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시청 앞에서 열린 2차 촛불 문화제에서 만난 아이들

13일 오전에 광우병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농민단체 회원들이 제주도청 앞에서 삭발시위를 펼쳤다. 그런데 이 와중에 제주도청이 농민단체 회원들에게 전기를 공급하지 않아서 이 시위에 참가했던 농민들이 거세게 반발하는 일까지 생겼다. 지방자치단체가 주민의 목소리를 틀어막으려 하는 것을 보면서 지방자치제에 대한 깊은 회의가 생겼다. 지방자치의 핵심은 주민자치가 아니던가?

당국에 의해 사면초가에 몰린 촛불 문화제, 날씨까지 나쁘니 

경찰은 광우병 쇠고기 수입반대를 위한 촛불문화제를 불법집회로 간주하고 사법처리방침까지 세워놓은 상태다. 이에 뒤질세라 교육당국도 학생들의 문화제 참가를 엄하게 다스리겠다고 엄포를 놓고 있다. 많은 학교에서는 선생님들이 나서서 학생들에게 촛불문화제에 참가하지 말라고 지도하고, 문화제에 참가하는 학생들에게는 징계도 불사하겠다는 경고를 내려놓았다고 한다.

여러 정황으로 보아 학생들이 주도하는 미국 광우병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문화제는 사면초가에 놓여있음에 틀림없다. 그런데 12일 저녁부터 날씨가 심상치 않더니 13일 오후에는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날씨까지 도와주지 않으니 제주시청 앞에서 열기로 했던 촛불 문화제가 예정대로 열릴 수 있을지 궁금했다. 
  

제주 생협 회원들 우리 먹거리를 지키기 위해 촛불문화제에 참여했다. 맨 오른쪽에 아기를 업고 있는 회원이 오영미 씨  ⓒ 장태욱  
남학생들 고2 남학생들이다.  ⓒ 장태욱  

당초 우려와는 달리 행사 시작하기 직전인 7시 40분경 제주시청 앞 어울림마당에는 촛불문화제에 참가하기위해 모여든 학생들과 시민들로 가득 메워져 있었다. 다행히 저녁 6시를 넘어서 내리던 비도 멈춘 상태였다. 지난 5월 6일에 열렸던 1차 문화제 때처럼 어린 여학생들과 어린이들의 손을 잡고 온 시민들이 다수를 차지했다.

자리를 가득 메운 학생들과 시민들, 흔들림 없어

주부 오영미씨는 세 살 난 아들(양창훈)을 업고 제주생활협동조합 회원 주부들과 같이 문화제에 참석했다. 평소 먹거리에 관심을 많이 갖고 있었기 때문에 안전한 식탁을 지켜내기 위해 이 문화제에 참석하기로 의견을 모았다고 했다.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남학생들 대여섯 명이 초를 들고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학교에서 선생님들이 문화제에 참가하지 말라는 말씀이 있었을 텐데 어떤 마음으로 참가했는지 물었다.

"광우병 쇠고기의 위험성을 듣고 왔습니다. 혹시 이 행사장에서 담임선생님을 만나게 되더라도 제 스스로 떳떳하게 선생님에게 제 입장을 밝힐 수 있을 것 같습니다."(정영환, 고2)

노래패 청춘의 공연이 흥겹게 행사를 열었다. 

"우리들은 반대합니다. 미친 소를 반대해
우리들은 반대합니다. 명바기를 반대해
우리들은 반대합니다. FTA를 반대해"  
  

어린이들 부모의 손을 잠고 문화제에 참여한 어린이들이 서로 촛불을 점화하는 모습  ⓒ 장태욱
여학생들 촛불을 전달하는 모습니다.  ⓒ 장태욱  
    
참여한 시민들이 '청춘'의 신명난 노래를 따라하면서 행사장 분위기가 달아올랐다. 손에 들고 있던 초에 불을 켜기 전에 시민들은 이미 가슴에 장작불을 지피고 있는 듯 했다.
  
장동길 씨 '2MB 탄핵 투쟁연대'의 제주지역 대표를 맡고 있다. 장 씨는 이 문화제게 절대 불법이 될 수 없음을 역설했다.  ⓒ 장태욱  

문화제 행사를 준비한 장동길씨가 경찰당국과 수구언론에 일침을 가했다. 장동길씨는 '2MB 탄핵 투쟁연대'의 제주모임을 이끌고 있는 지역장이다.

"당국에서는 행사를 불법집회로 규정하려 하지만 이 행사에 불법의 요소는 전혀 없습니다. 우리는 국민 된 자들로서 주권을 행사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입니다. 행사에 모인 시민들은 걱정하지 말고 흔들림 없이 끝까지 함께 갑시다."

