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무지와 욕심이 그를 죽였습니다
나의 무지와 욕심이 그를 죽였습니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달팽이가 만난 우리꽃 이야기 163] 앵초와 다랑쉬오름 그리고 4·3

좀앵초(한라산 어리목) 제주도에는 눈앵초, 애기눈앵초, 한라앵초가 있다고 하는데 그 중 한라앵초는 한국 특산 식물이라고 합니다.  ⓒ 김민수

 
'미쳐야 미친다(不狂不及)'는 말이 있습니다. 미치면, 미치지 않은 사람이 보는 것을 봅니다. 남들이 이해를 하든 못하든 개의치 않고 자기의 길을 갑니다.
 
왜 이렇게 그것이 옳은 길이든 아니든지간에 어떤 사람들은 미친 듯, 그 길을 달려가는 것일까요? 뭔가 본 것이 있고, 들은 것이 있기 때문이겠지요. 허상일 수도 있고, 환청일 수도도 있지만 '미리 봄' 혹은 '미리 들음'에 대한 경험 때문일 것입니다. '미리 봄'을 종교적인 언어로 바꿔 보면 '믿음'입니다. 현실은 아니지만 현실처럼 보는 것, 이미 현실처럼 생생하게 봤기에 의심치 않고, 흔들리지 않는 것을 믿음이라고 합니다.

좀앵초 한라산 어리목  ⓒ 김민수

제게는 들꽃이 그렇습니다. 들꽃 중에서도 사람이 손길이 닿지 않은 야생화가 그렇습니다.

아주 깊은 산 중에서 나 말고는 눈을 마주쳐줄 사람이 없을 것 같은 곳에 피어 있는 야생화라면 저는 더 오랫동안 머물러서 그를 바라봅니다.
 
그런데 이 들꽃에 대해서 알면 알수록 신비투성이입니다. 타샤 튜더의 <타샤의 정원>이라는 책을 읽다가 앵초라는 꽃에 대한 단 한 줄의 문장을 읽었는데 그 내용인 즉 '앵초는 직사광선을 직접 받으면 안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늘진 습지에서 자라는 다년초이며 4월에서 5월 경 피어나고, 꽃말은 희망이며 천국의 문을 여는 꽃이라고도 알려진 꽃. 취란화, 풍륜초라고도 함.
 
이 정도가 제가 앵초에 대해 알고 있는 것들이었습니다.  

큰앵초 곰배령  ⓒ 김민수 
'그늘진 습지에서 피어남'이라는 것과 '직사광선을 직접 받으면 안 됨'이나 같은 맥락의 말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진작에 아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만 저는 그것을 연관시키기까지 너무도 오래 걸렸습니다. 왜 다른 작은 풀꽃들은 키가 큰 풀이나 연록의 나뭇잎이 나오기 전에 앞을 다퉈 피어나는데 키가 그리도 크지 않은 앵초는 연록의 이파리가 숲을 어느 정도 채운 다음 피어나는지를 이제야 안 것입니다.
 
그들은 연록의 이파리들 사이로 투과된 햇살을 받고 자랍니다. 그래서 일찍 피어나기보다는 다른 것들이 연록의 이파리를 낸 후에 피어나는 것입니다. 너무 일찍 피어나면 여과없이 직사광선을 받을 것이고, 너무 늦게 피어나면 햇살이 너무 적어 꽃을 피우지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큰앵초 곰배령  ⓒ 김민수

그러고 보니 그들을 만났던 곳 모두가 그랬습니다. 한라산 어리목에서 만났던 좀앵초만 빼놓고는 모두가 그늘진 숲 속이거나 연록의 이파리를 낸 나무 밑에서 다소곳이 자라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강원도 물골이라는 곳으로 출사를 갔던 길에 앵초꽃밭을 만났습니다. 비단길처럼 깔린 그들을 보다가 평소에는 생기지 않았던 욕심이 생겼습니다.
 
'이렇게 많은데 서너 개쯤은 어때, 화단에서 잘 키워 내년에 또 다른 곳으로 옮겨주면 되지.' 
 
앵초 강원도 물골  ⓒ 김민수 
 
물골에는 화단이 있는 집이 있습니다. 그들이 살고 있는 곳과 멀어야 200m도 안 되는 곳이기에 생육 조건도 비슷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화단에 심을 욕심으로 서너 개 캐내어 심은 것이지요.
 
