특유의 정치력을 과시했다.

양 의원은 원 의원의 발언파문이 한창이던 8월 28일 당 중진모임에서는 "국민이 직접 선출하는 대의정치에서 인위적으로 선을 긋는 게 어디 있느냐"며 중진모임들을 위로하기도 했다.
그리고는 "자, 고려장 후보!"라며 중진들을 위한 건배제의를 하기도 했다.

그리고 9월 들어서면서 물갈이론은 한동안 잠잠해지다가 특검법 파동으로 단식농성을 한 최병렬 대표가 서울대병원에 입원중인 7일 기자간담회를 갖고 '영남 현역의원 절반 물갈이' 방침을 밝혀 당내에 큰 파문이 일었다.

7일 최 대표의 '공천혁명'은 양 의원을 염두에 둔 발언

최 대표는 "총선을 앞두고 물갈이가 심할 경우 '공천혁명'이라고 하는데 그런 수준에서의 얘기라고 보면 된다"며 "당내에서도 물갈이하자는 데는 컨센서스(공감대)가 있다"고 말했다. 최 대표가 말한 컨센서스가 바로 양 의원을 염두에 두고 한 발언인 것이다.

양 의원은 그리고 이날 기자들은 만나 "내일(8일) 중진의원들과 당 발전 방안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당명변경과 중앙당 축소 등 혁신적인 당 개혁을 요구하고 내 자신은 지역구 불출마 선언을 하겠다"고 밝혔다.

양 의원이 내년 총선 지역구 불출마 선언을 한 것은 "내년 총선에서는 힘들지 않겠느냐"는 현실적인 판단도 충분히 고려됐다는 게 주변의 이야기다.

양 의원은 지난 2000년 16대 총선에서 민주당의 장정언 의원에게 고배를 마셨고, 장 의원이 선거법 위반으로 의원직을 상실해 재선거를 치렀으나 2002년 8월 재선거에서 2만1226표를 얻어 2만563표를 얻은 민주당 홍성제 후보를 600여표차로 간신히 이겨 혼쭐난 경험을 갖고 있다. 힘든 정치적 모험보다는 6선의원으로 후배를 위해 길을 터 준다는 정치적 명분을 확보하자는 판단이 짙게 깔려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후진양성.정치개혁' 두마리 토끼를 노린 고단수 정치 액션

여기에다 1967년 34세의 나이에 정계에 입문한, 당내에는 몇 없는 3공화국 의원으로 어차피 물갈이론의 표적이 될 바에는 오히려 지역구를 포기하면서 당내 정치개혁의 이니셔티브를 주도해 나가면서 차후를 대비하는 게 명분과 실리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는 계산을 한 것으로 보여진다.

6선 의원으로 36년 정치무대에서 활동하면서 이회창 전 총재의 최측근으로 활약한데 이어 최병렬 대표의 체제에서도 개혁파트너로 나설 정도로 정치역량을 발휘하면서 '정치 9단'이라고 불리는 양 의원이 과연 이번에 어떤 카드를 내 보일지 제주지역은 물론 여의도 정가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한편 양 의원은 이날 '제주도민에게 드리는 말씀'을 통해 지구당 포기 외에서 도지부위원장과 중앙당 상임운영위원직도 내 놓겠다고 밝혔으나 "내년 총선을 대비해야 한다"는 당 안팎의 강한 만류로 당직은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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