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안법폐지 위한 기도회…국보법 피해자 강희철씨 증언

▲ 도내 4개 종단으로 구성된 평화를위한제주종교인협의회는 22일 오후 6시 늘푸른교회에서 '민족화해와 보안법폐지를 위한 기도회'를 가졌다.ⓒ제주의소리
반인륜적인 국가보안법으로 인해 더 이상의 인권유린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기도회가 열렸다.

22일 오후 6시 제주시 노형 늘푸른교회에서는 불교·원불교·천주교·개신교 등 도내 4개 종단으로 구성된 평화를 위한 제주종교인협의회의 주도 아래 반통일·반인권적인 국가보안법(이하 국보법)의 완전한 폐지를 위한 기도회가 진행됐다.

▲ 기도하는 제현우 사관.ⓒ제주의소리
기도회에 참석한 제현우 사관(구세군·제주영문교회)은 "인간답게 살 수 있고 상처 난 육신을 치유할 수 있는, 정의가 살아있어서 고통받지 않는, 참다운 평화로 아름다운 세상이 되게 하자"는 내용의 기도를 올렸다.

임문철 신부(천주교·중앙성당)는 '미움보다 더 큰 개인무관심'이란 주제로 말씀선포를 했다.

임 신부는 "어느 종교를 막론하고 형제간에 불목하고 분쟁이 있을 때는 화해하도록 도와야 하는 것인데 민족간의 화해를 가로막는 장벽인 국가보안법이 존치한다는 것은 종교인의 양식으로 부끄러운 것"이라고 말했다.

▲ 임문철 신부.ⓒ제주의소리
이어 "'부자와 나자로 거지'에서처럼 우리는 모든 것을 가진 부자가 아님에도 자신이 가진 것만을 보며 음지에서 고통받고 있는 이들에게 무관심한 것은 아닌지 반성해야 한다"며 "내가 불편하지 않고 고통을 당하지 않았으니까 국가보안법이 존치해도 무관하다고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주위의 국보법 피해자가 겪고 있는 고통에 대해 무관심한 것이요, 그런 무관심으로 인해 희생이 더 커지고 피해자가 더 늘어나는 것이다"고 설교했다.

임 신부는 "비록 우리의 이같은 몸짓이 성벽에 계란을 던지는 것과 같은 일일지라도 형제간의 반목을 끝내고 평화통일을 위해 국보법의 폐지에 종교인들이 앞장서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기도회에는 국가보안법의 피해자인 강희철씨(47)가 참석, 당시 겪었던 일들에 대해 증언했다.

▲ 국가보안법 피해자 강희철씨가 당시를 증언하고 있다.ⓒ제주의소리
조천읍 신촌리 출신인 강씨는 중학교까지 제주에서 마치고 부모님을 따라 일본으로 건너가게 됐다. 그 곳에서 우리나라 고등학교 과정인 대판 조선고급학교를 다녔는데 이것이 불행이 시작이었다. 강씨가 일본의 일반 고등학교를 다니지 않은 것은 일본어를 잘 하지 못해 학업을 따라 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첫 불행은 1981년에 그를 찾았다. 이유도 모른 채 부산보안대에 불법피검돼 3일간의 전기고문과 함께 1주일의 조사를 받고 대판 조선고급학교에서의 생활 등을 상세히 얘기하고 무혐의로 풀려났다. 그 후 강씨는 제주로 내려와 결혼도 하고 어느 정도 안정을 찾아가는 듯 했다. 그러나 국보법은 강씨의 행복을 두고 보지만은 않았다. 1986년 영장도 없이 만삭인 아내를 남기고 끌려가 온갖 고문과 고초를 겪으면서 한번 가보지도 않은 북한에 다녀왔다는 허위자백까지 하게 됐다. 105일 동안 공안분실에서 감금된 채 외부와는 일체 연락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그가 느낀 절망감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자꾸 생기는 거지? 이렇게 살 바에야 차라리…' 죽을 생각도 여러번 가졌지만 감시가 삼엄해 그것마저도 강씨에게는 허용되지 않았다. 고문에 못 이겨 하게 된 허위자백과 형식적인 재판과정으로 인해 그는 국가보안법을 위반한 중죄인이 돼 갔다. 그 동안 변호사도 없이 가족과 친지들과도 연락할 수 없는 상태에서 재판을 진행 중이던 강희철씨가 제주도에 있는 숙부와 연락이 닿은 것은 광주고법에서의 재판을 앞두고 있을 때였다. 강씨의 소식을 들은 숙부가 부랴부랴 변호사를 선임하고 재판에 임했다. 강씨가 방북했다고 자백한 내용이 사실과 다름과 일본에서의 학교 생활 등을 상세히 설명했으나 판결은 '현재 남북이 대치상태이니 강씨의 항소를 기각한다'는 내용이었다. 강씨는 믿을 수가 없었지만 그렇게 무기징역을 구형 받고 12년이라는 세월을 복역했다. 1998년 8월15일 가석방된 강씨는 지금도 무죄가 증명된 것이 아닌 국가보안법 위반자이다. 출소 후 그에게 남은 것은 방북조작사건으로 구속될 당시 만삭이던 아내가 낳은 아들 하나뿐. 4년이라는 세월을 기다리던 아내는 더 이상의 희망을 버리고 그를 떠났다. 다시 시작해 보려 일자리를 구했지만 국가보안법 위반자로 그것도 오래 가지 않았다. 다행히 지금은 새로운 아내를 맞아 자신의 일을 하면서 아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지만 여전히 그는 불안감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지금 이 행복이 언제 또 국가보안법이라는 악법에 의해 깨질지 모르니까….

