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년 ‘반정부·찬양동조’ 4.3칼럼으로 낙인찍힌 현기영 원장

한국문화예술진흥원장으로 우리나라의 문화예술 진흥을 총괄하는 현기영 원장에게 난데없이 ‘반정부’ ‘찬양동조’의 꼬리표가 달라붙었다.

미디어오늘(mediatoday.co.kr)이 공안당국이 지난 97년 이후 공안문제연구소를 통해 언론보도에 대해 이적성 감정을 의뢰했던 사실을 보도하면서 당시 제주출신 현기영 소설가가 한국일보에 쓴 ‘4.3 칼럼’이 ‘반정부’ ‘찬양동조’로 판정받았다는 사실이 드러나 제주4.3이 군사독재·권위주의 정권 시절에 얼마만큼 탄압받았고 그 논의자체가 금기시 돼 왔는지를 다시 한 번 보여줬다.

미디어오늘은 열린우리당 최규식 의원이 확보한 자료를 보도하면서 현기영 소설가가 97년 12월 29일 한국일보에 쓴 칼럼(아침을 열며) ‘4·3… 아직도 금기인가'와 KBS ‘생방송 심야토론 : 반미감정 확산 어떻게 풀 것인가?(2002년 12월 7일)’가 ‘반정부’와 ‘찬양동조’로 판정받았다면서 기무사가 소위 ‘재야·반체제인사’ 뿐만 아니라 언론보도에 대해서도 광범위하게 사찰활동을 펴 왔으며,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침해 왔다고 밝혔다.

4.3의 역사적 진실을 밝힌 ‘4.3진상조사 보고서’가 정부에 의해 확정·발간되고 이를 토대로 노무현 대통령이 유족과 도민에게 사과해 이제는 ‘4.3’에 대해 글을 쓰고 이야기하고, 또 영화를 제작한다고 해서 하등 문제가 될 일이 아니나 불과 7년전만 해도 이 같은 행위는 ‘반정부’ 활동이었고 북한을 이롭게 하는 ‘찬양동조’였다.

2004년 시각으로는 ‘이것쯤이야!’ 했을 내용이었지만, 97년 제주4.3의 논의는 비록 민주화의 바람을 탔다고는 하나 그리 녹녹치만은 않은 형편이었다.

그렇다면 현기영 원장이 쓴 ‘반정부’ ‘찬양동조’의 4.3칼럼은 무엇이었을까. 또 97년 한국에서는 4.3과 관련해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현기영 원장이 쓴 ‘4.3…아직도 금기인가'는 조성봉 감독이 제작한 4.3 다큐멘터리 영화 ‘레드 헌트’를 상영해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구속기소된 인권운동사랑방 대표 서준식씨에 대한 이야기 였다.

현기영 원장은 이 칼럼에서 “다큐멘터리 「레드 헌트」는 「빨갱이 사냥」이라는 캐치프레이즈 아래 수만의 무고한 인명을 파괴한 4.3의 참혹상을 소재로 다루고 있다”면서 “4.3연구자로서 이념적 편향을 싫어하는 필자에게 이 영화는 별로 과장·왜곡이 없는 사실의 정직한 기록으로 보이는데 왜 당국은 이 작품이 이념적으로 편향되었다고 보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서 서준식씨를 구속기소한 공안당국에 문제를 제기했다.

현 원장은 「레드 헌트」가 부산국제영화제 출품을 앞두고 있음을 빗대어 “이 작품이 공연윤리위원회의 심사를 통과했다는 것은 일반의 상식수준이 그만큼 높아졌다는 뜻일 텐데 그것을 갑자기 뒤집고 새삼스럽게 이적표현물로 문제 삼는 것은 상식에 반하는 일이 아닌가'라고 묻고는  “이적표현물이라면 왜 그 작품이 한쪽 영화제에서는 무죄이고, 다른 영화제에서는 유죄인가. 똑같은 사안을 놓고 그렇게 이중의 잣대질을 해도 되는가. 아마 당국도 처음에는 유야무야 넘어갈 생각이었는데 그 영화가 인권영화제에 진출하면서 파급효과가 더욱 커지자 아무래도 안되겠다 싶어 손을 댄 모양이다”라면서 공안당국의 이중잣대와 이를 정치적으로 탄압하려는 공안당국을 강하게 나무랐다.

그리고는 현 원장은 공안당국의 이 같은 행태에 대해 “어찌 손바닥 하나로 푸른 하늘을 가릴 수 있겠는가"라며 강하게 비판한 후 서준식씨의 재판은 공안당국의 얄팍한 생각과는 달리 “아직까지도 금기투성이인 4.3이 시비곡직을 가리는 법정논쟁을 통해 새롭게 조명을 받으며 여론에 실릴 수 있을 것”이라며 공안당국에 조소를 보내는 동시에 정면 돌파의 의지를 강조했다. 결국 서준식씨가 무죄판결을 받음으로써 현 원장의 예언은 적중했다.

