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국립공원에서 배운다](3) 세계 최초의 국립공원, 옐로우스톤
‘위대한 발견, 국립공원’의 역사와 의미

정부차원의 조사(헤이든 조사단)로 발전, 법 제정과 최초의 국립공원 탄생

옐로우스톤 탐험대의 성과가 널리 알려지기 시작하자 이듬해인 1871년 연방정부는 공식적인 학술조사단을 이 지역에 파견하게 된다. 정부는 이 조사단의 활동에 4만달러의 예산을 지원했다.  6월 국립지질연구소장인 페르디난드 헤이든(Ferdinand V. Hayden) 박사를 조사단장으로 하여, 화가 토마스 모런(Thomas Moran), 사진작가 윌리엄 잭슨(William H. Jackson)을 비롯한 34명의 탐험대원들과 7대의 마차와 육군 공병대로 구성된 조사단은, 7월부터 공식적 탐사에 나서기 시작했다.

▲ 옐로우스톤 지역을 조사 중인 헤이든 탐험대. 1871년 윌리엄 잭슨 촬영 ⓒnps.gov

짐 브릿저와 옐로우스톤 탐험대의 일원이었던 ‘구스타보스 도언’ 중위의 최초공식보고서에 바탕을 둔 이들의 조사보고서에는 화가 토마스 모런의 현장그림과 사진작가 윌리엄 잭슨의 사진, 그리고 랭포드의 공식발표 연설문과 헤지스의 공원지정 타당성에 관한 논거(論據)등이 실렸고 헤이든이 조사단의 최종 보고서를 종합하였다.

몬타나주 출신 국회의원 윌리암 클라겟(William H. Clagett)은 이 보고서를 근거로 1871년 12월에 관련 분과위원회를 거쳐 옐로우스톤강 상류지역을 ‘공공(公共)공원’으로 지정하자는 법안을 의회에 제출한다.

▲ 헤이든박사의 지도하에 옐로우스톤지역을 탐사하고 있는 미국지질 조사단 일행들이, 1870년 8월 24일, 와이오밍주 내트로나(Natrona) 카운티, 레드 벗츠(Red Buttes) 지역에 진을 치고 있는 장면. ⓒnps.gov

‘사진’과 ‘그림’의 힘! 그들이 없었다면...

여기서 잠깐 쉬었다 가보자. 보통 자연자원을 대상으로 하는 조사단을 꾸릴 경우 식물, 곤충, 동물, 지질 등의 관련 전문가 중심으로 꾸리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헤이든 조사단의 중심은 이들 전문가들이 아니라 ‘예술가(화가와 사진작가)’였다. 무슨 말인가?

사진작가 ‘윌리엄 헨리 잭슨’과 화가 ‘토머스 모런’의 작품은 옐로스톤을 세계 최초의 국립공원으로 지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이들의 활약이 없었다면 미국 의회는 훨씬 뒤에야 옐로스톤의 가치를 깨달았을 지도 모른다. 공원 조성 대신 다른 정책이 시행됐을 지도 모를 일이다. 남북전쟁이 끝난 터라 미국 정부는 국가 재건을 위해 서부 자원을 개발하려고 했던 시기다. 몬태나 주를 가로지르는 북태평양 철도도 부설돼 개척민들이 옐로스톤 지역으로 몰려들고 있었던 시기가 아닌가.

사냥꾼과 탐험가들이 옐로우스톤의 진기한 풍경을 보고 기록에 남겼지만, 이런 모습은 직접 보지 않고는 믿기 힘든 것이어서 터무니없는 이야기로 취급되기 일쑤였다. 이를 고려해서인지 조사단장인 헤이든은 사진가와 화가를 탐사대에 포함시켰다. 두 예술가는 옐로스톤의 경이로움을 사진과 화폭에 담았다. 잭슨이 옐로우스톤의 진기한 경관을 찍은 사진을, 그리고 흑백사진의 한계를(당시는 컬러 사진이 없던 시절이다) 모런이 그림으로 보완하여 정부와 대중에게 생생히 보여 주자, 미래 세대를 위해 옐로스톤을 보존하자는 쪽으로 대세가 기울었다.

