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지기오름, 숲섬, 자리돔으로 유명한 제주 보목마을

서귀포항은 동쪽으로는 외돌개와 북쪽으로 천지연폭포 그리고 남쪽으로 새섬과 마주대하는 천혜의 자연경관으로 둘러싸여 있다. 서귀포항에서 시작하여 동쪽으로 향하는 해안도로는 오른쪽에 바다를 끼고 있는데, 그 바다 위에 떠 있는 새섬, 문섬, 숲섬이 한편의 풍경화와 같은 이미지로 다가온다. 멀지 않은 곳에서 자태를 자랑하는 섬들을 감상하면서 해안도로를 따라가면 정방폭포와 소정방폭포에 이른다. 두 폭포 입구를 지나면 파라다이스호텔과 칼호텔의 진입로에 서게 된다.

마을이 만들어지기까지

서귀포 칼호텔 진입로 입구에는 보목마을로 가는 길을 알리는 표석이 세워져있다. 이 표석에서 동쪽으로 2㎞쯤 가다보면 보목마을 회관을 찾을 수 있다. 보목마을은 과거 서귀포시가 시로 승격되기 전에는 남제주군 서귀읍 보목리에 속했는데, 서귀포가 시로 승격되면서 행정구역상 서귀포시 송산동에 소속되었다.

▲ 마을 입구 칼호텔 입구에 보목마을 표석이 세워져 있다. ⓒ 장태욱
보목마을은 지금으로부터 약 300년 전 보목마을 내 속칭 고막곶이라고 불리우는 곳에 백씨와 조씨가 설촌하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지금도 고막곶에는 오래전에 살았던 사람들이 남긴 흔적들이 발견된다.

당시 고막곶에 살았다는 조씨와 백씨 후손들은 보목마을 내에 남아있지 않다. 그러나 지금도 남아 있는 '백밭', '백개달래', '조개달래', '조개우녕'이라는 지명은 땅을 소유하였던 자들의 성씨(백씨와 조씨)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고 있다.

볼래낭개의 상징 제지기오름

보목마을을 '볼래낭개'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볼래낭개는 과거에 정수내의 동쪽을 부르는 지명이었다. 정수내의 동쪽 해안에는 보목포구가 있고, 그 북동쪽 가까운 거리에 제지기오름이 있다.

제지기오름은 절오름 혹은 절지기오름에서 변형된 이름이다. 이 오름의 남쪽에 굴이 있는데, 그 굴 속에는 절이 있었다고 한다. 절오름 혹은 절지기오름이란 이름은 그 절과 절지기에서 유래한 지명이다.

▲ 보목마을 제지기오름 정상에서 바라본 보목마을의 전경이다. ⓒ 장태욱
제지기오름은 봉우리가 해안에 인접해서 솟아 있기 때문에 정상에서 서귀포 해안을 시원히 내려다볼 수 있다. 동쪽에 지귀도, 바로 보목마을 바닷가에 있는 숲섬 그리고 서귀포항 앞에 있는 새섬과 문섬, 법환 바닷가에 있는 범섬이 지척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 오름은 현재 통일교 재단의 재산으로 등록되어 있는데, 재단에서 마을 공원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무상으로 임대해줘서 마을 청년들이 관리하고 있다.

백발노인 마을 수호신이 되어 노조궤당에 좌정하다

▲ 제지기오름 볼래낭개 마을에 있다. 통일교재단 소유인데 마을에서 무상으로 임대해서 공원으로 활용하고 있다. ⓒ 장태욱
제지기오름 인근에는 노조궤당이 있는데, 노조궤당에는 볼래낭개의 수호신이 좌정하고 있다고 한다. 소설가 오성찬씨는 자신의 소설 <바람난 마을>에서 보목마을 노조궤당을 소개하였는데,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아주 오랜 옛날, 볼래낭개 동네에 겨우 몇 가구가 모여 처음 마을을 만들어갈 때에 마을 사람들은 거의가 바다에서 고기를 잡아서 생계를 유지했다.

