④ "한낱 재가 아닌 옛 정신 살아오는 거름 되길"

▲ ⓒ제주의소리 DB
 매화 피는 계절에
우연히 매화 그림의 서기書記를 보았습니다.
여백의 바랜 정도로 보아 꽤 오래된 것입니다.
하지만 그 주인의 손길과 정신은
지금에도 시린 칼끝을 보는 듯 하였습니다.
가히 서기묵향書氣墨香이라 하겠습니다.

요즈음 국보1호 숭례문의 화재로 나라가 시끄럽습니다.
누구의 책임이냐, 관리를 어떻게 하느냐며 신문 방송은 떠들고
문화재가 있는 곳마다 시도, 경찰, 소방서 등 관계자들이 조사를 나와 부산을 떱니다.
이렇듯 말은 많지만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진 않습니다.
국보1호의 화재는 어느 기자의 말대로 우리나라의 자존심이 무너진 것입니다.
국보는 우리의 넋이며 문화의 뿌리이기 때문입니다.
하여 담당자 누구누구가 아니라
우리의 넋으로 관리하고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 매화 꽃이 피었습니다. ⓒ오성 스님
중고등부에서 중국의 동북공정이나 일본의 역사왜곡에 대응한 자존이 아닌 상대적 역사의식의 강화와 세계의 최고 대한민국으로 가기 위해서는 영어에 몰입해야 한다는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교육의 논리를 갖고 있는 이들
설과 명절은 연휴이니 외국 나들이하기에 좋은 때라는 이들
세계인에게 고향이란 잠깐 인사나 여름휴가를 보내는 곳이라는 이들
우리의 강산은 효용가치가 높은 경제논리로 바라보아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저 고서화는 진품일까, 얼마나 나갈까 하는 이들에게
숭례문은 자존의 1번지가 아닌 한풀이나 축제의 행사장,
또는 불 밝혀 스쳐 지나가며 바라보는 눈요깃감에 불과할 것입니다.

▲ 오성 스님
그 날 타버린 것은 우리의 혼입니다.
옛 선비의 정신이 봉건적 낡은 유산이라 생각하는 한
국보1호는 우리에게 없습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시대의 가치도 달라지지만 그 흐름은 유지된다는
눈에 보이는 사실에 담긴 넋의 진실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오늘은 어제에도 있고 내일에도 있습니다.
창조란 전혀 다른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혼을 가고자하는 미래의 텃밭에서 일궈내는 것입니다.
이제는 저 타버린 재가 한낱 쓰레기가 되지 않고
우리의 옛 정신이 다시 살아오는 거름이 되길 소망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4.3위원회의 폐지 논란이
평화의 길에서 벗어난 이념 갈등의 전주가 아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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