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남 칼럼]나를 위래 노인을 조종하는 정치적 패륜은 더욱 역겹다

'노인은 걸어다니는 도서관'이라는 말이 있었다.
아프리카에서는 노인이 세상을 떠나면 "도서관이 사라졌다"고 서러워한다는 이야기도 있다.
세파에 부대끼며 살아온 노년층의 굴곡 심한 인생 경험과 거기서 짜 올린 풍부한 식견이 도서관의 서책처럼 빛나는 삶의 지혜로 펼쳐진다는 뜻이다.

사실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징검다리나 다름없는 지혜의 전수자로서의 노년층은 그래서 아직도 우리가 소중하게 보듬어 안아야 할 인륜적 가치다.

노인 계층의 경륜과 지혜는 '오륙도'니 '사오정'이니 '삼팔선'이니 하며 '젊은 노인층'을 양산하는 시대적 상황에도 불구하고 그 가치가 떨어지지 않는다.
지혜는 삶을 더 윤택하고 풍부하게 가꾸는 자양분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무차별적으로 세대의 벽을 무너뜨리며 현란한 색깔에 취해 엽기적인 것만 탐닉하는 젊은이들의 가공문화(架空文化)가 시대 흐름을 압도해도 노인층에 대한 '신뢰와 존경'을 저버려서는 안되는 이유다.

경험에서 우러나는 속 깊은 노인의 예지와 분별력은 재치와 순발력 넘치는 젊음에서 나오는 용기와 패기 못지 않게 중요하다.

노인이 걸리기 쉬운 병은 "탐욕"

그러나 노년층에 대한 '신뢰와 존경'은 무조건적 일수가 없다. 노욕(老慾)을 다스릴 줄 아는 극기와 절제와 인내가 전제되어야 한다.

'실낙원'의 시인 영국의 '존 밀턴(1608-1674)'은 노인이 걸리기 쉬운 병을 '탐욕'이라 했다.
청년기에는 쾌락을 쫓고 장년기엔 야심을 쫓는 것처럼 노년기에는 욕심을 쫓는다는 것이다.

지혜를 아름답게 경륜해야 할 노년이 '탐욕의 밥그릇'에만 연연한다면 인생의 황혼은 더욱 지저분해지고 영혼은 더욱 어두워 질 뿐이다.

인생의 끝물에 사회적 중심을 잡지 못하고 정서적 편향성으로 세상을 요리하는 것 역시 아름답지 못하기는 마찬가지다.

최근 한 노인단체가 주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 '전.현직 지사 선거법 위반 재판 관련 선처 호소 탄원서 서명 운동'이 사회적 논란을 부르는 이유도 여기서 벗어날 수가 없다.
서명주도 노인들의 의도가 순수성을 담보 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 노인단체 등 도내 일부 관변단체 등에서는 선거법 위반 사건과 관련한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전.현직 지사 구명 탄원 서명 작업을 벌여 왔다.

늙음보다 생각의 낡음이 문제

일각에서 이들 특정인 비호 세력으로 분류되는 관변 단체에서는 1심 재판이 진행될 때에도 재판부에 "전현직 지사 선처" 탄원서를 제출해 논란을 빚었었다.

탄원서 내용에는 전.현직 두사람을 짜깁기로 끼워넣어 선처를 호소하는 꼼수를 부리고 있었지만 행간에는 특정인에 대한 편향성이 녹아 흐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객관성과 순수성이 의심받는 대목이다.

그렇기 때문에 노인네들이 아무리 순수성을 강조하며 "화해와 상생을 위한 자발적 서명운동"이라고 강조해도 도민적 설득력을 얻지 못하는 이유다.

물론 전.현직 두사람은 이와 무관함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도민사회에서는 "누군가의 리모콘에 의해 조종되는 교묘하게 계산된 기획작품이며 관변단체는 그 꼭두각시 일뿐"이라는 시각이 팽배하다. 그렇다면 누구의 리모콘일까. 심증은 간다. 도민들은 이미 어느쪽 장난인지 어림하고 있다.

진정 제주발전을 위한 길은 불법행위에 대한 선처 호소가 아니다. 진실을 밝혀 옥석을 가려달라는 것이어야 했다.
그래야 "무슨 짓을 해서라도 당선만되면 그만"이라는 구역질나는 타락선거 풍토를 바로 잡을 수가 있다.

특정 비호 세력의 조직적 음모와 야비한 술책에 의해 법의 정의와 법관의 양심이 유린된다면 공명선거 문화는 백년하청(百年河淸)일 뿐이다.

노인들이 빠지기 쉬운 오류는 '나이의 늙음'에 있지 않다. '생각의 낡음'에 있다. 여기서 벗어나야 한다.

따라서 순수성이 의심되는 서명운동은 당장 그만둬야 한다. 다른 사람에 의해 조종되는 노년은 비참해 진다. 내가 살기위해 노인들을 권모술수의 앞잡이로 조종하려는 정치적 패륜은 더욱 역겹다. 그래서 서글프고 가슴아프다.

은빛 휘날리는 아름다운 실버. 노경(老境)에 이르러 평생의 지혜를 올곧게 엮는 맑은 노익장(老益壯)이 보고 싶다. 이 12월에는.

<김덕남의 대기자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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