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훈이 만난 사람(8)] 한겨레신문 고희범 사장…"제주인이란 자의식 버린적 없어"

한겨레신문. 이제는 굳이 설명이 필요없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진보성향의 일간지로 알려진 신문. 최근 시사저널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한국사회의 전문가집단이 가장 좋아하는 매체 1위로 꼽힌 신문이기도 하다. 이 한겨레신문의 최고경영자가 바로 제주출신 고희범 사장이다.

▲ 고희범 한겨레 사장.ⓒ제주의소리
먼저 그의 이력을 보자. 40대 이상의 제주시민들에게는 유명했던 북초등학교 정문 앞의 '싸구리 점빵'을 운영하던 기독교 장로였던 고원숙씨(작고)와 김장순씨의 2남2녀중 막내로 태어났다(51년생). 현재 제주에는 노모와 형님 고희식씨  등 일가친척이 있다.

오현고 졸업(17회) 이후 69년 한국외국어대에 진학했다.  졸업 후 75년 CBS에 기자로 입사, 언론계에 입문했다. CBS 기자시절(80년대 초)  한신대 대학원에 진학, 신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그 후 88년 창간멤버로 한겨레신문에 합류했다.

창간 원년에 결성된 노조에서 초대 위원장으로 활동했으며, 이후 정치부장과 민권사회1부장, 국제부장을 거쳐 출판국장, 편집국 부국장, 광고국장, 논설위원 등 경영 및 편집의 주요 직책을 두루 거쳤다. 88년에는 가톨릭 언론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가 1년 8개월 전인 2003년 2월 치러진 경선에서 두 번째 직선 대표이사로 선출됐다. 당시 그가 내걸었던 캐치프레이즈는 '정정당당한 한겨레' '귀가 열린 개혁 후보'. 투표결과 62%(290표)의 지지율을 기록하며, 38%(175표) 득표에 그친 고영재 광고국장을 물리치고 신임 사장 후보로 당선됐다. 한달 후인 3월 22일 주총을 통해 그는 정식 사장으로 선임된다.

   
한겨레신문 역사상 최학래 사장의 연임에 이어 두번째 직선 사장으로 선출된 고희범사장. 언론을 떠나 '기업' 측면에서만 보면 초대 노조위원장이었던 이가 최고경영자로 변신한 입지전적 인물이라 할 수 있다.

그를 최근 서귀포 KAL호텔에서 열린 ‘생태도시국제포럼’에서 만났다.(이 인터뷰는 지난달 29일 오후 서귀포 KAL호텔 야외 벤치에서 30여분 동안 이루어졌다)

-오랜만입니다. 사장에 취임한지 얼마나 되셨나요?
“1년 7개월 됐습니다.”

- 임기가 어떻게 되시죠?
“2년이니까 내년 3월이면 끝납니다.”

- 연임할 수 있습니까?
“연임제한 규정은 없습니다.”

- 연임할 의향은요?
“그건 노코멘트하죠(웃음).”

- 최근 법원이 한겨레의 기획보도에 대한 조선·동아일보의 명예훼손청구소송에 대해 일부 승소판결을 내렸는데, 이에 대한 대응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요.
   
“대략 30여개 사항이 걸려있었는데 대부분 승소(무죄판결)했구요. 일부 항목에서 불리한 판결이 나왔습니다. 그것 때문에 조선일보에 8천만원, 동아에 3000만원 지급하라는 판결이 나왔는데, 항소여부는 변호인들과 충분히 협의해서 결정하기로 했습니다.”

(서울중앙지법 제26민사부(부장판사 박동영)는 지난 10월 22일 2001년 한겨레의 ‘언론권력 심층해부’ 시리즈에 대한 조선·동아일보의 명예훼손 손해배상청구소송에 대해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조선일보는 지난 2001년 3월 중순 한겨레의 언론개혁 시리즈 보도 중 13건에 대해 70억원의 손배소송을, 동아일보는 같은 달 한겨레 보도 20건의 보도에 대해 10억원의 손배소송을 제기했다. 재판부는 조선일보와 방상훈 사장이 청구한 13건의 기사 중 8건에 대해 진실성 또는 상당성을 인정해 명예훼손의 책임이 없다고 판결했고, 5건의 기사에 대해서는 명예훼손의 책임을 인정해 조선일보에 3000만원, 방상훈 사장에게 5000만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한편 앞서 서울중앙지법 제25민사부(부장판사 김상균)는 20일 안기부가 지난 97년 작성한 ‘한겨레신문 종합분석’이라는 문건을 지난 2001년 보도한 월간조선에 대해 6000만원을, 문건을 작성한 전 안기부 직원 3명에게는 70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요즘 대부분의 언론사들이 심각한 재정압박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한겨레는 어떤가요.
   
