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세계한상대회 개막…리딩 CEO등 1300여며 참석

전 세계 지구촌에서 한국인의 명성을 날리며 경제적 성공을 이룬 한상(韓商) 리딩 CEO가 제주로 몰려온다.

오는 26일부터 28일까지 2박 3일 일정으로 제주국제컨벤션센터에서 화려하게 막이 오르는 제3회 제주 세계한상대회에 참석자들의 면면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한상대회를 주관하고 있는 재외동포재단과 제주도에 따르면 올해서 3회째를 맞는 한상대회에는 세계 42개국에서 1342명의 경제인들이 참가해  다양한 비즈니스 프로그램과 컨퍼런스를 통해 600만 재외동포 상호간·국내기업간 네트워크를 통하여 '글로벌 한민족 경제공동체' 구축을 위한 방안을 모색하게 된다.

특이 이번 대회에는 세계 경제를 주름잡는 대표적 기업인인 리딩 CEO 30여명과 ,이민 2~3세대인 차세대 경제리더 45명이 참여하는 것으로 알려져 그들의 보는 한국경제와 제주에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 이종문 회장
그 중에서도 단연 두각을 보이는 인물은 70대의 노익장으로 미국의 IT산업의 본거지인 실리콘밸리를 놀라게 한 이종문 암백스 벤처그룹 회장이다. 그는 국내 제약사인 종근당 창립자 이종근씨의 동생이기도 하다.

50대 중반이던 1970년 미국으로 건너가 첫 문을 연 곳은 20~30대의 영재들도 나가떨어진다는 실리콘벨리. 컴퓨터 시장이 막 고개를 들 무렵 IT에 문외한이었던 그는 컴퓨터에는 필수 부품인 그래픽카드를 만들기로 하고 82년 다이아몬드컴퓨터시스템사를 설립한다.

그로부터 6년의 연구 끝에 세계 양대 컴퓨터 회사인 애플컴퓨터와 IBM의 호환시스템인 그래픽 VGA카드 개발에 성공했다. 이 VGA카드 개발 하나로 다이아몬드는 그야말로 미국 내에서 성장이 가장 유망한 기업 17위에 선정됐고, 1995년에는 나스닥 상장해 10억달러의 수익을 올리는 실리콘벨리의 실력자로 부상했다.

그러나 이종문 회장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다이아몬드사를 매각한 후 암벡스 벤처그룹을 설립해 실리콘벨리에서도 손꼽히는 부자로 떠올랐다.

그가 한국인 경영인으로써 더욱 빛을 발하게 하는 것은 이렇게 번 돈을 정승처럼 쓰기 때문이다.

1998년 한국의 밴처기업가를 미국으로 불러들여 현지에서 교육을 시킬 목적으로 스탠포드대학에 200만달러를 기부한 것을 비롯해 교포 2~3세들의 민족교육을 위해 고려대에 100만달러도 기증했다.

또 샌프란시스코시에 1500만달러를 기부해 다운타운에 ‘이종문 아트센터’ 박물관을 건립하게도 했다. 2003년 개장한 박물관 입구에는 이 회장의 흉상이 서 있으며, 이는 미국 이민사 100년 사상 처음 있는 일로 평가되고 있는 기업인이다.

▲ 백영중 회장
IT업계에 이종문 회장이 있다면 미국의 철강업계에는 백영중 패코스틸 회장(74)이 버티고 있다. 50달러의 종자돈으로 미국 내 경량철골 시장의 60%를 석권한 ‘철강 왕’ 신화의 주인공이다. 

1956년 26살의 젊은 나이에 단돈 50달러를 주머니에 넣은 채 아메리카드림을 꿈꾸며 오레곤대학에서 물리학, 인디애나 공대에서 토목공학을 잇따라 전공한 백영중 회장은 오하이오주의 벤위트카운티 기술공무원으로 사회 첫발을 내 디딘 후 1962년 LA소재의 슐레스틸이라는 철강회사에 엔지니어오 입사한다.

슐레스틸은 때 마침 베트남전 특수로 호황을 맞았고 백 회장은 ‘팩스 니(Paiks Knee)'로 불리는 철강구조물을 개발한 공로로 소수민족에게는 주어지지 않는 마케팅 업무를 맡아 미국 주류사회를 접하게 된다.

그 후 그는 패코스틸이라는 자신의 회사를 설립, 3개월만에 120만달러어치를 파는데 성공했으며, 3년 후인 1977년에는 미국 서부 7개 전체 시장의 50%를 석권하는 고속성장을 이뤘다. 

백 회장의 성공비결은 ‘고객 전부주의’였다. 고객이 무엇을 생각하는지를 제품에 담았고, 적시에 배달한다는 게 원칙이었다.

페코스틸은 현해 아칸소 공장을 비롯해 LA와 시카코 등 미국 전역에 8개의 물류기지를 갖고 있어 연간 매출액이 1억달러가 넘은 철강왕의 신화를 이뤄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1999년에는 LA지역의 ‘올해의 기업인’으로 선정됐으며 2003년도 KBS해외동포상 특별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 승은호 회장
동남아 한상연합회장을 맡고 있는 승은호 코린도그룹 회장(62)은 인도네시아의 정글에서 연간 8억달러의 매출을 올리는 정글의 사나이다.

