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불의사고 당한 혜인이에게 온 960점 성적표…가족들 다시 한번 통곡

▲ 생전의 민혜인양 모습.
만화책을 좋아하고, 피아노와 클라리넷을 잘 연주하던 소녀. 장난스럽게 LA 카지노에 가서 도박전문가가 되고 싶다던, 그렇지만 마음 속의 희망은 의과대학 교수가 돼 암과 같은 불치병에 대한 연구를 하고 싶어했던 18살의 혜인이.

혜인이가 가족들 곁을 떠난 지 한달여 가까이 지나 혜인이 앞으로 온 토익성적표는 다시 가족들 가슴에 못을 박았다. 지금까지 유학을 다녀오거나 외국에서 생활한 경험도 없는 혜인이의 토익 성적은 고등학교 2학년 학생이 받을 수 있는 성적으로는 거의 최상위권인 960점.

그러나 이 성적표를 받고 기뻐하는 가족은 아무도 없다. 혜인이의 부모는 주인 잃은 토익 성적표를 받고 참고 참던 울음을 또 한번 터뜨려야 했다.

민혜인양(신성여고 2)은 지난 7월18일 강원도 평창 뇌운계곡에서 래프팅 사고를 당해 가족들의 품을 떠났다. 

업체(평창레저투어·대표 유병구) 측의 안전불감증만 아니었다면 꿈 많고 웃음 많은 혜인이가 목숨을 잃는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혜인이가 래프팅을 하기 전, 래프팅 업체에는 폭우로 불어난 급류 때문에 영업정지 명령이 내려진 상태. 그러나 업체 측은 영업을 강행했고  혜인이가 타고 있던 래프팅 보트가 급류에 휩쓸려 잠수교에 부딪쳐 뒤집히면서 사고가 발생했다.

▲ 지난 7월18일 래프팅 출발직전 모습. 왼쪽 뒤에서 두번째가 故 민혜인양.
전국 과학경시대회에 제주도 대표로 참가할 예정이었던 혜인이는 대회를 앞두고 있어 가족 모임에 참석하지 않으려 했으나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기쁘게 해드리기 위해 무리하게 참석한 것으로 알려져 안타까움을 더했다.

하지만 혜인이의 부모 민경윤(47·제주시 일도2동)·송현숙(46)씨는 딸을 잃은 슬픔에만 젖어 있을 수조차 없었다.

래프팅업체가 혜인이를 그렇게 떠나보낸 이틀 후부터 다시 영업을 시작해 돈벌이에 나서고 평창군청 측에서도 이를 눈감아주는 듯한 비상식적인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혜인이가 사고를 당한 뇌운계곡은 평소에도 크고 작은 사고가 잇따르던 위험지역으로 뇌운계곡 코스를 폐쇄하거나 위험표지판 등의 설치가 요구되는데도 평창군청 측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은 채 관광객의 목숨을 담보로 관광수입만을 챙겨온 것으로 드러났다.

사고 이후 평창경찰서는 정원을 초과하고 영업중지 명령을 어기며 운행한 래프팅 업체 대표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영월지원 측에서 "도주 우려가 없다"는 이유로 기각, 현재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진행중이다.

▲ 민혜인양 가족의 단란했던 한때.
18살의 꽃다운 한 소녀의 생명을 앗아간 사고가 발생했는데도 그 죽음에 대한 책임을 지는 곳은 아무데도 없었다. 업체 측의 사고에 대한 불감증, 안전요원의 부주의, 행정당국의 무관심 때문에 혜인이가 죽었는데도 책임지는 기관이나 업체도, 사과하는 사람도 없는 것이 아버지 민씨를 더욱 괴롭게 하고 있다.

친구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한동안 악몽에까지 시달려온 고유희·김규래(신성여고 2)양.

이들은 "학교에서 분명히 사람의 목숨은 그 어느 것보다 소중하고 가치 있는 것이라 배웠다"며 "이처럼 소중한 한 생명이, 열여덟 밖에 되지 않은 아름다운 생명이 어떻게 어른들의 욕심 때문에 희생될 수 있냐"고 비분강개했다.

이어 "이번 사고의 책임자를 엄중 처벌해 물질에 눈이 멀어 사람의 목숨까지 빼앗는 이런 사고가 다시 일어나지 않게 해 달라"며 "책에서만 배운 정의의 모습이 현실에서도 진정으로 실현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 혜인이가 다니던 제주신성여고의 민혜인 추모 미사 모습.
담임이었던 한동군씨(42)도 진정서에서 "사고 직전 전국적으로 본 모의고사에서 백분율이 100%(전국 1위)로 나올 정도로 우수한 아이였다. 성적만 우수한 것이 아니라 주위 친구들에게는 조용히 들어주는 상담자 역할을 해준, 어머니 같이 따뜻한 역할을 해온 혜인이었다"고 민양을 기억했다.

그는 "법정에 서보지 않아 어떤 원칙에 의해 죄의 무겁고 가벼움을 다루는지 잘 모르지만 사람의 목숨을 가벼이 여기는 행위는 어떤 행위라고 쉽게 용서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 붕괴, 대구지하철 참사 등으로 무고한 인명이 희생됐는데도 우리 사회의 안전 불감증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 아버지 민경윤씨는 혜인이를 그렇게 보내고 난 후 계속 항우울제를 복용할 정도로 불안과 사회에 대한 원망이 가득하다.
딸 혜인이와 같이 억울한 죽음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민씨는 생업인 병원 일도 제대로 보지 못하고 동분서주하고 있다. 오늘(11월2일)도 두 번째 재판을 위해 영월에 가 있다는 민경윤씨.

민씨는 이러한 안전 불감증과 사후약방문 식의 대처가 얼마나 많은 이들을 희생시키고 마음에 상처를 새겨 넣어야 개선이 될지 이 사회를 향해 대상 없는 메아리가 되더라도 끝까지 외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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