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투성이 감귤나무의 '아픔'

▲ 감귤나무 상처 감귤나무는 상처투성이 입니다. ⓒ 김강임

춘분이 지났으니 봄이지요. 살아있는 모든 것이 꿈틀거리는 계절이 봄 아닌가 싶습니다. 죽은 나무를 자르는 계절도 봄이요, 가지치기 계절도 봄이지요. 죽은 나무를 잘라내야 물오르는 가지에 새순을 받아 낼 수 있으니까요.  

▲ 감귤열매 감귤나무에는 아직 수확하지 않은 감귤이 탐스럽게 달려 있네요  ⓒ 김강임 

지난해 감귤 풍년, 잔인한 봄 잉태

하지만, 요즘 제주는 살아있는 감귤나무를 자르는 작업이 한창입니다. 감귤농가마다 이파리가 무성한 나무를 잘라내야 합니다. 아직도 노란 감귤열매가 주렁주렁 남아있는데도 말입니다. 살아있는 나무를 잘라내는 아픈 시련을 겪어야 할 판입니다. 감귤나무 1/2간벌 작업(나무를 솎아내는 작업)이 바로 그것이지요.

감귤 풍년이 무슨 죄인가요? 지난해 감귤 풍년은 올해 잔인한 봄을 잉태했습니다. 생산량을 줄여야 적정가격을 책정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혹독한 가격파동 시련을 겪은 감귤농가는 눈물도 메말랐습니다. 한숨도 사치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농가마다 자진해서 간벌 작업에 참여하고 있는 중입니다.

▲ 간벌작업 감귤원은 나무 자르는 톱 소리로 분주하다  ⓒ 김강임 

3월의 휴일, 2천여 평의 주말농장에 정적이 흐릅니다. 1/2간벌 작업을 신청했으니 감귤나무 절반을 쓰러트려야 할 시간입니다. 살아있는 나무를 자른다는 것은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지요. 

수령이 15년 된 흥진이라는 감귤나무도 오늘은 생명을 마감하는 날 입니다. 감귤 밭에서 봄이면 제일 먼저 하얀 꽃을 선사하는 암기와 일남일호도 오늘은 주인과 마지막 인사를 나눠야 합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수확기에 가장 진한 노란색으로 당도를 자랑하던 다원이라는 나무도 이젠 주인에게 달콤한 맛을 선사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봄이라는 이유로 이 녀석들이 사라져야 한다니요. 그 명분이 너무나 안타깝지 않습니까? 

쓰러진 감귤나무에게 봄은 잔인한 계절입니다. 다른 생명들은 봄이니까 다시 태어나는데, 녀석들은 봄이니까 죽어야 한다네요. 너무 잔인하지 않습니까? 하지만 죽은 감귤나무는 감귤농가에게 희망을 주리라 기대합니다.  

▲ 봄이니까 잘라야 한다니 마음이 아픕니다.  ⓒ 김강임

▲ 감귤원이 간벌작업으로 아수라장입니다.  ⓒ 김강임

▲ 감귤원 절반이 쓰러진 나무로 가득합니다.  ⓒ 김강임

지난해 가격파동으로 수확하지 않은 감귤열매가 아직도 나무에 매달려 있습니다. 이 녀석을 베어내려 하니, 살려달라고 하소연을 하는 것 같습니다. 마음이 아픕니다. 해마다 봄에 가지치기를 하고 퇴비를 주고 무럭무럭 자라라고 영양제까지 주었는데, 하필 봄날에 베어내야 하다니요. 가슴 아픈 일입니다. 하지만 녀석들은 주인의 마음을 이해할 것입니다.

 

자신이 사라짐으로 인해 다른 감귤나무들이 바람과 햇빛을 더 많이 받아 더 달콤하고 토실토실한 열매로 태어날 수 있으니까 말이지요. 또한 생산량이 줄어들면 주말농장 주인도 가격파동에 시달리지 않을 테니까요.

▲ 지난해 수확하지 않은 감귤이 아직도 나무에 주렁주렁 달려 있네요. 감귤 좀 따가세요. 공짜예요.  ⓒ 김강임 
  
감귤원은 나무 자르는 톱질소리로 요란합니다. 녀석들의 몸통에는 상처가 깊어 갑니다.  나무가 쓰러질 때마다 내 마음도 쓰러지는 듯합니다. 나무들에게 봄의 상처는 너무  깊습니다. 

쓰러진 감귤나무 위에 봄바람이 붑니다. 그리고 햇빛이 내려앉습니다. 빼곡하던 감귤 밭은 공간이 많이 생겼습니다. 허전한 주인 마음이 어디 감귤나무 아픔보다야 더하겠습니까. 모든 생명이 잉태하는 봄인데 말입니다. <제주의소리>

<김강임 시민기자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http://www.ohmynews.com) 제휴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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