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문화적이고 반생태적 공원계획, 문화센터는 전면백지화해야

지난 10월 7일~9일까지 제주한화리조트에서 열렸던 제4회 전국시민운동가대회에 참가했던 문화연대 지금종 사무총장이, 4`3평화공원을 방문하고 느낀 소감을 제주의 소리에 보내주셨습니다.  원고를 보내주신 지총장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리며, 이를 계기로 바람직한 4.3평화공원 조성을 위한 토론의 장이 다시 열리게 되기를 기대합니다.(편집자 주) 

올해는 제주에서 시민운동가대회가 열림으로써 평소 고된 업무에 시달리는 시민운동가들이 조금은 들뜬 마음으로 제주를 찾은 것 같다. 물론 시민운동가대회가 놀기 위해 치러지는 건 아니지만 도시에서의 찌든 일상에서 벗어나 제주의 맑은 공기와 풍광을 대하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기에 충분했다.

더욱이 으레 도착해서 짐을 풀고 토론 등 정해진 프로그램을 시작하던 기존 관행에서 벗어나 오름을 비롯한 제주의 생태와 4.3유적지 등을 방문하는 일정으로 시작한 것은 신선하고 즐거운 시도로 평가된다. 이런 일정 덕분에 시민운동가들이 제주에 대한 이해가 보다 깊어졌으며, 따라서 한껏 흐뭇한 기분이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신혼여행을 비롯해 이런저런 일 때문에 제주를 10여 차례나 방문한 적 있는 나 또한 그동안 미처 가보지 못한 곳을 둘러보며 새삼 제주의 아름다움에 빠져들었다.

그런데 이런 기분은 마지막 방문장소인 제주 4·3평화공원을 둘러보고 난후 순식간에 깨져 버렸다. 공원 조성이 너무나도 비문화적이고, 반생태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곳을 방문하고 느낀 점을 몇 가지 지적하고자 한다.

첫째, 불필요할 정도로 규모가 큰 공원을 조성하고 있다는 점이다. 리플릿에 따르면, 위령탑과 위령제단, 사료관, 수변공간, 문화센터, 화해의 장, 어린이 놀이공간, 야외공연장, 조각공원 및 수목원 등 기능과 성격이 다른, 매우 많은 시설 조성을 계획하고 있다.

이 지점에서 도대체 공원 조성의 목적이 무엇인가를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이는 새삼 거론할 필요조차 없는 이야기지만 4·3의 희생자들의 영령을 위로하고, 다시는 이러한 비극이 재발되는 것을 막을 수 있도록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고, 이를 사람들에게 알리고 느끼도록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와 무관한 문화센터, 어린이 놀이공간, 조각공원 등이 포함된 현재의 조성계획을 봤을 때 본래의 조성 취지와 목적에 충실하기보다는 어설픈 관광지를 조성하려는 것이 아닌가하는 의구심을 사기에 충분하다.

이는 관광이 제주 지역경제에 중요하다는 걸 감안해 백보 양보 한다해도 납득하기 어렵다. 안타깝게도 이러한 얕은 수가 결코 먹힐리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역사적 장소는 이 곳을 방문한 사람들이 무엇을 느끼고 돌아가도록 할 것인가가 장소 조성의 핵심이다.

따라서 많은 돈을 들여 웅장하고 화려한 시설과 조형물, 편의시설을 조성할 것이 아니라 충실한 역사적 재현과 사료정리, 방문객 체험시설 및 프로그램 확보 등 장소의 고유성을 최대한 살리는 철학적이고 미학적 장치를 위해 더욱 골몰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오히려 관광객을 유인하는 부수적 효과를 낳을 것으로 생각된다.

둘째, 전체 조성계획과 별도로 문화센터와 야외공연장 등의 실효성을 특별하게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생활공간과 엄청나게 떨어져 있는 산중턱에 문화센터를 지어서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지 납득이 가질 않는다. 한국의 문화시설 운영현황에 비추어 볼 때 도시 내에 있는 문화시설들도 운영이 어려운 사실을 감안하면 이런 계획은 거의 미친 짓이다. 아마도 대부분의 나날을 시설관리만 하기 십상일 문화센터 등의 조성계획은 전면 백지화 해야 한다.

셋째, 반생태적이라고 주장하는 데에는 다음과 같은 근거에서이다. 우선 한라산의 아름다운 자연지형을 최대한 살려 공원조성을 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굳이 불도저로 평지화하고 거기다 잔디를 심을 필요가 없었다는 것이다. 건물이 들어설 자리 등 불가피한 부분만 손질하면서도 얼마든지 공원조성이 가능하다. 한라산의 자연스러운 풀과 나무를 베어내고 잔디를 심는 것도 이해하기 어렵다.

또한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수변공간을 인공적으로 조성하는 것이 필요한 일인지 생태계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지도 심각하게 검토해야 할 것이다. 이밖에도 위령제단을 지나치게 위압적으로 조성한 것, 입구를 낮게 만들어 자연스레 고개를 숙이도록 유인한 것도 유감이다. 이는 4·3영령들을 신성시 하게 만들어 방문자들에게 경원감을 주기 때문이다.

문제제기는 간략하지만 이를 수용하는 측에서는 부디 크게 느끼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는 제주 평화공원이 험난한 역사적 터널을 거치며 실현된 매우 중요한 역사적 공간이며, 총사업비 993억 원이라는 제주도민과 국민의 혈세로 만들어지는 공공 자산이기 때문이다.

제주 현지 시민에 들은 바 이 공원을 조성하기 위해 유럽 등 다른나라의 유사시설을 견학하고, 참조해 계획을 세웠다니 더욱 안타깝다. ‘귤이 위수를 넘으면 탱자가 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지리적 조건과 사회, 역사적 맥락이 다른 나라의 것을 벤치마킹하는 것은 자칫 내용과 형식의 불일치를 초래한다는 사실을 염두에 둬야 할 것이다.

물론 아직 공사가 끝난 것은 아니지만 현재의 상태와 조성계획이 담긴 안내 리플릿을 참조해 볼 때 더욱 악화되면 되었지 결코 나아질 것으로 기대하기 어려워 보인다. 오히려 지금이라도 조성계획을 대폭 수정하는 것이 전향적인 자세일 것이다. 나의 식견이라는 것이 워낙 짧은데다 그나마 충분히 관찰할 시간이 없었고, 자세한 계획자료를 검토하지 못한데서 오는 미숙한 지적이 있을 수 있겠지만 한번 조성해 놓으면 돌이키기 어렵다는 점을 감안해 제주도민들의 차분한 살핌이 있기를 바란다. (지금종:문화연대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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