현 원장의 칼럼은 이렇게 맺는다.
“반세기 전, 바깥세상과 단절된 해상봉쇄령이 내린 가운데 섬땅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던가. 결코 발설해서는 안될 무서운 금기여서 오랜 세월 모든 사람의 입을 얼어붙게 했던 그 사건, 호사한 관광객 행렬이 스쳐지나가는 아름다운 풍광의 배후에 아직도 잠들지 못하고 음습한 기운으로 엉켜있는 수많은 슬픈 넋들…. 죽은 자의 원혼을 달래주는 것은 산 자의 피할 수 없는 의무이다. 제상을 마련했다고 진혼되는 것은 아니다. 억울함을 해원하기위해서는 왜 죽게 되었는지 진상을 낱낱이 밝힌 축문이 그 옆에 있지 않으면 안된다. 그런 뜻에서 영화 「레드 헌트」는 4.3의 축문이요, 진혼곡인 것이다.”

현기영 원장이 ‘4.3진혼곡’이라고 평한 「레드 헌트」는 공안당국이 서준식씨를 구속했을 정도로 전국을 강타했었다.

이를 제작한 조성봉 감독이 불구속기소(구속영장을 신청했다가 기각) 됐으며, 이를 전국각지에서 상영한 대학생들도 잇따라 구속되고, 경찰과 학생은 「레드 헌트」상영을 두고 ‘전쟁’을 벌였던 시기가 바로 그 때였다. 이를 질타하고, 4.3은 결국 활활 타오를 것을 자신했던 현 원장의 칼럼이 ‘반정부’ ‘찬양동조’ 판정을 받은 것은 이제는 웃음으로 넘길 수밖에 없었던 당시의 암울함 이었다.

그렇다면 이제 반정부, 찬양동조 인사에서 정부기관의 기관장으로 변신(?)한 현기영 원장은 이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19일 ‘제주의 소리’와 통화를 한 현기영 원장은 7년전 칼럼을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마포에서 레드 헌트를 상영했다는 이유로 서준식씨가 구속된 것에 대해 쓴 칼럼이었다"고 밝힌 현 원장은 “지금에 와서 보면 격세지감을 안 느낄 수가 없다”면서 웃음을 지었다.

기자와의 통화를 통해 그 당시 칼럼이 ‘반정부’ ‘찬양동조’ 칼럼으로 판정됐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는 현 원장은 “그 당시 ‘레드 헌트’는 정말 대단 했었다”며 “그만큼 민주화 속도가 빨라졌다는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니냐”고 말했다.

현기영 원장은 “국민의 정부가 민주화와 금기에 대한 타파를 시작했다면 참여정부는 그 것을 활발하게 활성화시켜 오늘에까지 이르게 됐다”며 “오늘의 시점에서 보면 7년전 그런 상황이 있었다는 사실에 격세지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며 지난 어두운 시간을 반추했다.

4.3에 대해 이야기를 꺼낸다는 자체가 금기시됐던 70년대, 소설 ‘순이 삼촌’으로 첫 금기를 깼고 이후 4.3연구소를 만들어 제주4.3이 오늘에 이르게 까지 금기 타파의 선봉장 역할을 했던 현기영 원장은 7년전 칼럼에 대해  “ ‘4.3은 아직도 금기로 돼 있다. 그렇게 (서준식씨를 구속기소할 정도로) 아직도 금기인가. 이제는 금기가 아니다. 금기는 타파돼야 한다’는 뜻이었다”며 낮지만 단호한 목소리를 토해냈다.  

‘’4·3‘… 아직도 금기인가'
 -한국일보 1997년 11월 29일 ‘아침을 열며’ 칼럼

 인권운동가 서준식씨가 다큐멘터리 영화 「레드 헌트」와 관련해서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지난 5일 구속기소됐다. 이에 대해 국내는 물론 국외에서까지 그의 체포에 대한 항의의 목소리들이 연일 끊이지 않고 드높게 들려오고 있다.

 10월초 서울에서 열린 제2회 인권영화제에 출품돼 관심을 끌었던 「레드 헌트」는 어떤 내용이고, 영화의 소재인 「4.3」은 또 무엇이길래 저명한 인권운동가까지 체포되는 사태에 이르게 되었을까. 아직 그 영화를 보지않고 4.3이 무엇인지 모르는 이는 아마도 그것을 외국영화인 줄 생각하리라. 왜 그렇지 않겠는가. 영문 타이틀도 그렇고 지난달 부산의 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되었으니 그런 오해를 살만도 하다. 그러나 이 영화는 48년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장봉기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무고한 양민이 군경에 의해 학살된 사건을 다루고 있다.

