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성스님의 편지]③ 이 산 저 들녘, 꽃을 피울 게 분명합니다

입춘입니다.
봄의 문턱에 들어선 것이지요.
아직 창밖의 날씨는 매섭기만 합니다.
지난 겨울이 그리 호락치 않았던 까닭이겠습니다.

▲ 복수초 ⓒ제주의소리 DB
그래도 동백의 피울음 훔치며
복수초, 매화, 개나리, 목련, 진달래, 벚들이 줄을 지어
햇살 웃음을 지을 것입니다.
이네들은 수줍음도 잊은 채
버선발로 임을 맞는 새색시 마냥 
한 올 푸른 초의도 걸치지 않고
이 산 저 들녘, 꽃을 피울 게 분명합니다.
한라산 백록담의 눈은 녹을 기미도 보이지 않고
저 숲, 설해 목의 상처 아물지도 않았는데
관절염으로 고생하는 할미의 무릎에서
아비 어미의 세배를 받는 아이마냥
철없는 웃음을 지을 것입니다.

봄이 왔지만
여전히 그대의 체감온도가 시린 겨울이라면
저 숲의 설해 목을 들여다보십시오.
설해 목은
자신의 아픈 과거를 보상으로
권력을 가지려 하지 않습니다.
가슴에 묻고 벌거벗은 채
새 봄을 맞이합니다.

▲ 들녘에도 봄이 옵니다 ⓒ오성 스님
지금, 정녕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지난 고난에 대한 보답이 아니라
그 시린 겨울을 이겨냈던 그 순수한 열정이
온전히 가슴에 아직도 간직되어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지혜로워지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평화로워지려고 하여야 합니다.
지혜로서 순수한 열정을 간직하고
▲ 오성스님 ⓒ제주의소리
변화하는 세상의 온도를 체감하기에는
우리의 감각이 무디어졌습니다.
그래서 머리에서 흘러나온 지혜를 건혜乾慧라 합니다.
자신의 존재 이기利己를 돌아본,
가슴에서 흘러나온 평화의 샘에서만
언제나, 지혜와 용기의 건강한 웃음을
봄처럼, 꽃처럼, 아이처럼 지을 수 있습니다.
구구소한도九九消寒圖가 완성되는 날 말입니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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