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증언 : 뼈 육신으로 남긴 죽은 자들의 기록 (1)

미군정 시절이었던 60년전 한반도의 남쪽 끝 제주섬에는 ‘빨갱이 사냥(Red Hunt)'을 한다는 이유로 군경과 서북청년단이 제주도민 2만5천~3만명을 집단학살하는 제노사이드( Genocide)가 행해졌습니다. 이들의 시신은 암매장 됐고 역사는 그렇게 흘렀습니다. 1992년 4월 2일, 구좌읍 세화리 다랑쉬굴에서 4.3당시 희생자 11구의 시신이 발견됐습니다. 4.3의 참상이 침묵의 역사를 거부하고 세상에 드러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10여년이 흐르는 동안 제주섬에서는 이루 말로 형언할 수 없는 학살의 현장이 곳곳에서 발견됐습니다. ’뼈와 굿‘은 제주지역 언론사 사진기자이자 전업 사진작가들로 (사)탐라사진가협의회가 4.3당시 영문도 모른 채 억울하게 죽임을 당했고, 근 60년동안 돌보는 이 없이 아무렇게나 방치돼 왔던 그날의 희생자를 생각하는 계기를 만들기 위해 역사의 순간순간을 기록한 ‘역사사진집’입니다. <제주의소리>는 4.3 60주년을 맞아 지난 아픔이 ‘화해와 상생’ ‘평화와 인권권의 장’으로 나가는 계기를 마련하기 위해 (사)탐라사진작가협의회의 협조를 얻어 ‘뼈와 굿’을 연재합니다. 이 사진전은 제주4.3평화기념관에서 3월28일부터 3개월간에 걸쳐 진행됩니다. /편집자

<다랑쉬굴>

배경 : 다랑쉬굴은 1992년 4월 11구의 시신이 발굴되면서 도민들에게 4.3의 아픔을 다시 한 번 되새겨주었다. 당시 시신 중에는 아이 1명과 여성 3명도 포함되어 있었다. 증언에 의하면 4.3의 참화를 피해 숨어 다니던 부근 해안마을인 구좌읍 하도리와 종달리 출신들로 1948년 11월 18일 희생되었다고 한다. 지금도 그들이 사용했던 솥.항아리.사발 등 생활도구들은 굴속에 그대로 남아 있다.

발굴결과 : 다랑쉬굴은 4.3당시 소개된 마을을 조사하던 제주4.3연구소 연구원에 의해 1991년 12월 발견됐으나 당시의 사회현실 때문에 공개를 미루다 전문학자 및 언론사.의사.법률가 등의 자문을 얻어 1992년 4월 1일 공개했다. 11구의 시신과 함께 항아리와 가마솥.질그릇.물허벅.요강 등의 생활용품과 낫.곡괭이.도끼 등 농기구들이 발견됐다. 수습된 유해는 유족들에 인도돼 조촐한 장례식 후 화장, 김녕리 앞바다에 뿌려졌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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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의소리>가 제주4.3 60주년 위령제를 맞아 기획연재하고 있는 '뼈와 굿'은 (사)탐라사진가협의회 협조를 얻어 이뤄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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