▲ 옐로우스톤의 낮은 폭포, 1878년, 윌리엄 잭슨 촬영 ⓒnps.gov

▲ 옐로우스톤의 그랜드캐년에서 본 풍경. 위 흑백사진과 비교해 보라 ⓒNational Parks of the West

▲ 올드 페이스풀(옐로우스톤 국립공원에 있는 간헐천), 윌리엄 잭슨 촬영. ⓒnps.gov

▲ Morning Glory Pool ⓒNational Parks of the West

법안은 미국 상하 양원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되었고 1872년 3월 1일 마침내 그랜트 대통령(제18대 대통령, Ulysses S. Grant)은 옐로우스톤강 유역을 포함한 2백만 에이커를 세계 최초의 국립공원으로 지정하기에 이른다. 대통령은 이날 "국립공원은 모든 국민의 복리와 즐거움을 위한 ‘공공(公共)의 공원’이며 위락지”라고 선언했다.

▲ 그랜트 대통령 ⓒnps.gov

다시 강조하지만, 개인의 능력에 따라 규제와 제한 없이 땅을 소유할 수 있던 당시 미국 풍토에서 특정 개인이나 단체의 소유, 나아가 그들의 제한적 이용조차 인정하지 않는 공공(公共)성이 강조된 공원을 지정한 것은 매우 획기적이며 역사적인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어쨌든, 옐로스톤 국립공원의 설립은 세계적인 국립공원 운동의 시작이었다(오늘날 100개 이상 국가들이 약 1,200의 국립공원 또는 이와 유사한 보존지역을 가지고 있다).

국립공원 관리조직의 변천 : ‘육군성/삼림청’에서 ‘국립공원관리청’으로

1872년 3월 1일, (미)의회는 법으로 옐로우스톤 국립공원을 설립하고, 그것을 내무부 장관의 배타적 관할 하에 놓았다.

옐로우스톤 국립공원 설립 다음해에, 미국은 연방 서부지역에 몇 개의 ‘국립공원’ 및 ‘국립기념지(National Monument)’들을 추가로 지정했다. 이들 또한 내무성에 의해 관리되었는데, 다른 기념물 및 자연, 역사적인 지역은 분리되어 ‘육군성(공병대)’과 농무부 산하의 ‘삼림청’에 의해 관리되었다(현재 국립공원 레인저의 복장이 군인제복과 유사한 것은 이러한 역사적 배경에 기인한 것이다). 초기 여러 연방 공원들은 한 기관에 의해 체계적으로 관리되지는 않았다는 말이다.

1916년 8월 25일 윌슨(Woodrow Wilson) 대통령은 ‘국립공원청(National Park Service)’ 설립을 위한 법률에 서명했다. 이 ‘조직법’은 35개의 국립공원 및 기념지들을 보호하는 책임을 내무부 산하의 새로운 연방기관(국립공원청)으로 통합하자는 것이었다. 이어 주무장관인 내무장관의 친구이자 캘리포니아주 실업가인 매더(Stephen T. Mather)를 초대 청장으로 임명하여 1917년에 공식 국립공원관리청을 발족시켰다. 지금으로부터 90여년 전 일이다.

▲ 윌슨대통령(1856-1924) ⓒnps.gov

▲ 초대 국립공원청장이었던 스티픈 매더(Stephen T. Mather) ⓒnps.gov

1933년에 대통령은 56개의 국가기념지와 군사유적지들을 삼림청 및 육군성으로부터, 국립 공원청으로 이전시켰다. 이는 역사적일 뿐만 아니라 오늘날의 국립공원 체계로 발전하는 거대한 일보였다.

의회는 1970년에 ‘공공공사(公社)법(General Authorities Act)’에서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1872년 옐로우스톤국립공원 설립으로부터 시작된 국립공원 시스템은 각 지역의 초자연적, 역사적 및 휴양지역을 포함하면서 성장해왔다. 그리고 이 법은 이러한 지역을 이 시스템에 포함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제정된 것이었다...”

국립공원의 지정 권한
 
새로 국립공원을 추가 지정할 경우에는 현재 일반적으로 의회의 법률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그러나 미 대통령은 1906년의 ‘고대유물법(Antiquities Act)’에 의해 ‘국립기념지(National Monument)’들을 지정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 이 법은 대통령이 역사유적지와 선사시대의 건조물, 그리고 역사적 또는 국가적 중요성을 지닌 지역을 국립기념지로 지정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의회가 이 법을 만든 원래 목적은 미국 서남부 인디언들의 고대 유적이 훼손되지 않도록 보호하기 위함이었지만, 법조문의 내용이 애매해 대통령이 의회의 동의 없이 단독으로 보호지역을 지정할 수 있는 여지가 생겼다.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은 1906년 데블스타워를 국립기념지로 지정해 이러한 대통령의 권한을 처음 행사했다. 20세기 내내 역대 미국 대통령들은 특정 지역을 국립공원으로 만들기 위한 디딤돌로 이런 국립기념지 지정 권한을 이용했다(그랜드캐년, 그랜드티턴, 올림픽 국립공원은 모두 국립기념지에서 시작해 나중에 의회가 국립공원으로 지정한 곳들이다).

