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혼 4월의 시, 4월의 그림(5)

▲ 정용성·전야 / 120호F / 수묵 / 1994

백록(白鹿)을 기다리며

(고정국)

해발고지 높아질수록 나무들은 진솔했다
한두 개 명치에 박힌 상처자국을 내보이며
낮은 키 낙엽수들이 내게 옷을 벗으란다.

비정규직 일터 같은 한겨울 이 잡목 숲
관목들 등골이 휜 성판악 등산로 따라
한때 그 위풍 떨쳤던 잔해들이 보이고.

지엔피 이만불입네, 시인들도 다 뜬 지금
어느새 나의 글에도 기름기가 끼었다며
뼈뿐인 박달나무가 궁체 붓을 세운다.

더 큰 만남을 위해 어둠을 깊게 하라
빽빽한 설산에서 제 뿔이 하얗도록
묵묵히 백록(白鹿)을 기다린 초목들이 고마워.

 

* 고정국 : 1988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서울은 가짜다』외 4권. 사투리 서사시집 『지만울단 장쿨레기』, 산문집 『고개숙인 날들의 기록』 등이 있음.

* 정용성 : 개인전2회 / 4.3미술제 / 광주통일미술제 / 탐미협정기전 / 민족미술전 / 동북아와 제3세계미술전 등 다수

<제주의소리>

<제주의소리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 <제주의소리>가 제주4.3 60주년 위령제를 맞아 기획연재하고 있는 '진혼 4월의 시, 4월의 그림'은 (사)한국작가회의 제주도지회, (사)민족미술인협회 제주지회 탐라미술인협회 협조를 얻어 이뤄지고 있습니다.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