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제2의 호접란 되지 않게 구체적인 효과 검증돼야

세계농업 개방화 물결과 과잉생산 등으로 어려움에 빠진 감귤산업을 극복하기 위한 발전 방안 중 하나로 추진될 감귤 대형선과장사업에 대한 타당성 조사가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농림부와 제주도는 물론 도내 생산자단체 등에서 지역별 거점선과장 대형화로 소형선과장의 자연폐쇄를 유도하고 선과시설의 대형화, 첨단화로 시장대응력을 강화한다는 명분으로 대형선과장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들 대형 선과장의 처리능력은 1일 200톤으로 현재 운영중인 일반 선과장 평균 7.5톤에 비하면 30배 가까운 규모로 2010년까지 9곳 설치를 목표로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들 사업에 대한 사업타당성이나 효율적 운영에 대한 구체적인 검증은 그 어느 곳에도 없다. 농림부나 제주도나 생산자단체 모두들 대형선과장을 설치하면 지금보다는 나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 때문에 전문가 집단의 원가 계산이나 효율적 운영에 대한 진단 없이 시행하는 누를 범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

대형선과장 필요성에 대해 생산자단체 관계자는 “대형선과장 사업은 대형과 소형의 장·단점이 아니고 수확후 처리기술을 과학적으로 하기 위한 패킹하우스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일각에선 대부분의 선과장에 수천만원 또는 1억원에 가까운 시설지원이 된 상황에서 이를 무시하고 무작정 대형선과장을 짓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다며 현재의 소규모 선과장에 대한 마을별 통합 형태인 중형선과장이 대형선과장보다 더욱 효율적이지 않겠냐는 의견도 설득력 있게 들리고 있다.

정작 문제는 사업을 추진하는 농정당국이나 생산자단체에서 과학적인 기초조사도 없이 정부의 국비지원이 있는 만큼 일단은 시작부터 하자는 의식이 문제라는 지적이다.

대형선과장사업 자체에 대해 이견을 갖는 사람은 거의 없다. 소규모 선과장이 갖는 비효율적인 유통구조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대형선과장이 필수적인 요소임에는 모두가 동조하고 있는 셈이다.

그렇지만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는 법이다. 비슷한 예로 제주도의 호접란 사업이 그랬다. 호접란 사업은 시작 전에 타당성 조사도 했지만 결국은 130여억원이라는 도민의 혈세가 낭비된 셈이다. 당시에는 누구나 성공할 수 있는 사업임을 의심치 않았다.

제2의, 제3의 호접란 사업과 같은 실패를 맛보지 않기 위해서는 지금이라도 대형선과장 사업에 대한 기본조사를 통해 대형선과장을 새로 건설하는 게 좋은지 소형선과장을 마을단위로 합병한 중형 선과장이 좋은지에 대한 충분한 평가 후에 사업을 시작해도 늦지 않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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