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산 첫 얼음 풍경…“작품은 되는데 배우가 없으니, 아! 어쩌란 말이냐”

언론사 기자들의 꽃은 과연 누구일까.
암울했던 70~80년대, 최루탄이 날리던 길거리를 뚫고 다니던 사회부 기자는 단연 기자중의 기자였다. 경찰로부터는 최루탄 세례를 받고, 또 학생들과 재야단체들로부터는 ‘정권의 나팔수’로 비난을 받으면서도 사회부 기자들은 역사의 한 페이지를 기록하느라 그 정도의 아픔은 감내할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위안은 시위기사를 마감하고 옷에 묻은 최루탄 냄새를 털 때쯤 “수고했다”며 선배들이 사주는 막걸리 한 잔이었다.

▲ 위 사진은 제주의 소리에 실린 뉴시스 사진, 아래는 제주투데이 사진이다. 뉴시스 사진에는 투데이 기자가, 투데이 사진에는 뉴시스 기자가 우정출연을 했다.
사회가 민주화 되면서 정치적 욕구가 분출될 90년대는 광주청문회다 뭐다 하면서, 또 지역적으로는 지방자치가 부활하면서 정치부 기자들이 언론사의 얼굴이 됐다. 또 97~98년 우리나라가 IMF체제하에 편입돼 국가적 재난을 당했을 당시에는 경제부 기자들이 신문지면을 독식했다. 뭐든지 경제로 연결만 시키면 1면과 사회면 톱뉴스가 될 정도였다.

사회적 이슈가 줄어들고 국민들 사이에 정치적 혐오감이 확산되는 때와 맞춰 인터넷이 문화를 이끌고 다양한 문화적 욕구가 분출되는 요즘은 단연 문화부 기자들이 인기를 차지한다.

그러나 누가 뭐라고 해도 기자의 꽃은 단연 사진기자이다. 취재기자들의 인기가 사회부에서 정치부, 또 정치부에서 경제부, 그리고 문화부로 흘러 갈 때도 항상 그 중심에는 사진기자들이 터트리는 플래시가 있었다.

지난 아테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던 유도의 이원희 선수의 별명이 ‘한 판 승의 사나이’이라고 한다면 사진 기자의 애칭은 ‘한 컷 맨’이다. 모든 사건·사고와 역사현장을 단 한 컷에 담아내는 그들은 진정한 ‘한 컷의 승부사’이다.

그러나 그들의 고충은 누구도 이해할 수 없다. 뉴스란 게 그렇지만 가장 좋은 사진을 가장 먼저 올려야 한다. 그들에게도 ‘2위’는 없다.

사진기자들에게는 유난히 에피소드가 많다. 개구리가 동면에서 깬다는 경칩이 다가올 즈음 오일장을 찾는 사진기자들의 발길이 이어진다는 이야기는 이제는 ‘전설’이다.

▲ 제민, 제주, 한라일보 사진에는 연합뉴스 기자와 그리고 제주일보 사진기자도 출연을 하고 말았다.
아무리 경침이라고 해도 겨울잠에서 금방 깬 개구리의 모습이 사진기자들의 눈에 잡힐 리가 만무하다. 그러나 어쩌랴. 데스크는 닥달하고 ‘배우’는 없으니. 어쩔 수 없이 직접 스카우트에 나설 수밖에.

오일시장에서 큼지막한 양식개구리를 스카우트(?) 한 후 인근 야산으로 달려간다. 도망치지 못하게 하기 위해 뒷자리에 끈으로 묶고는 사진을 찍는다. 그러나 영 실감이 안 난다. 겨울잠에서 막 깨어난 개구리와 오일장에서 팔딱팔딱 튀는 개구리가 다를 수밖에 없음은 당연하다. 

안되겠다 싶어 개구리 뒷다리를 잡고 공중에 몇 바퀴 돌리고 난후 땅 바닥에 내려놓으면 개구리 눈알은 빙글빙글 이제 겨울잠에서 막 깬 모습이요, 어지러워 제대로 튀지도 못한다. 이 때 카메라 셔터를 누르면 그 사진은 영락없이 다음날 1면을 큼지막하게 장식한다.

서론이 너무 길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자.
제주지역 기자들에게 고충은 바로 한라산 첫 얼음, 첫 눈 취재다. 기상청과 한라산국립공원 관리사무소와 항상 연락을 유지하다 기온이 영하로 떨어진다는 소식을 접하면 일제히 장비를 싸들고 한라산 정상으로 돌진한다.

올 겨울 들어 한라산이 처음으로 영하로 떨어진 어제(27일) 도내 사진기자들은 새벽 4시에 한라산으로 향했다. 한라산은 사진기자들을 실망시키지 않고 윗세오름 일대 웅덩이에서부터 백록담에 이르기까지 얼음이 얼기 시작했다.

그러나 어쩌랴. 작품은 되는데 받쳐줄 배우가 없으니. 이 새벽에 한라산을 오르는 등반객이 어디 있을까. 그러나 그것도 잠깐 사진기자들의 입가에는 묘한 웃음이 감돌기 시작한다. 서로 배우가 돼 주겠다며 ‘자청(?)하는 바람에 포즈를 잡고 사진을 찍기 시작한다.

▲ 연합뉴스 사진에는 한라일보와 제주일보 기자가 노캐런티로 까메오 출연을 했다.
그렇게 찍힌 작품이 바로 27일 인터넷신문과 포털사이트 인터넷 뉴스, 그리고 28일 조간신문에 일제히 실릴 사진들이다. 

‘제주의 소리’에 실린 뉴시스의 사진은 제주투데이 기자가 출연하고, 또 제주투데이 사진에는 뉴시스 기자가 ‘우정출연(?)’ 했다. 또 연합뉴스가 송고한 사진에는 한라일보와 제주일보의 사진기자들이 역시 아무런 개런티(?)도 받지 않고 ‘까메오’ 출연을 했다.

또 제민일보과 제주일보, 한라일보에는 연합뉴스와 제주일보 사진기자가 동반 출연했다. 그러나, 아! 이 실수를 어쩌랴. 제주일보 사진에 자사 기자의 얼굴이 실리고 말다니. 그것도 자신이 자신을 찍은 셈이 되고 말았다.

독자들은 이 문제를 어떻게 볼지 몰라도 비록 연출이기 하지만 그래도 이는 사진기자들이 땀과 재치가 담겨 있는 연출이자, 독자들에게 한 컷의 좋은 사진을 보여주기 위한 작은 애교(?)로 봤으면 한다.

독자들은 한 번 스치고 지나칠 뿐인 한 컷의 사진을 찍기 위한 사진기자들의 고충이 그만큼 크다는 뜻이다. 스포트라이트는 항상 취재기자들이 받는 반면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고 오늘도 현장을 뛰어다니는 제주지역 사진기자들을 위하여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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