“신문사 수입은 광고 수입에 크게 의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경기가 안좋으니 광고가 제대로 수주되지도 않고 당초 목표에 미달돼 걱정입니다. 또한 그동안 몇 가지 주요한 사업을 벌인 것이 계획대로 안돼서 고전하는 것도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경제상황에 연동될 수밖에 없으니까 다른 신문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재정적인 면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고사장은 담담하게 말하고 있지만 현재 한겨레의 재정 상황은 심각한 것 같다. 고사장이 밝힌 ‘몇 가지 사업 중 고전하는 것’ 중의 하나는, 지난해 11월 자매지로 창간한 여성월간지 ‘허스토리’를 말하는 것 같다.  한겨레는 최근 창간 1년만에 이 잡지를 휴간하기로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한겨레는 최근 올해 잔여 상여금 250% 지급을 전액 동결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만큼 한겨레의 재정상황이 심각하다는 것을 방증한다)

- 오늘 포럼 개최 취지는.
“환경운동연합과 한겨레신문사가 전국 16개 지역 도시를 대상으로 생태도시 조성사업을 하고 있는데 거기에 서귀포시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어떤 특정 지역에 야생동물이 돌아오는 마을로 만든다든지, 도시에 생태공원을 조성해서 생태도시의 모양을 갖춘다든가 하는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16개 시범지역을 선정했는데 사업을 추진하면서 국제적인 심포지엄을 기획하게 됐고, 마침 서귀포시에서 적극적인 의지를 보여서 공동으로 주최하게 된 것입니다.”

   
- 제주 출신으로서, 현재 제주개발의 양상을 어떻게 보시는지 궁금합니다.
“단지 제주도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요. 현재 대부분의 지방자치단체장들은 재정적 이유로 개발유혹에 빠지기 쉽습니다. 따라서 자치단체장의 의지가 매우 중요하지요. 특히 천혜의 환경을 갖고 있는 제주도로서는 환경을 고려한 개발이 필수적입니다. 오히려 그래야 제대로 된 국제자유도시로서의 기능도 수행할 수 있다고 봅니다. 저는 어떤 점에서 환경문제와 관련해서는 중앙정부의 강력한 제어장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망가지는 것은 아주 순식간의 일일 것입니다. 그래서 대단히 걱정스러운데, 주민들도 당장의 경제적 이익에 관심을 기울이는 추세여서 자치단체장이 얼마나 환경보전에 대한 관심과 의지가 있는지, 즉 그런 철학이 있느냐 하는 게 관건이 될 것입니다. 결국 시민환경단체들이 이를 꾸준히 감시하고 지속가능한 제주개발이 되도록 조언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제주도도 이런 점에서 환경에 커다란 관심을 갖고 추진해야지 자칫 잘못하면 관광지로서의 명맥조차 끊어질 수도 있습니다. 하와이도 지하수 보호와 관리에 큰 관심을 쏟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제주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제주도는 물위에 떠 있는 섬이 아닙니까? 지하수 매장량이 엄청나다고 하지만 그렇게 안심하고 쓸 수 있을까요? 해수가 역류하는 지역도 있다고 들리구요. 이러한 부분에 대한 과학적인 연구가 필요합니다. 또한 지하수 폐공이나 하수시설들에 대한 관리도 체계적으로 이루어져 지하수 오염을 막기 위한 조치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노무현정부는 지방분권 로드맵에 따라 특별행정기관의 지방이양을 준비 중에 있습니다. 그런데 환경관련 특별행정기관도 일괄 지방이양하려 하고 있는데 문제가 심각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지방분권도 좋지만, 특별환경행정기관의 지방이양만큼은 신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최근 들어 참여정부의 정책, 기업도시, 골프장 규제완화 등이 ‘신개발주의’에 경도되어 있다는 우려와 함께 환경단체의 반발이 큰데요.
“환경단체들이 모여 노무현 정부의 환경정책이 친환경적이지 못하다는 것에 대해서 정책적인 검토를 시작한 모양인데, 그것도 결국 환경단체들이 목소리를 높이는 방법밖에는 없는 것 같습니다.”

- 화제를 바꿔보지요. 내일(10월31일)이면 작년 노무현 대통령이 제주에 와서 4.3에 대한 정부차원의 사과를 한 지 꼭 1년이 되는 날입니다. 1년이 지난 지금 입장에서 4.3문제가 제대로 해결되고 있는지 아니면 그 반대인지, 기대라고 할까, 평가를 한다면 어떻습니까?
“대통령의 사과 이후 상당한 변화가 있는 게 사실입니다. 교과서에 4.3이 자주독립운동 파트에 실렸다든지,  이런 긍정적인 점도 있지만 그 후 진행되는 일이 부진해서 문제입니다. 4.3지원단장이 몇 달째 공석인 상태로 있는 것도 그렇구요. 그 이유란 게 행자부 내 간부공무원들의 자리배분 문제 때문이라니 이건 도대체 말이 안 되는 겁니다. 4.3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의 문제가 무슨 갈 곳 없는 공무원들 자리 배치하는 데로 여겨지는,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 일인가 하는 말입니다. 4.3문제 해결은 진상조사보고서를 만들고 대통령의 사과로 끝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구체적으로 명예회복이 이뤄져야합니다. 또한 국가적으로 진상규명돼야 할 사업들은 국가적으로 진행해야 하고, 기념사업 또한 이상한 곳에 돈을 쓸 것이 아니고 제대로 그 취지에 맞는 사업에 예산이 투여돼야 합니다. 4.3유족이나 단체들도 특별법 제정되고 대통령 사과 이후 이젠 잘 풀리겠지 하면서 손을 놓는 경향이 있는데 그래서는 안됩니다. 끊임없이 ‘법개정 요구’ 등 목소리를 높여야 합니다. 이런 것들이 너무 방치되어 있다는 느낌이 없지 않습니다.”

