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중계탑 교체 공사로 오름 비탈이 이리저리 파헤쳐지고 있다

▲ 오름 정상에 빽빽하게 자리잡은 방송중계탑과 통신기지국 모습

오름학교의 믿음직한 기자, '구절초' 민주야!

잘 지내고 있겠지?
올해 초에 가족과 함께 스웨덴으로 떠났던 네가 고국에 돌아올 날도 이제 멀지 않았구나. 네가 돌아오는 대로 '천리길 친구' 모임을 갖고 1박2일 여행을 함께 떠났으면 좋겠어.

네가 스웨덴으로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나들이 갔던 골오리오름(견월악)을 기억하니? 제주시에서 서귀포를 잇는 11번 국도를 따라가다 보면 제주마 육성목장이 나타나고, 그 동쪽에 세 봉우리로 이어진 오름.

▲ 사진/비탈을 따라 흘러내린 흙
오름 꼭대기엔 커다란 방송중계탑과 통신기지국이 줄줄이 세워져 있지. 오름 모양이 개오리(가오리)처럼 생겼다고 해서 '개오리오름'이라고 붙였다는 데, 이에 대해 제주방언을 연구하는 오창명 박사는 "두 오름이 나란히 누워있는 쌍둥이 오름"이라서 '골른오름' 또는 '골오리오름'이라 부르는 게 맞다"라고 얘기하고 있어.

한라산을 비롯한 오름들이 하얗게 눈으로 뒤덮였던 그 날, 우리는 골오리오름을 찾았지. '눈 만난 강아지' 마냥 우리는 정말 즐거웠어. 눈싸움을 하고, 눈썰매를 타고, 서로 넘어뜨리고, 눈 위에 벌러덩 드러누워 요가도 하며 즐거운 하루를 보냈어. 다가오는 겨울 큰 눈이 내리면 다시 꼭 찾아오자고 약속도 했잖아.

▲ 사진/공사장 주차장이 돼버린 오름 언덕 공터


그런데... 민주야...
얼마 전에 골오리오름을 찾았던 나는 커다란 충격을 받았단다. 이미 방송중계탑과 통신기지국 따위 커다란 쇠말뚝이 들어서면서 마구 짓밟혀진 오름 꼭대기엔, 또 다른 공사가 진행되면서 그 주변이 더 크게 망가지고 있었어.

모 방송국 중계탑 교체 공사인데, 대형 트럭이 드나들기 위해 길을 넓히고, 언덕 위에 있는 공터는 주차장 삼으려고 더 넓혀 놓았어. 문제는 땅깎기(절토)를 하면서 산비탈로 흘러내린 흙이 나무 아래쪽을 덮어버려 나무의 성장을 가로막고 있고, 비탈이 침식되면서 깊이 패어 들어가고 있다는 거야. 저대로 놔두면 골짜기가 되어 수많은 나무들이 생명을 잃을지도 몰라.


▲ 사진/철탑 공사로 더욱 넓어진 길

공사를 진행하는 방송국이나 이를 허가해준 자치단체에선 공사가 끝난 뒤 복구하면 되는 거 아니냐 하겠지만, 이는 자연을 한 번 훼손하면 결코 본래 모습으로 되돌릴 수 없다는 걸 모르는 어리석은 생각이야.

민주야, 네가 스웨덴에서 돌아오면 그곳을 다시 찾고 싶구나. 상처투성이가 된 오름을 찾아 그 아픔을 함께 나누고 싶어. 그리고 그 아픔을 낫게 하기 위해 미래세대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얘기를 나누고 싶단다.

아무쪼록 얼마 남지 않은 스웨덴 생활 잘 마무리하고, 고향에서 밝은 모습으로 만나길 바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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