부친이 설립한 인도네시아 현지회사를 총괄하기 위해 1969년 27살 나이에 한국을 떠난 그는 그러나 부친이 정치권과의 마찰로 1975년 부도를 내 빈털터리가 됐으나 우연히 일본기업인으로부터 자금을 융통받아 재기에 성공한 밀림의 주인공이다.

1979년 원목산업을 합판생산으로 전환한 그는 밀립에 공장을 세워 ‘코린도(코리아와 인도네시아의 합성어)’ 타운을 만들어 제지시장은 현지의 80%를 공급하고 있으며, 금융과 물류업에도 손을 대 큰 성공을 거뒀다.

회사명이 말해주는 것처럼 고국에 대한 사랑도 남다르다. 승 회장은 사업에 필요한 학종 원·부자재는 반드시 한국에서 수입해다 쓴다. 한창때는 1년에 1억달러어치 자재를 한국에서 사다 쓰기도 했다.

현지 교미들중 맏형으로 통하며, 인도네시아 한인학교 이사장, 한인상공회의소 회장, 한인회장, 그리고 2002년에는 세계한인회장협의회 의장도 맡아 세계 한상대회의 중심에 서 있는 인물이다.

▲ 임계순 회장
알렉스 한(60) 한원커머셜 회장은 미주상공인단체총연합회장을 맡고 있는 샌프란시스코와 오클랜드의 부동산 시장의 거물이다.

1960년 20대 나이에 유학길에 오른 그는 대학졸업 후 당시 유행하던 가발사업으로 마련한 밑천으로 백인이 운영하던 망하기 직전의 슈퍼마켓을 인수하면서 본격적인 비즈니스 세계에 뛰어들었다.

한 회장은 이 첫 번째 슈퍼에서 뛰어난 장사 수완을 발휘해 슈퍼인수 6개월만에 매상을 네 배 가까이 올려놓았으며, 이를 눈여겨 본 도매상들의 주선으로 다른 슈퍼마켓을 차근차근 인수해 20년만에 대형슈퍼마켓 4개를 운영하는 규모로 성장시켰다.

슈퍼마켓 사장에서 부동산 시장으로 전업한 그는 오클랜드에 있던 쇼핑센터를 한인타운으로 탈바꿈 시켜 이 지역에서 유일한 소수민족 타운으로 만들어 놓았다. 

한 회장은 단순히 돈을 버는 데만 그치지 않고 한인들의 권익 찾기에도 단연 앞장서고 있다.
“세금은 내는 만큼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생각에서 시정부와 협상을 벌여 이 지역 한인노인회에 12만달러의 예산도 받아냈다.  2003년에는 미주한인상공인단체 총연합회장을 맡으로 활동영역을 미주 전역으로 넓히고 있다.
 

▲ 알렉스 한 회장
임계순(59) 나노디벨롭먼트 회장은 1972년 단돈 50달러를 들고 미국에 들어온 후 30년만에 미 남부지역에서 손꼽히는 부자로 통하는 한상이다.

건국대학교 3학년 시절 서울 뚝섬에 ‘아폴로완구’ 회사를 설립해 직원 150명을 둘 정도까지 성공했으나 그는 이를 전부 팔아 형의 사업밑천으로 준 후 자신은 1972년 무작정 미국길에 올랐다.

미시시피주의 한 조그마한 마을 백화점에서 반지에 글씨를 새기는 일을 하면서 근로자 생활을 하던 임 회장은 장사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생면부지의 은행에 찾아가 “당신이 5천달러를 나에게 빌려주면 평생 뿌듯해 할 것”이라며 초면에 요구했고 그의 당돌함에 대출담당은 5천달러를 융자받아 가발공장을 차려 한 차례 재미를 봤다.

그는 1974년 한국에서 마구잡이로 들어 온 의류가 판로를 찾지 못해 전전긍긍하고 있을 때 절반가격에 몽땅 사들여 아칸소주에서 옷가게를 차려 또 한 번의 히트를 쳤고, 이를 바탕으로 미 남부지역에 30여개의 옷가게를 운영할 수 있게 됐다. 그는 이어 식당업에도 눈을 돌려 또다시 돈방석에 앉았다.

아칸소주 한인회장과 한인상공인연합회장을 지낸 그는 이제 한국의 나노기술을 상품화하기 위해 한국의 벤처기업에 투자해 최근 초미세 금속 분말 윤활유 개발에 성공했다.


이들 외에도  강종욱 리퀴드메탈테크놀로지스 회장과 크리스마스 섬에 위성발사 기자를 구촉한 권호균 아시아태평양우주센터회장, 일본에서 나자와 상회 사장과 콜럼비아 대표이사인 김건치 회장 등 전세계 시장을 뛰는 한상 리딩 CEO가 대거 제주를 찾게 돼 관심을 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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