그리고 꽃을 봤냐구요? 실하지는 않았지만 꽃을 봤습니다. 아무래도 옮겨진 후에 몸살을 하는가 보다 했지요. 그런데 타샤 투더의 글을 보고 나니 내가 얼마나 큰 잘못을 저질렀는지 알게 된 것입니다. 올 봄에 그 곳에서 앵초가 올라올지 아직은 모르지만 습지와 그늘에 자라는 그를 직사광선이 내리쬐는 화단에 심었으니 아마도 그는 죽었을 것입니다.
 
만일 올 봄 싹을 낸다면 화단에서 다시 그의 고향으로 옮겨줄 것입니다. 그러나 장담할 수가 없으니 나의 무지와 욕심이 그를 죽였습니다. 
 
앵초 강원도 현천리 부근  ⓒ 김민수

그런데 이미 이렇게 한 생명을 끊어놓고는 회개한다, 잘못을 고백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싶기도 합니다. 결국 회개, 잘못에 대한 반성은 말로는 별다른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가해자가 '회개했으니, 잘못에 대해 반성했으니 이제 그만해라, 더 그 문제를 가지고 왈가불가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라고 말한다면 거기에는 조금의 양심의 가책이나 회개가 들어 있지 않은 것입니다.
 
그들은 단 한 번도 나를 싫다하지 않고 사진의 모델이 되어주고, 글감이 되어주고, 삶의 소리를 들려주었는데 나는 그들을 죽였습니다. 이번 일을 거울삼아 자생지에서는 아무리 흔한 꽃이라도 소유하려는 욕심을 내지 않겠습니다.
 
다랑쉬오름 1948년 제주 4.3이후 다랑쉬마을은 잃어버린 마을이 되었다. 그 마을은 어린아이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연령층이 살고 있었던 마을이었다. 그 마을을 아예 없애버릴만큼 그들은 역사의 반역자들이었는가? 사과와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만으로도 부족한 이 때에 보수단체들의 목소리는 도대체 무슨 망발이란 말인가!  ⓒ 김민수 
 
나는 앵초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하면서 여전히 죄를 씻을 수 없음에 안타까워하고 있습니다. 고작 할 수 있는 일이란 '앞으로는 그러지 않겠습니다' 정도의 서약입니다.
 
앵초사건을 떠올리면서 나는 최근 보수단체들이 제주 4·3에 대해 이런저런 목소리를 낸 것을 돌아보았습니다.
 
제주 오름의 권좌라 불리우는 다랑쉬오름, 그 근처에는 마을이 있었습니다. 4·3이후 그 마을은 아예 사라져 버렸고, 지금은 다랑쉬오름으로 가는 길에 '잃어버린 마을 다랑쉬'라는 표석만 쓸쓸하게 서 있습니다.
 
아예 한 마을이 싸그리 없어질 정도의 광풍이 제주도 전역을 휩쓸고 지나갔습니다. 그로 인해 누가 피해를 당했으며, 누가 이익을 얻었는지를 보면 누가 가해자요 피해자인지 뻔한 사실인데 레드컴플렉스에 사로잡혀 사는 보수단체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나는 전율을 하게 됩니다. 
 
망자의 무덤 구좌읍 종달리 부근  ⓒ 김민수 

나는 그대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토벌대가 가는 곳마다 쑥대밭이 되고 있는 상황에서 토벌대가 마을로 들이닥치는지 망을 어디에서 보겠냐는 것입니다. 다랑쉬마을에서는 당연히 가장 높은 다랑쉬오름이었겠지요.
 
그리고 그들이 몸을 피해 어디에 숨을 수밖에 없었을까요? 중산간의 숲이나 한라산이었겠지요. 다랑쉬오름에서 망을 본 이들이나 몸을 피해 한라산이나 중산간의 숲으로 숨어버린 이들 모두는 빨갱이로 몰려 처단되었습니다. 물론 남아 있는 이들이라고 목숨을 보장받은 것은 아닙니다.
 
그래요. 개중에 당신들이 주장하는 빨갱이도 있고, 빨치산도 있었다 칩시다. 그러나 억울한 죽음이 지천인데 여전히 그들을 빨갱이요, 빨치산이라구요? 당신들의 그런 논리가 무섭습니다. 보수단체들은 자신들의 생각과 다르면 '빨갱이'라고 딱지를 붙이고는 반공을 최고선이요 진리인 것처럼 말하고 있습니다. 최고선과 진리에 대해 무지하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입니다. 역사에 대해 무지하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입니다.
 
최소한 억울하게 죽어간 망자들에게 '나의 무지와 욕심이 당신을 죽였습니다'해야 하지 않을까요? 아, 당신들은 미쳤습니다. 그러나 제대로 미치지 않았습니다.

 

 

※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 제휴기사 입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0 / 400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최신순 추천순 이 기사에 달린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