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가 만난 우리꽃 이야기 174] 새우란

방목장의 말 제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광이다. 잔뜩 찌푸린 하늘, 곧 비가 내릴 태세다.  ⓒ 김민수

요즘 고사리꺾기가 한창이라는 제주소식을 듣고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피뿌리풀이었다. 만나고 싶어도 만나지 못하는 봄꽃들에 대한 아쉬움을 피뿌리풀로 달래야지 생각하며 떠난 제주도 출장길, 자투리 시간을 내면 서너시간 정도야 확보를 못할까 싶어 전날부터 카메라를 주섬주섬 챙겼다.
 
소풍가는 아이들처럼 일찍 잠에서 깨어나 하늘을 본다.
 
하늘이 잔뜩 찌푸린 것이 비가 곧 쏟아질 것만 같다. 일기예보를 들으니 남부지방부터 비가 올 것이라고 한다. 일기예보가 틀리기를 기대했지만 이륙하는 비행기창문에 빗방울이 부딛친다.
 
잿밥에 너무 관심을 많이 가지니 일이나 열심히 하라고 하는 것일까 싶을 정도로 얄미운 날씨다. 잔뜩 찌푸린 날씨지만 아직 비는 내리지 않는다. 비가 오지 않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해야 할 판국이다. 
  

피뿌리풀 제주도 동부지역에서만 자라는 귀한 꽃이다.  ⓒ 김민수 

드디어 자투리시간이 생겨 제주시에서 제주동부지역의 오름을 향해 내달렸다. 주어진 시간이 그리 많지 않으니 확실한 곳으로 가자고 생각하고는 피뿌리풀과 새우란 두 가지를 담을 요량으로 중산간도로를 달려 목적지에 도착했다.
 
그러나 많지 않은 시간 중에 40여분을 헤맸지만 피뿌리풀을 만나질 못했다. 분명히 거긴 것 같은데 막상 숲에 들어가보면 그 자리가 그 자리같다. 손가락보다 굵은 고사리도 눈에 차지 않는다. 내 마음이 급해서 피뿌리풀이 만나주지 않는 것이라 믿고 싶었다.
 
피뿌리풀은 제주동부지역에서만 자란다.
 
제주동부지역은 1948년 4·3항쟁 당시 가장 피해를 많이 봤던 지역이고, 지금 제주4·3평화공원이 조성되어있는 곳이기도 하다. 노무현 정권 당시 제주 4·3항쟁에 대한 관심과 여러가지 조치로 인해 제주도민들의 아픔을 조금이나마 치유해주는가 했더니만 정권이 바뀌자 보수우익단체들의 목소리가 힘을 얻으면서 제주도민들을 자극했다. 시대가 아무리 변해도 빨간칠만 하면 통하는 세상이니 건강하고 건전한 역사의식을 갖기가 참으로 어려운 일인가 보다.
 
그래서 '피뿌리풀'만 보면 제주 4·3항쟁 때 죽어간 영령들이 다시 살아난 듯 했고, 하필이면 4월에서 5월에 거쳐 피어나는데다가 제주동부지역에서만 자라니 각별한 꽃으로 인식되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흔한 꽃도 아니고, 원예종으로 기를 수 있는 것도 아니니 얼마나 귀한 꽃인가!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를 키워보겠다고 캐내어 제 집으로 가져가 시름시름 시들게 하다가 이내 썩혀 버리는 것이다. 마치 선량한 제주도민들을 빨갱이로 몰아 처단하는 이들처럼, 그래서 결국은 영영 사람이 살지 못하는 마을까지 만들었던 것처럼 말이다.  설마 몇 개체 남지 않은 것을 누군가 캐내어 간 것은 아니겠지….

새우란 뿌리가 새우를 닮았다고 한다.  ⓒ 김민수

 남은 시간은 30여분, 다시 회의장소로 가려면 서둘러야 했다.
 
피뿌리풀을 못본다면 차선인 새우란을 보고 가야할 것 같아 부지런히 이전에 제주도에 살 때 보아두었던 새우란 군락지로 향했다. 피뿌리풀이 있는 곳에서 차량으로 이동하면 그리 먼 곳이 아니기에 시간은 충분한 듯 했다.
 
