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귤원 농장지기의 가장 잔인한 봄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추억과 욕망을 뒤섞고

      봄비로 활기 없는 뿌리를 일깨운다.

      겨울은 오히려 따뜻했다.

엘리어트 황무지의 4월이 이만큼 잔인했던가요? 감귤나무 가지에 핏줄이 있었다면 아마 감귤원은 피바다가 되었겠지요. 10년 이상 된 수령의 감귤나무 절반을 베어내고 나니 허전함이 남습니다. 감귤원은 운동장처럼 휑합니다. 갈래갈래 찢어진 나무 가지를 정리하고 난 뒤 남편은 “올 봄엔 빈터에 상추도 심고 고추도 심어 보구려!”라며 위로 합니다. 

▲ 간벌한 나무아래 핀 야생화  ⓒ 김강임 

▲ 상처입은 감귤나무 뿌리 위에도 야생화가 군락이뤄  ⓒ 김강임

베어낸 나무아래 생존경쟁

화산활동으로 생긴 척박한 땅 제주, 제주의 감귤원 역시 척박합니다. 검은 흙과 돌이 덤벅이 된 땅이지요. 감귤나무 역시 척박한 땅 속에서 뿌리를 내리고 열매를 맺지 않았던가요? 베어낸 나무 아래에서는 또 다른 생존경쟁이 펼쳐집니다. 키 작은 야생화들이 벌써 영역을 확보하고 ‘터’를 잡고 있었습니다. 키가 5~10Cm도 안 되는 야생화의 생명력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 햇볕도 없는 감귤나무 아래에서 생명을 지탱했으니 말입니다. 

▲ 썩은 감귤위에도 야생화가 피었습니다.  ⓒ 김강임

▲ 썩은 감귤위에 꽃잎과 이파리를 내밀다 ⓒ 김강임
썩은 감귤 위로 야생화가 군락 이뤄 

녀석들은 부지런히 봄을 준비하고 있었던 게지요. 연약한 이파리와 줄기로 돌부리를 밀어내고서 말입니다. 덩치 큰 나무들이 잘려나가니 녀석들은 신이 났습니다. 척박한 검은 흙에 가녀린 뿌리를 내린 꽃들은 마치 자신이 터줏대감인양 사방으로 줄기를 뻗고 있습니다. 지난해 가격 폭락으로 버린 썩은 감귤 무더기 아래에는 하얀 들꽃이 배시시 웃고 있네요. 상처 입은 감귤나무 뿌리 밑에도 봄꽃이 기지개를 폅니다.

▲ 시멘트 길 위에도 봄의 야생화가 군락을 이뤘습니다.  ⓒ 김강임  

▲ 흙이 있는 곳이면 야생화가 피는것은 봄의 힘입니다.  ⓒ 김강임

감귤원 중간에 시멘트로 길을 만들어 놓았더니, 그 틈새에도 여지없이 야생화가 군락을 이뤘습니다. 녀석들은 감귤나무 가지가 잘려 나가자 너울너울 춤을 추고 있었습니다. 희비가 엇갈리는 순간입니다. 

간벌로 여유로워진 농장은 야생화가 장관입니다. 들꽃의 아지트입니다. 야생화의 고향 같습니다. 그런데 큰일 났습니다. 농장지기에게는 감귤원에 터를 잡은 야생화가 잡초에 불과하니까요. 더 이상 야생화 줄기를 뻗어나게는 할 수 없습니다. 꽃이 피기 전에, 열매가 맺기 전에 원천봉쇄해야 합니다. 일손이 부족한 농장지기에게 야생화 군락은 골칫덩어리이군요. 그러니 제초제를 날려야 할 판입니다.

영양분과 습도 알맞아 야생화 키 쑥쑥 자라

“여보, 우리 감귤원에 야생화나 키울까요?” 

남편은 어이없는 듯 보랏빛 야생화처럼 배시시 웃습니다. 환경을 생각하자니 제초제가 두렵고 주저앉아 잡초를 뽑아내자니 일손이 모자라니 이만저만 고민이 아닙니다. 가장 쉬운 것은 제초제로 야생화를 한꺼번에 몰살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면 감귤원의 봄은 황무지의 4월만큼이나 잔인하지 않을까요? 

▲ 감귤원에 장독대를 만들었습니다. 야생화가 길을 열었습니다.  ⓒ 김강임 

▲ 쑥부쟁이 씨가 봄바람에 토해내  ⓒ 김강임 

며칠 전, 감귤원에 비료를 주고 나니 봄비가 내리더군요. 그런데 녀석들은 서로가 영양분을 빨아 먹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그러더니 키도 쑥쑥 자랐습니다. 이파리도 무성합니다. 엎어 놓은 항아리 옆에는 야생화가 길을 열었습니다.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습니다. 어디서 날아왔는지 쑥부쟁이도 청초하게 피었습니다. 그리고 봄바람에 씨를 토해 냅니다. 그러나 농장지기 마음은 영 마음이 편하지 않습니다. 제초제를 뿌려야 하는데 야생화가 너무 곱게 피었으니 말입니다. 

▲ 청초하게 핀 야생화 어디서 날아왔는지 모를 야생화  ⓒ 김강임

꽃잎위 에 뿌연 제초제가 뿌려질 것을 

그런데 갑자기 봄비가 내렸습니다. 결국 제초제를 뿌리지 못했지요. 야생화 꽃잎 위에 봄비가 내렸습니다. 봄비를 맞으며 야생화는 소곤댑니다. 녀석들은 농장지기 마음을 알까요? 다음 주 휴일에는 야생화 꽃잎 위에, 서로 부둥켜안은 줄기 위에 푸옇게 농약이 살포된다는 것을. 올 봄 농장지기 감귤원은 가장 잔인한 봄이 되겠군요. <제주의소리>

<김강임 시민기자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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