「레드 헌트」는 문자 그대로의 「빨갱이 사냥」만을 뜻하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오히려 무고한 사람들을 빨갱이로 날조하여 사냥하는 행위를 일컫는, 아주 역설적인 용어이다. 이 용어는 중세의 서구사회에 횡행했던 「마녀사냥(Witch Hunt)」에 빗대어 만들어진 것이다. 중세의 암흑 속에서 무고한 수많은 여인들이 사악한 마녀, 혹은 마녀와 내통한 자라는 누명을 쓰고 종교제단의 희생물이 되었듯이 현대의 냉전체제 속에서는 무고한 수많은 사람들이 빨갱이라는 누명을 쓰고 이념의 제단에 희생물로 바쳐졌던 것이다.

「레드 헌트」라는 말이 인구에 회자되기 시작한 것은 아마도 1950년 미국 정계에 한바탕 휘몰아쳤던 매카시 선풍의 와중에서였을 것이다. 극우파의 책동에 의한 그 용공조작사건에서 수백명의 공직자가 직장에서 억울하게 추방당하고 많은 문인, 예술인, 지식인들이 빨갱이라는 누명 아래 수모를 당해야 했다. 그러나 그 정도의 피해는 제3세계 민중의 입장에서 보면 그야말로 「새발의 피」여서 행복에 겨운 엄살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그들에게 있어서 용공조작이란 곧 죽음을 의미하기 때문이었다.

 다큐멘터리 「레드 헌트」는 「빨갱이 사냥」이라는 캐치프레이즈 아래 수만의 무고한 인명을 파괴한 4.3의 참혹상을 소재로 다루고 있다. 4.3연구자로서 이념적 편향을 싫어하는 필자에게 이 영화는 별로 과장·왜곡이 없는 사실의 정직한 기록으로 보여서 호감이 갔다. 그런데도 왜 당국은 이 작품이 이념적으로 편향되었다고 보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 영화가 토대로 하고 있는 생존자들의 증언, 미군정의 「G2 보고서」, 당시의 신문보도, 연구자들의 해설 등은 필자도 익히 알고 있는 자료들로서 새로운 것은 없었다.

 그런데도 이 영화가 주는 감동은 전혀 새로운 것이었다. 영화가 주는 감동의 직접성과 파급성, 당국은 바로 그 점에 예민하게 반응했던 것 같다.
그러나 부산국제영화제 출품을 앞두고 이 작품이 공연윤리위원회의 심사를 통과했다는 것은 일반의 상식수준이 그만큼 높아졌다는 뜻일 텐데 그것을 갑자기 뒤집고 새삼스럽게 이적표현물로 문제 삼는 것은 상식에 반하는 일이 아닌가. 그것이 이적표현물이라면 왜 그 작품이 한쪽 영화제에서는 무죄이고, 다른 영화제에서는 유죄인가. 똑같은 사안을 놓고 그렇게 이중의 잣대질을 해도 되는가. 아마 당국도 처음에는 유야무야 넘어갈 생각이었는데 그 영화가 인권영화제에 진출하면서 파급효과가 더욱 커지자 아무래도 안되겠다 싶어 손을 댄 모양이다.

 그러나 그렇게 한다고 해서 엄청난 진실이 제압될 리도 없고 은폐되지도 않는다. 어찌 손바닥 하나로 푸른 하늘을 가릴 수 있겠는가. 체포된 서준식씨에게 죄송한 말이지만 풀려날 가망이 없다면 법정에 서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된다면 아직까지도 금기투성이인 4.3이 시비곡직을 가리는 법정논쟁을 통해 새롭게 조명을 받으며 여론에 실릴 수 있을 테니까.

 반세기 전, 바깥세상과 단절된 해상봉쇄령이 내린 가운데 섬땅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던가. 결코 발설해서는 안될 무서운 금기여서 오랜 세월 모든 사람의 입을 얼어붙게 했던 그 사건, 호사한 관광객 행렬이 스쳐지나가는 아름다운 풍광의 배후에 아직도 잠들지 못하고 음습한 기운으로 엉켜있는 수많은 슬픈 넋들…. 죽은 자의 원혼을 달래주는 것은 산 자의 피할 수 없는 의무이다. 제상을 마련했다고 진혼되는 것은 아니다. 억울함을 해원하기위해서는 왜 죽게 되었는지 진상을 낱낱이 밝힌 축문이 그 옆에 있지 않으면 안된다. 그런 뜻에서 영화 「레드 헌트」는 4.3의 축문이요, 진혼곡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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