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한반도 '고대문화의 원류'로 해석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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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택 교수 강연…"영토ㆍ군사력 강조는 패배ㆍ신비주의" 경계

▲ 제주민예총 역사문화아카데미가 열린 중소기업지원센터
5세기. 광개토대왕과 장수왕이 재임하던 고구려 최전성기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의 남북조와 5호16국 시대의 혼란을 이용, 북으로는 광개토대왕이, 남으로는 장수왕이 영토확장를 이뤄 동아시아 4대 강국에 들 정도로 고구려는 융성했다.

우리는 학교 국사시간에 이런 것들을 배우며 광활한 만주벌판을 달리던 고구려의 기상과 현재의 우리 상황을 비교하며 안타까움을 느꼈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고구려가 삼국을 통일했더라면?’하는 생각은 기자만이 생각은 아니였을 것이다.

각설하고, 민예총 제주도지회가 준비한 ‘21세기 한중 역사전쟁의 현장, 고구려를 생각한다’ 역사문화아카데미 3회 강의가 고려대 최종택 교수의 강의로 19일 오후 7시부터 중소기업지원센터에서 열렸다.

최종택 교수는 ‘고구려의 남진과 남한의 고구려의 유적’을 아차산 보루의 고구려 군사시설을 중심으로 남한땅에 남아 있는 고구려의 유물.유적을 개괄했다.

최 교수는 남한 지역에서 조사된 고구려 유적은 임진강 및 한탄강 유역, 양주분지 일원, 한강유역의 아차산 일원, 금강유역 등 4곳에 집중적으로 분포하고 있다고 밝혔다.

4곳의 유적은 유명한 ‘중원고구려비’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산성이나 보루 등 대부분의 군사시설이며, 80년대 이후 본격 유적조사가 이뤄지며 아차산 일대의 보루에서 고구려 군사들의 생활과 문화를 알 수 있는 다양한 유물들이 출토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아차산 일대에 있는 보루에서 출토된 유물은 475년부터 551년까지 고구려가 한강유역을 차지하고 있었던 시기의 것이라 정확한 연대를 알 수 있는 소중한 유적이라는 설명도 곁들었다.

최 교수는 고구려가 남하하면서 만들어진 관방시설(군사시설)인 아차산 보루(10~100명 단위의 군사시설)가 551년 나제연합군에게 빼앗기면서 남긴 유물들이 많이 출토될 뿐만 아니라 출토된 유물에서 고구려의 생활문화상을 발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아차산 일대의 고구려 보루는 모두 20여개소. 현재 발굴된 것은 ‘구이동 보루, 아차산 4보루, 시루봉 보루, 홍련봉 보루’ 등 4곳이다.

이들 보루의 특징은 외곽에 석축성벽을 쌓고, 내부에 건물 등의 시설물을 설치한 점에서 동일한 구조를 이루고 있다. 또한 고구려 특유의 방어시설인 치(雉)가 설치돼 있고, 온돌과 토기, 철제무기 등이 다양하게 출토되고 있다.

게다가 궁성에서 사용했던 토기와 기와 등이 발견돼 고구려가 한강유역을 상당히 중요시하게 여겼다는 점도 밝혀졌다.

▲ 고려대 최종택 교수
최 교수는 보루에서 ‘ㄿ자 형태의 온돌과 오늘날 옹기문화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고구려식 토기, 오늘날과 비추어도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 철기무기 등이 고구려 생활문화의 발전상을 알 수 있다고 강조했다.

또 최 교수는 아차산 일대의 고구려 유적이 현재 공원으로 사용되고 있고, 정부의 지원이 부족해 훼손이 심각하다고 밝혔다.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해서도 최 교수는 “역사를 왜곡하고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위해 다소 불순한 의도가 있지만 중국의 최근 보고서는 중요한 자료가 될 수 있을 것”이라며 “하지만 우리나라 정부는 ‘동북공정’에 대해 외교적 제스처만 취하고 국내 여론무마용으로 ‘고구려문화재단’만 하나 만들었을 뿐 제대로 한 일이 없다”고 질타했다.

최 교수는 “중국측이 내세우는 6가지 논리는 사료, 즉 문헌을 바탕으로 한 것으로 허술하기 짝이 없지만 문헌은 해석하기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평행선을 내달릴 수밖에 없다”며 “생활문화의 연구는 이와는 다르기 때문에 중국측의 논리를 깨기 위해서는 북한과의 학술적 교류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최 교수는 “최근 정치인들도 관심을 갖고 정부에서도 동북아시대위나 NSC 등에 고구려 태스크포스를 만들어 본격 대응에 나서고 있다”며 “하지만 이런 식의 대응은 국내전략일 뿐 국제적인 전략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국제학술 네트워크를 조직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 중원고구려비를 설명하고 있는 최종택 교수
최 교수는 고구려의 의미에 대해서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영토가 넓었고, 군사력이 강했다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며 “그런 생각은 오늘날 우리에게 ‘패배주의와 신비주의’를 줄 뿐만 아니라 국수적인 사고를 가져올 수 있다”고 경계했다.

최 교수는 “한반도 북부에 동아시아 4대 강국에 포함돼 중국왕조들이 수없이 사라지는 동안 700년간 고구려란 나라가 존재해 신라.백제.가야에 문화를 전파하고 방파제 역할을 했었다”며 “고구려는 중국은 물론 중앙아시아에서까지 여러 문화를 수용해 ‘고구려화’해 한반도 남부에 전해줘 ‘고대문화의 원류’로 작용했다는 것으로 해석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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