사회자의 제안에 의해 학생들의 자유발언이 이어졌다. 제일 먼저 마이크를 잡은 여학생은 자신을 고3수험생이라고 소개했다. 

"우리를 선동하는 것은 이명박 정부, 우리 얘기를 귀담아 들어야"

"저번 주에 시험 기간이었는데 공부도 못하고 광우병에 대해 얘기만 했습니다. 학생들이 행사에 참여하는 것을 보면서 자꾸 누가 선동한다고 하는데, 우리를 선동하는 것은 정부거든요? 40·50대 어른들은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를 보면서 우리의 의견을 듣지 않으려는데 우리를 무시하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민주시민이기 때문에 집회 결사의 자유가 있어서 우리는 촛불문화제가 아니라 시위를 해도 정당한 것입니다. 고3인 우리가 봐도 한심한 정책을 정부가 자꾸 내놓기 때문에 불안해서 공부를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에게 절박하게 중요한 것은 수능이 아니라 생존권이기 때문에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고3 여학생 정부가 잘못된 정책을 자주 발표하니 신경이 쓰여서 공부를 할 수 없다고 했다. 어른들에게 조중동의 말을 믿지 말고, 학생들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우려 주라고 당부했다.  ⓒ 장태욱   
고1 여학생 "학생들의 행동을 제지하려 하는 선생님들도 광우병에 걸릴 수 있다"고 했다.  ⓒ 장태욱

다른 고1 여학생이 마이크를 이어받았다.

"학교에서 촛불집회에 참석하면 징계하겠다고 했거든요. 징계를 받을지도 모르지만 여기에 나왔습니다. 오전에 학교에 광우병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전단지가 돌았는데, 선생님들이 그 전단지를 학생들이 보지 못하도록 막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막는 선생님들도 쇠고기 잘못 드시면 광우병에 걸릴 수 있다는 것을 아셔야합니다."

"어린 학생들이 주장한다고 해서 놀이로만 생각하지 말고 학생들의 의견도 잘 들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광우병 잠복기간이 10년이라고 하는데 저는 10년 후 광우병으로 죽기 싫거든요."

이렇게 가열된 분위기를 이어받은 사람은 우리문화연구소 오영순 소장이다. 오 소장이 학생들에게 "제주도에서 가장 훌륭한 여자가 누구냐"고 물었더니, 학생들은 "김만덕 할머니"라고 대답했다. 

학생들의 대답에 대해 오 소장은 "김만덕 할머니는 물론이고 우리 어머니들이 모두 훌륭하다. 그런 만큼 우리 어머니들의 자식 사랑하는 마음을 본받아 광우병 위험이 있는 미국 소 수입을 반드시 막아내자"고 했다. 학생들의 입에서는 함성이 터져 나왔다.
  

오영순 소장 우리문화연구소 소장이다. 시민들에게 제주 전통민요를 가르쳐주고 함께 불렀다. ⓒ 장태욱

오 소장이 부르는 제주민요를 시민들은 흥겹게 따라 불렀다.

이어도 사나 이어도 사나
널은 바당 앞을 재여
한질 두질 나아가곡
       …

문화제는 학생들의 댄스로 마무리 되었다. 주변에 경찰 50여명과 교사들이 지켜보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어린 여학생들이 흥겹게 노는 모습은 너무도 천진난만했다.  
  

▲ 학생들 지종일관 즐거운 표정으로 참여했다.  ⓒ 장태욱  
▲ 댄스 문화제의 마지막 순서로 경쾌한 음악에 맞춰 학생들이 춤을 추었다. 이들을 감시하는 눈초리들이 어땠는지 궁금했다.  ⓒ 제주의소리 

우리는 몇 세기를 살아가고 있나?

다음날 저 아이들이 학교에 돌아갔을 때, 저들을 맞을 교사들의 표정이 궁금해졌다. 그중에는 저 아이들에게 "고생했다. 네가 자랑스럽다"며 다정하게 손을 내밀 선생님도 한 분쯤은 계실 것이다.

저리 티 없이 맑은 아이들에게 징계와 사법처리로 대응하겠다는 방침을 정한 교육당국과 경찰에 대해 생각하다보니 문득 작가 이상(李箱)이 남긴 글귀가 떠올랐다. 

"20세기를 살아가는데 19세기의 도덕성밖에 없으니 나는 영원히 절름발이로다."

저 어린 학생들에게 억압을 가르치고 굴종을 강요하는 우리 사회는 지금 몇 세기에 와 있을까?  <제주의소리>

<장태욱 시민기자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http://www.ohmynews.com) 제휴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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