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사 기고·예술단체 심포지엄 등 18건에 대해 ‘용공’ ‘좌익’ 판정

제주지방경찰청이 도내 시민사회단체의 학술활동은 물론 대학교수의 언론사 기고, 그리고 대학생들의 학생회지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사상검증의 칼날을 들이댔던 것이 추가로 밝혀졌다.

제민일보가 27일 단독 입수해 보도한 바에 따르면 제주지방경찰청은 지난 1994년부터 2001년까지 모두 20건의 학술논문, 간행물, 언론사 기고 등을 경찰대학 부설 공안문제연구소에 사상검증을 의뢰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공안문제연구소는 이중 2건을 제외한 18건에 대해 모두 ‘용공’과 ‘반정부’ 딱지를 부친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따라 이미 밝혀진 4.3범국민위원회와 전교조 제주지부의 사업계획 등을 포함하면 모두 22건에 대해 이적성 여부를 심판한 것으로 드러나 상당한 파장이 일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날 공개된 20건의 사상검증 목록은 2001년까지 국한된 것이나 전교조제주지부의 사업계획은 2003년 문건으로 제주지방경찰청이 최근에까지 정치사찰과 사상검증을 해 온 것으로 추정돼 실제 제주경찰청이 사상검증을 의뢰한 건수는 이 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제주지방경찰청이 공안문제연구소에 의뢰한 문건 목록을 보면, 94년도 제주전문대(현 산업정보대) 총학생회 지역조사위원회 유인물 1건을 비롯해, 94년에는 제주4.3연구소 간행물과 제주전문대 4월 추모제 공동준비위와 제주민주청년연합회 유인물 등 3건에 대해 용공·좌익여부를 검증해 줄 것을 의뢰했다.

또 97년에는 4.3연구소 간행물(28호)과 제주사회문제협의회 간행물 ‘4.3 반세기(1·2·3호)’, 4.3역사신문 1·2호, 제주대 김모 교수의 도내 언론 기고문 ‘4.3이데올로기 자폐성 벗어나야’ 등 10건, 98년에는 제주대 총학생회 유인물과 총운영위원회 자료집, 제주대 교지, 그리고 2001년에는 4.3연구소 4.3 53주년 기념 학술대회 자료집, 민예총의 제4회 문예학술 심포지엄 등에 대해서도 사상감정을 의뢰했다.

공안문제연구소는 이중 4.3연구소의 94년 유인물과 97년 간행물에 대해서만 ‘문제없음’ 판정을 내렸을 뿐 나머지 18건은 모두 ‘용공’ ‘반정부’ ‘좌익’이라는 듣기에도 섬뜩한 판정을 내렸다.

[제주지방경찰청 이적·위법성 검토 의뢰 목록]

94년 제주전문대 총학생회 지역조사위원회 유인물 좌익
96년 4.3연구소
제주전문대 4월추모제 공동준비위
제민청(제주민주청년회)
간행물 23호
유인물
유인물
문제없음
용공
용공
97년 현기영(한국문화예술진흥원장)
4.3연구소
제주사회문제협의회 간행물
4.3역사 신문
박용배(당시 제주연합 사무처장)
제주대 김모 교수
제총협(제주지역총학생회협의회)
한국일보 기고-4.3 아직도 금기인가
간행물 28호
간행물-4.3 반세기 1, 2, 3호
1, 2호
유인물-4.3은 언제까지 벽이어야 하는가
신문기고-4.3이데올로기 자폐성 벗어나야
유인물-4.3투쟁 특별결의문
반정부
문제없음
용공
용공
용공
용공
용공
98년 제주대 총학생회 동백빌레
제주대 총학생회
제주대 한라산 교지편집위
유인물
총운영위 자료집
교지
용공
용공
좌익
01년 4.3연구소
민예총
4.3 53주년기념 학술대회자료집
제8회 4.3문화예술집 심포지엄
기타(불법)
기타(불법)

특히 제주지방경찰청이 의뢰한 20건의 문건 대부분이 제주4.3과 관련한 것들로 경찰은 ‘4.3’을 여전히 ‘공산주의 사주에 의한 남로당의 무장폭동’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줬다.

경찰청은 4.3과 관련된 사안에 대해서는 대학생들의 유인물에서부터 대학교수의 언론사 기고, 예술인들의 모임인 제주민예총에 이르기까지 사회 전반에 광범위한 사상 검증을 해 왔던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경찰이 그동안 정보와 첩보를 이유로 시민단체를 비롯한 각계 각층을 대상으로 수집한 각종 정보활동이 ‘사상검증’의 증거로 둔갑한 것으로 확인되면서 인권탄압과 함께 사상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한 것으로 밝혀져 시민사회단체의 강력한 반발이 예상된다.

한편 제주지방경찰청 고위간부는 26일 제민일보 기자에게 사견임을 전제로 “경위야 어떻든 4.3단체들에게 누를 끼친 점에 대해서는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제주4.3에 대해 대통령 사과까지 이뤄진 마당에 과거처럼 위법성 여부에 대한 감정의뢰가 없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4.3단체와 전교조 제주지부 등에 대한 ‘사상검증’이란 표현은 잘못됐으며 법 집행기관으로서 이들 유인물이나 자료집 등에 대한 위법성 여부를 판명해 달라고 의뢰한 것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