-최근 과거사 진상규명법이 국회차원에서 제정논의중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혹여 제주4.3문제가 이의 한 부분으로 편입되면서 4.3문제가 소홀해질 가능성도 있다는 일각의 우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4.3은 그 본질적 성격상 다른 사건과 묶을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사건들은 한국전쟁 전후한 일들이고 제주4.3의 경우 한국전쟁 전에 일어난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은 별도로 특별법이 만들어질 수밖에 없었고 그렇게 해서 진상조사작업이 진행됐던 것입니다. 따라서 4.3을 거기다 연동시킨다든가 하는 것은 말이 안돼지요.”

- 최근 제주도는 특별자치도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내용은 잘 모르실 것 같은데...
“들어 봤습니다. 그 주제가 자치계층구조개편 문제와 연동돼 혼란을 겪고 있다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구체적인 내용은 잘 모르겠지만 제주도의 미래를 결정할 주요한 사안인 이상 구체적인 내용과 방향에 대해 도민 내부의 충분한 컨센서스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그간 제주지역의 자치단체장 선거를 둘러싸고 지역 사회의 갈등과 분열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여전히 존재합니다. 제주도의 정치발전을 위한 제안이 있으시면 한말씀 해주시지요.
   
“선거로 뽑는 일이라 일정정도의 갈등과 분열은 피할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미국도 보세요. 부시와 케리가 대판 붙었는데 난리 아닙니까? 완전히 나라가 두 쪽 난 것 같지 않나요. 한겨레신문사도 사장을 선거로 뽑으니까 갈등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선거든 간에 그 선거가 끝난 다음에는 어떻게 그 갈등을 해소할 것인가가 중요한 문제입니다. 문제를 감정적으로 풀려고 하든가 전임 장이 세웠던 계획들이 전면 부정되는 등의 양상은 옳지 않습니다. 문제는 도민들입니다. 선거가 끝나면 곧바로 평상으로 돌아와 지도자들이 잘못하면 꾸중하고 제자리를 찾도록 압력을 넣는 것, 이런 것들이 중요합니다. 이에 시민단체의 역할도 중요하지요.

- 그런 갈등을 조정해 줄 수 있는 원로다운 원로들이 제주도에 없어서 그렇다는 지적도 있는 것 같습니다. 시간이 없기 때문에 이제 마무리지어야 할 것 같습니다. 언제 제주에 내려오실 건지.
“제가 한겨레신문에서 할 일이 끝났다 싶으면 내려 오겠습니다”.

- 이후 정계나 관계에 진출할 생각은 없으신지.
“전혀 생각 없어요. 평생 언론인으로 살아왔는데, 언론인으로서 경력을 활용해서 무슨 정치를 한단 말입니까? 그럴 생각 전혀 없어요. 끝까지 언론인으로 살 겁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살아오면서 제주도 문제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일들, 예를 들면 송악산문제, 4.3특별법 제정 등 그런 일에 미력이나마 보태왔습니다. 저는 제주도 사람이라는 자의식을 버린 적이 없습니다. 따라서 나중에 서울에서(한겨레에서) 내가 해야 될 역할들을 했다고 생각되면 제주로 내려올 것입니다”


제주4.3연구소 이사이기도 고 사장은 그 동안 4.3문제 해결을 위해 '제주 4.3범국민위'를 주도하면서 강력한 대정부 투쟁을 펼치는 한편, 청와대와 국회관계자 등을 설득하는데 심혈을 쏟았다. 이렇듯 4.3특별법 제정에 고 사장의 보이지 않는 노력이 큰 힘이 된 것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언론사에 몸담고 있어 공개적으로 나서는 것을 꺼려한 이유도 있지만 그래도 결정적 순간에는 강력한 추진력과 외교력으로 관철시키는 힘을 그는 갖고 있다.

원칙에 충실하면서도 항상 미소를 잃지 않는 부드러움을 간직하고 있는, 전형적인 외유내강형 인사이다.

이런 그가 한겨레를 그만두게 되면 제주에 내려오겠다고 한다. 그날이 언제쯤일지 모르지만,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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