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요배의 동백꽃 지다 (2)

   
▲ 강요배·인민위원회 39.0×43.2cm, 종이·펜·붓·먹, 1990년

인민위원회

해방과 더불어 마을, 읍, 면 단위로 민중의 자치 행정 기구를 설립하다.

"일제 때 면정이나 고등 경찰을 했던 친일파들은 해방이 되자 꼼짝 못했습니다. 그 사람들은 대동아 전쟁 때 공출과 징용 등으로 크게 인심을 잃었지요. 대신 '건국 준비 위원회'(건준)가 생겨 김현국 씨가 한림면 위원장을 맡았습니다. 건준이 '인민 위원회'로 바뀌자 연로한 김현국 씨는 뒤로 물러나고 고운선 씨가 인민 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부위원장은 좌두형, 서기국장엔 김행돈, 산업부장엔 고종석 씨가 맡아지요. 모두 깨끗하고 양심적인 훌륭한 분들입니다. 나는 청년 동맹 위원장을 맡았지요.

당시 인민위원회는 실질적 권한을 갖고 있었습니다. 초대 도지사가 박경훈인데, 도지사 명의로 치안 관련 공문이 올 때 한림면 청년 동맹 위원장 이름을 먼저 쓰고, 그 밑에 한림 지서 주임 이름을 썼을 정도였습니다. 우리는 치안 확보에 주력했습니다. 해방된던 해 10월까지만 해도 일본군들이 남아 있었으니까요. 미 군정과도 큰 마찰이 없었습니다.

한번은 각 지역의 청년 동맹 위원장을 모이라 하기에 제주 북국민학교로 집결했는데, 그때 스타우트 소령은 '일본군 물자는 결국 당신내들 것이 될 테니까 일본군이 불지르지 못하게 해 달라. 그리고 치안과 질서가 유지되도록 앞장서 달라.'고 부탁하더군요."

고경흡高景洽, 1999년 86세, 한림읍 한림리, 당시 청년 동맹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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