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로 어려움 겪는 제주 교래리 토종닭 전문 음식점

제주 교래리는 해발 410m 고지대에 자리 잡고 있는 마을이라 예로부터 농사를 짓지 못했던 곳이다. 주민들은 산에서 숯을 굽거나 사냥과 목축에 종사하며 삶을 지탱했다. 이 일대에 넓은 초지는 축산에 최적의 조건을 제공한다. 조선시대 이 일대에 국마를 키우던 녹산장과 침장이 자리잡고 있던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 표지 교래리 마을 입구에 세워진 표지이다. 도리는 교래리의 옛 지명이다. ⓒ 장태욱
새롭게 부상한 관광지 교래리에 토종닭이 날개를 달아

물찻오름, 말찻오름, 바농오름, 붉은오름, 큰퀘펜이오름, 셋퀘펜이오름, 돔베오름 등 이름을 다 헤아리기도 어려울 만큼 수많은 오름들이 간직해온 마을의 원시절경이 사통팔달 제주도 구석구석으로 이어지는 도로망을 확보하면서, 교래리가 제주 동부지역의 관광의 중추로 부상했다. 산굼부리로 잘 알려진 마을에 미니미니랜드와 제주돌문화공원이 들어서면서 다른 시도에서 이곳을 찾아오는 관광객이 늘어나고 있다.

▲ 교래리 교래리 마을에 이르면 큰 팽나무가 나그네의 시선을 잡는다. ⓒ 장태욱
과거 사냥과 목축으로 삶을 지탱했던 마을에 최근 들어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하는 음식점이 증가하고 있다. 그중 특히 잘 알려진 업종은 토종닭 전문점이다. 교래리 토종닭은 제주도는 물론이거니와 육지부에도 잘 알려진 지역 특산물이다.

교래리에서 토종닭 요리를 주 전문으로 하는 음식점을 찾았다. 상호가 '오름식당'인데, 7년째 이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고한군(36) 대표는 교래리 마을 청년회 회장을 맡고 있다. 고한군 대표를 만나 교래리 토종닭에 대해 궁금한 점들을 물었다.

▲ 음식점 토종닭 요리를 전문적으로 파는 음식점이다. 교래리 고한군 마을 청년회장이 운영하고 있다. ⓒ 장태욱
맛있는 교래리 토종닭의 비법은 '간의도계'

교래리 토종닭이 맛있다고 소문이 났다. 맛을 내는데 남모를 비법이 있을까?

"토종닭은 신선도가 생명입니다. 냉동 닭은 아무리 요리를 잘 해도 맛이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양계장에서 살아있는 닭을 받아서 식당 뒤에 보관했다가 손님이 오면 그 닭을 바로 잡아서 요리를 하는 겁니다. 횟집에서 수족관에 활어를 보관했다가 바로 잡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식당에서 직접 도계(屠鷄)한다는 것이다. 소나 돼지는 도축장에서만 도축이 가능한데 닭을 식당에서 도축한다고 하니 잘 납득이 되지 않았다.

"일정한 시설만 갖추면 식당에서도 직접 닭을 잡는 '간의도계'가 법으로 허용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조류독감이 휩쓸고 간 이후가 문제입니다. 정부에서 질병 확산을 방지한다는 차원에서 간의도계를 금지시킬 경우 교래래 토종닭은 큰 타격을 입을 겁니다."

▲ 음식점 토종닭 요리를 전문적으로 파는 음식점이다. 교래리 고한군 마을 청년회장이 운영하고 있다. ⓒ 장태욱
간의도계가 금지되어 도축장에서 죽은 닭을 공급받게 되면 닭의 신선도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냉동 닭을 사용한 음식은 시골까지 오지 않아도 도심에서 얼마든지 먹을 수 있지 않겠냐는 말이다.

"식당마다 약간씩 차이가 있겠지만 도시에서 파는 백숙과 시골에서 파는 백숙의 내용물은 거의 같습니다. 신선도 이외에 다른 차이가 없습니다."

고 대표의 말이 사실이라면 정부가 식당의 간의도계를 금지시킬 경우 이 일대 토종닭 음식점들은 심각한 타격을 입을 것이다. 정책 당국자들이 심각하게 고려해야 할 대목이다.

▲ 홀 나무를 사용해서 친근감 있게 만들어진 홀이다. 점심시간인데 손님이 없었다. ⓒ 장태욱
조류독감에 경기침체, 식당에는 한숨만 남아

평일이지만 점심시간인데도 음식 테이블은 거의 비어있다. 지난 해 여름에 근처 식당에 왔을 때는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였는데 1년 사이에 격세지감을 느낄 정도다.

"조류독감 방송이 나간 이후로 손님이 찾아오질 않습니다. 여름이 다 되었기 때문에 테이블마다 손님이 가득 차야 정상인데 최근 사정이 그렇지 못합니다. 조류독감도 문제지만 경기도 좋지 않은 것 같습니다. 매출이 작년 이맘때의 30%도 안 됩니다. 이런 상태로 가면 정말로 운영이 어렵습니다."

경기악화와 조류독감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와중에도 주위에 큰 식당이 문을 열었다. 처음에는 토종닭을 염두에 두고 개업했는데, 조류독감 여파로 식단을 바꿔서 김치찌개를 팔고 있다고 했다.

"교래리에 토종닭 장사가 잘 된다고 하니까 외지에서 들어와 큰 돈을 투자하고 음식점을 시작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토종닭이 생각만큼 이윤이 많은 음식이 아닙니다. 그리고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평일에는 손님이 별로 없습니다. 이런 곳에 음식 사업을 하려고 계획 중인 분들은 시장을 철저히 분석한 후에 오셔야 합니다. 낭만적으로 생각하시면 절대 안 됩니다."

업주들 노력하고 언론도 도와야

조류독감이 실제로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걸로 알려졌는데 사람들은 단기간이나마 닭요리를 기피하고 있다. 그런데 그 조류독감이 발생하고 있는 시기가 마침 최고 성수기인 여름이다. 앞으로 이에 대한 대책은 있을까?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교래리 토종닭 업소들이 모여 도민들을 대상으로 무료시식회라도 열어서 이곳으로 불러들이고 안심시키는 작업을 먼저 했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그것도 다른 업소 사장님들과 의견이 잘 맞아야겠지요."

고 대표는 언론에 대해서도 섭섭함을 내비췄다.

"언론에서는 조류독감이 발생하면 그 실상을 보도하는 데는 시간을 아끼지 않는데, 닭 요리가 조류독감으로부터 안전하다는 내용을 보도하는 것에는 매우 인색합니다. 그러니 소비자들 머리 속에 공포심만 남는 겁니다."

조류독감이 다 지난다 해도 양계농가와 토종닭 업소에는 걱정이 남는다고 했다.

"지금 양계장에 남아 있는 토종닭들은 잡을 시기를 놓쳤기 때문에 몸이 불어있는 상태에서 사료만 축내고 있습니다. 외부에서 제주도로 병아리 수입이 중단되었기 때문에, 나중에는 공급부족 사태를 겪을 겁니다. 가격 폭등이 예상됩니다."

그러면서도 고 대표는 어렵더라도 이 음식점을 계속 운영하겠다고 말한다. 한 번 다녀간 손님이 다시 찾아 올 때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양계농가와 닭요리를 전문으로 하는 음식점들을 힘들게 하는 이 조류독감 사태가 빨리 마무리되 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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