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대통령 언급조차 ‘일반화’시킨 김태환 지사

김태환 제주지사가 6일 기자실에 들러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2일 시도지사를 만난 자리에서 언급한 라스베가스에 대해 한 마디 했다.

김 지사는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한 기자가 이 대통령의 라스베가스 발언 배경에 대해 묻자 “이명박 대통령이 언급한 라스베가스 얘기는 카지노 문제와는 무관한 것이다. 대통령의 말씀은 자치단체가 변해야 한다는 일반론적인 얘기였다. 카지노 문제와 연관 짓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심중을 어떻게 헤아렸는지, 대통령이 김 지사에게만 뭔가를 귀띔한 게 있어 그런지는 몰라도 대통령의 발언을 ‘일반론적인 이야기’로 해석한 배짱이 대단하다. 평소 중앙정부가 하는 일이라면 거의 전적으로 수용해 ‘Yes Man'이라는 혹평까지 받아온 점을 감안하면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그러나 전후 사정을 알면 최근 내국인 카지노를 둘러싼 김 지사의 언행은 ‘배짱’이나 ‘소신’보다는 ‘집착’에 가깝다고 할 수밖에 없다는 게 솔직한 평이다.

대통령의 라스베가스 발언은 지방자치단체의 혁신을 강조하는 대목에서 나왔다.

“라스베이거스는 70년대 초 처음 갔을 때는 카지노와 향락산업으로 먹고 사는 도시였지만 , 지금은 온 가족이 함께 하는 관광도시로 바뀌었고, 무엇보다 수입의 80%가 국제회의 유치 등으로 벌어들이고 있다. 도시가 미래를 향해 진화해야 한다.”

김 지사는 대통령의 발언은 ‘변화’로만 받아들였을 뿐, 카지노와는 무관한 것으로 해석했다. 지사는 아마 ‘대통령 발언이 제주도가 하려는 내국인 카지노가 ‘된다’ ‘안된다’를 말한 것은 아니지 않느냐‘를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김 지사는 왜 대통령이 자치단체의 변화를 주문하면서 라스베가스 카지노를 꺼냈는지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제주도뿐만 아니라, 강원도 전남과 전북에서도 요구하는 게 ‘내국인 카지노’다. 이들 지자체는 ‘내국인 카지노’만 허가해 주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도깨비 방망이’로 알고 있는 상황이다. 엄청난 특혜인 ‘내국인 카지노’를 어느 한 지역에만 줄 수 없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또 요구하는 곳마다 줄 경우 전국토가 ‘도박판’으로 물들 게 뻔한 ‘내국인 카지노’. 쉽게 돈 벌려고 하지 말고 남들이 못 따라 올 새로운 아이디어로 자치단체의 경쟁력을 키우라고 주문한 게 대통령의 뜻은 아니었을까? 대통령이 돌려서 말한 의미를 김 지사는 정말 모르고 있을까? 아니면 그렇게 해석하고 싶은 걸까?

김 지사는 지난 4월 28일 정부가 ‘서비스산업 선진화방안’을 발표하면서 ▲관광진흥법 ▲국제회의산업육성법 ▲관광진흥개발기금법 등 소위 ‘관광3법’ 적용을 배제하는 권한을 제주에 넘기는 대신 ‘내국인 카지노’ 권한만은 불허할 때도 “관광협회에 예산을 지원해 도민들의 의견도 적극 수렴토록 하고 있다. (오는 9월) 정기국회 개원 이전에 제주도의 입장을 정리할 수 있도록 하겠다”며 내국인 카지노 추진을 굽히지 않았다.

이 보다 앞서 4월 3일에는 60주년 위령제에 참석했던 한승수 국무총리가 “내국인카지노는 국민적 합의와 여건이 조성이 안되면 당분간 힘들 것”이라고 사실상 ‘불가’ 방침을 밝히자 다음날 기자실을 찾아와 “한승수 총리가 어디 분이냐. 내국인카지노가 있는 강원도 출신이 아니냐”고 말해 갖가지 해석을 낳기도 했다.

이쯤에서 한 번 김 지사의 생각을 알고 싶어진다. 정말 정부의 뜻을 모르는 것일까? 아니면 ‘내국인 카지노’ 문제로 정부와 각을 세워도 전혀 손해 볼 게 없다는 정치적 계산이 깔려 있을까?

내국인카지노는 이미 이명박 정부에서 ‘불가’로 결론이 내려진 정책이다. 유인촌 문화체육관광장관이 주무장관으로서 이미 정부의 방침을 밝혔고, 이명박 대통령이 후보시절 제주방문에서 부정적 견해를 밝힌 적어도 이명박 정부 하에서는 ‘부활하기 힘든’ 정책인 셈이다.

대통령이 후보 시절 직접으로 밝혔고, 장관과 국무총리에 이어 대통령이 시도지사와 함께 한 자리에서 또 다시 언급한 문제를 김태환 지사가 애써 부인하는 이유가 궁금해진다.

그렇다고 제주도민사회가 이에 대하 합의하는 것도 아니다. ‘내국인 카지노’에 대한 김 지사의 의지가 이 정도에 이를 정도면 이는 ‘집착’에 가깝다.

갈 길 바쁜 제주도정의 최대 현안이 과연 ‘내국인 카지노’인지 묻고 싶다. 이명박 대통령이 내건 역외금융센터 등의 공약에 대한 도정의 관심은 뒷전인 채, 대통령이 ‘하지 않겠다’는 정책을 최우선 과제로 내건 이유가 너무나 궁금하다.

대통령이 유보입장을 밝힌 제주2공항, 제주4.3위폐지 문제, 한미FTA와 미국 쇠고기 수입협상으로 제주 1차 산업이 흔들이는 상황에서 내국인 카지노에만 목메는 이유를 알 수가 없다. 정책은 ‘합의’다. 이명박 정부가 미국산 소고기 수입협상으로 국민들의 거센 반발을 자초한 것도 바로 국민적 합의가 안된 정책을 일방적으로 밀어부쳤기 때문이다. 도민사회는 물론, 정부로부터도 호응 받지 못하는 정책을 추진하는 사이에 ‘제주특별자치도號’에 구멍이 생기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기만 하다. <제주의소리>

<이재홍 기자/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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