▲ 강희철씨는 현재 부인 고정녀씨(42)와 아들과 함께 살고 있다.ⓒ제주의소리
강희철씨는 "지금까지 어디 가서 이렇게 증언할 곳도 없었다"며 "항상 불안한 생각이 들지만 나름대로 지금처럼 건강하게 살 수 있다는 것에도 감사한다"고 말했다.

임문철 신부는 "강희철씨의 경우는 정말 억울한 사례로 명백한 증거를 제시했음에도 불구하고 북한에 다녀오지 않은 사실을 증명하라는 식의 재판으로 대법원에서도 기각됐다"며 "당시 재판을 맡았던 판사는 퇴임 자서전에서 강희철씨 사건을 법조인으로 재판상 양심에 걸리는 사례로 꼽을 정도였다"고 설명했다.

평화를 위한 제주 종교인협의회는 이날 국가보안법의 폐지를 주장하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성명서에는 "국가보안법 철폐를 놓고 우리 사회가 양분되고 있으나 국가 안보를 위한 것이라는 미명 하에 그동안 시행과정에서 국민의 인권 침해, 사상의 자유에 대한 침해 등 많은 문제점을 드러냈다"고 밝혔다.

▲ 성명서를 낭독하고 있는 강설 스님.ⓒ제주의소리
이어 "국보법이 있어도 생활하는데 아무런 불편이 없으니 인권 침해 소지가 있는 일부 조항만 바꾸어 유지하자는 주장도 일고 있지만 국보법이 존재하는 한 언제든지 자의적으로 적용돼 인권을 침해할 준비가 되어 있다"며 국가보안법의 무조건적 폐지를 주장했다.

▲ 축도하는 박동신 신부.ⓒ제주의소리
또 "국가보안법은 오로지 정권안보를 위한 법으로 남북화해와 협력을 통해 민족의 생존을 찾아나가야 할 지금 이를 가로막는 구시대적 걸림돌"이라며 "수십 년 동안 국가안보를 빙자해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 싸워온 수많은 민주인사와 노동자, 농민을 구속시키고 살해한 국가보안법은 이 땅에서 완전히 없어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국가보안법 폐지는 남북한 냉전시대를 끝내고 화해와 협력의 시대, 통일의 시대를 앞당기고 후세들에게 정의가 바로 서고 상식이 지배하는 지극히 정상적인 사회를 물려주기 위해서는 조금도 양보할 수 없는 시대적 과제"라고 밝혔다.

이날 기도회는 박동신 신부(개신교·성공회교회)의 축도로 끝을 맺었다.

▲ 기도회 사회를 진행한 이정훈 목사(늘푸른교회).ⓒ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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