그리고, 그 곳에서 새우란은 피뿌리풀처럼 꼭꼭 숨어있지 않고, 가장 예쁜 모습으로 피어있었다. 그동안 자생지에서 만난 것 중에서 가장 예쁜 모습의 새우란이었다.

새우란 그동안 만났던 야생의 새우란 중 가장 멋진 것이다.  ⓒ 김민수
   
 아마 들꽃 마니아들도 이 곳에 새우란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할 것 같다. 나도 전혀 의외의 장소에서 만난 것이니까. 그런데 고맙게도 이렇게 활짝 피어있으니 얼마나 고마운지….
 
"얘들아, 너희들 지금 뿌리를 내리고 있는 그 곳이 어떤 역사를 가지고 있는지 아니?"
"아픈 역산가요?"
"그래, 뿌리채 뽑혀나가는 너희들의 운명을 닮은 민중들의 역사란다."
"그래요, 옛날엔 지천이었죠. 이젠 이 곳엔 우리만 남아 명맥을 유지하고 있죠. 나를 본 사람들이 너도나도 캐가니 우리도 얼마나 이 곳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갈지는 모르겠지만…."
"그래, 그 마을도 아예 사라져버렸단다. 잃어버린 마을이라고 하지."
"아프군요."  

새우란 북제주군의 어느 오름자락에서 군락을 이루고 있다.  ⓒ 김민수  

그랬다.
 
피뿌리풀도 새우란도 꽃을 좀 안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뽑혀나가고, 흔하디 흔하던 춘란도 닥치는대로 뽑혀져 시장에서 꽃을 좋아하는 이들에게 싼 값에 팔려나가 이제 자생지에서 쉽게 만날 수 없는 들꽃이 되었다.
 
제주 4·3항쟁, 그 엄청난 폭력을 자행했던 이들이 내세운 명목은 이 나라를 사랑했기 때문이며, 수호하기 위해서라고 강변하고 있다. 억울하게 죽어간 이들은 빨갱이므로 당연히 죽어야 했었다고…. 젖먹이 어린아이들까지 그렇게 죽여야만 할 정도로 빨갛게 물들었을까?
 
자기 새끼들이 부모들이 친척들이 마을 사람들이 친구가 죽어가는데 분노하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으며, 그렇게 분노를 표출한 이들은 모두 다 빨갱이었을까?
 
다시 회의장으로 돌아오는 길에 4·3평화공원을 지났다.
 
이전보다 외형상으로는 많이 좋아진듯 한데 날씨가 흐린 탓인지, 새 정권이 들어서면서 4.3에 대한 보수단체들의 몇몇 망발들이 생각나서인지 쓸쓸해 보인다.  
  

유채밭 비내리고 바람 부는 날 아침, 제주의 유채밭을 저속셔터로 담아보았다.  ⓒ 김민수

그리고 밤새 비가 내렸다.
 
아침에도 비는 그칠 줄 모르고, 제주 특유의 바람이 불어온다. 유채밭이 비바람에 출렁거린다.
 
지금은 고인이 된 두모악 갤러리의 김영갑, 그가 생각이 났다.
 
생전에 그가 담았던 제주의 풍광들, 그 중에서도 압권은 사진에 담은 바람의 흔적이었다.
나도 언젠가는 그런 사진을 담고 싶은 꿈을 꾼다. 그런데 그 한 장의 사진을 얻기 위해 기다리고 인내하고 준비해야 하는 시간들이 얼마나 많이 필요한지를 안다. 어쩌면 평생 담지 못할 주제일 수도 있다.
 
회의를 마치고 서울로 돌아오는 길, 얄궂게도 비가 그치기 시작한다.
 
오랜만에 제주로 가면서 내내 들떠 잿밥에 눈이 멀었던 나를 놀리는 듯 비행기 창으로 나른한 햇살이 파고 들어온다. 비가 오는 날도 구름 위는 맑다는 사실을 잠시 망각했다. <제주의소리>

<김민수 시민기자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다음카페<달팽이 목사님의 들꽃교회>에도 실렸습니다.

※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http://www.ohmynews.com) 제휴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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