한편 이외에도 내무부 장관은 일반 시민으로 구성된 ‘국립공원시스템 자문위원회(National Park System Advisory Board)’에게도 (국립공원)시스템에 추가할 지 여부와 그 관리를 위한 정책방침에 대해 의견을 구할 수 있다.

2007년 현재 미국의 국립공원 체계는 미 49개주, 콜럼비아 특별 행정구, 미국령 사모아, 괌, 푸에르토리코, 사이판 및 버진 아일랜드의 8천 4백만 에이커 이상의 391개의 지역을 포함한다. 이러한 지역들은 의회의 다양한 법률에 의해 특별한 승인과 보호를 받고 있다.

아래는 미 국립공원의 연혁을 요약한 것이다.

<미 국립공원 연혁>

1872 : 세계 최초의 국립공원인 옐로우스톤 국립공원 탄생
1890 : 세쿼이아, 요세미티, 제너럴 그랜트(후에 킹스캐년의 일부로 편입) 국립공원 지정
1902 : 테오도르 루즈벨트 대통령 5번째 국립공원으로 ‘크래이터 호수(Crater Lake)’ 지정
1903 : 루즈벨트, ‘윈드 케이브(Wind Cave)’를 동굴 보호지역으로는 처음으로 국립공원으로 지정
1906 : 연방의회, ‘메사 버드(Mesa Verde)’를 국립공원으로 선정. 이는 국립공원 시스템 중 최초의 문화 공원.
1916 : 우드로우 윌슨 대통령, ‘국립공원청’을 창설하는 정부조직법에 서명
1919 : ‘그랜드캐년’, ‘국립기념지(National Monument)’에서 ‘국립공원(National Park)’로 승격
1933 : 프랭클린 루즈벨트(Franklin Delano Roosevelt)대통령, ‘시민보전단(Civilian Conservation Corps)’ 발족. 시민보전단은 국립공원과 국립 숲(National Foprest)에서 일을 했고, 9년 동안 30억 그루의 나무를 심음
1951 : 화살촉이 국립공원청의 공식 엠블럼(emblem)이 됨. 세쿼이아 나무와 아메리카 들소(bison)는 공원 내 식물과 야생동물을 상징하고, 산과 물(호수)은 각각 국립공원의 경관과 레크리에이션 가치를, 화살촉은 역사적 고고학적 가치를 상징.
1967 : 연방의회, 독립적인 공원 펀드레이징 조직인 ‘국립공원재단(National Park Foundation)’ 설립. 
1987 : 연간 공원 방문객 수 최고 돌파. 287,244,998명
1988 : 옐로우스톤 대형 산불 발생
1994 : ‘데쓰 밸리’와 ‘조슈아 트리(Joshua Tree)’ 국립기념지, 국립공원으로 승격
2001 : 부시대통령 국립공원 유산 프로젝트(National Park Legacy Project) 선언
2007 : ‘국립공원 100주년 선언(National Park Centennial Initiative)’  

- 『The Complete Guide to the National Parks of the West』, 2007, Fodor's

<참고자료>

국립공원관리공단 홈페이지의 ‘자료마당/기타자료’ 중 ‘국립공원 관리제도의 유래(1,2,3)’
미 국립공원청 웹사이트(http://www.nps.gov) 중 'About us/History'
"시험대에 오른 미국의 국립공원", 2006.10, www.nationalgeographic.co.kr
『The Complete Guide to the National Parks of the West』, 2007, Fodor's
사진 : A Brief History of the National .Park Service www.nps.gov/history/history/online_books 

 
▲ 이지훈 편집위원 ⓒ 제주의소리
이지훈 편집위원은 현재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스탠포드대학 아태연구소(APARC) 객원연구원으로 있습니다. 이곳에서 이 위원은 ‘미국의 국립공원(과 자연유산) 관리정책’을 주제로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공원 시스템’이라 일컬어지는 미국의 사례를 통해,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된 한라산국립공원의 올바른 보존과 관리방향을 새롭게 모색해 보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합니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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