그 중에 일곱 형제가 어렵게 사는 집이 있었는데, 그들 형제는 모두가 고기잡이 어부였다. 어느 날, 그 일곱 형제가 배를 타고 바다로 고기잡이를 나갔다. 그들 형제는 너무 멀리 나가서 고기를 잡다가 안개가 끼고 바다가 어지러워서 우선 나타나는 가까운 섬 발에 배를 대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곳은 제주 섬에서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외눈배기 섬이었다.

그들 형제는 여러 해 동안 바다생활을 했고, 이따금 바람과 풍랑에 휩쓸려 표류하기도 여려 차례였으나 그 섬은 생전 처음 와 보는 곳이었다. 배가 고픈 형제들은 우선 인가를 찾아 나섰다. 그리고 섬의 한 그늘에서 허름한 초가를 발견했는데, 그 안에는 늙은 노파가 살고 있었다.

형제들은 노파에 의해 방 안으로 안내되었고, 푸짐한 저녁상을 대접받았다. 저녁을 먹은 형제들은 피곤한 나머지 잠이 들었다. 그리고 몇 시간이 지나자 잠시 잠을 깬 막내의 귀에 밖에서 노파가 할아버지와 나누는 대화소리가 엿듣게 되었다.

"염감, 이제 오십니까?"
"오늘은 재수 없는 날이요, 사냥도 한 마리 못하고…."
“한 마리도 못 잡았습니까? 난 집에서 일곱 마리나 잡았는데…."

노인들의 대화를 엿들은 막내는 저들이 식인종이 틀림없다고 생각하고, 잠을 자는 형제들을 깨웠다. 그리고 형제들은 주머니에서 송곳과 망치를 꺼내어 벽을 뚫기 시작했다. 그리고 벽에 사람이 빠져나갈 만한 구멍이 생기자 형제들은 그 틈으로 급히 빠져나왔다.

그곳을 벗어나 허둥지둥 달려가다가, 형제들은 길가에서 한 백발노인을 만났다. 뒤에는 아까 초가집 노인이 사냥개를 앞세우고 말을 타고 쫓아오고 있었다. 다급해진 형제들은 그 백발노인에게 도움을 청했다.

"할아버지, 도와주십시오. 우리는 쫓기고 있는 몸입니다."

할아버지는 바위를 굴려 형제들을 숨겨주었다. 그리고 노인이 말을 타고 와서 백발노인에게 형제들의 행방을 묻자, "저리로 달려갔다"고 거짓으로 대답했다.

백발노인은 "어쩌다가 저런 지독한 노인에게 걸렸냐"며 형제들을 배를 댄 포구에 안내했다.

"배를 타거든 뒤를 돌아보지도 말고, 입을 꼭 다물고 가시오."

백발노인은 형제들에게 이같이 주문하고, 배를 태워 보냈고, 형제들이 탄 배는 순풍에 돛을 단 듯 빠르게 바다 길을 따라 이동하였다. 그리고 배가 볼래낭개 마을 포구에 거의 당도했을 때였다.

"아이고, 살았다."

죽을 고비를 넘기고 고향에 돌아오게 된 것에 감격한 맏형이 기쁨에 넘쳐 한 마디 하고 말았다. 그런데 이게 변이었다. 그들이 타고 온 배는 바람에 불려 천리만리 다시 그 외눈배기 나라까지 날아가 버렸다. 형제들이 외눈배기 나라에 도착했을 당시 포구에는 다행히 그 백발노인이 앉아 있었다.

"왜 내말을 듣지 않는 거요?"

백발노인은 형제들이 타고 온 배에 오른 다음 뱃길을 안내했다. 그 일곱 형제를 고향마을로 데리고 온 백발노인은 젊은이들과 함께 볼래낭개 마을에 좌정하고 살았다.

그 백발노인이 죽자 형제들은 좋은 장소를 물색하여 모셨는데, 이 곳이 지금의 노조궤당이다. 이 당에 모셔진 노인은 주민들에게 수호신으로 받들어지고 있다.

▲ 숲섬 숲섬에는 문필봉이 있었는데 최근에 벼락을 맞고 파손되었다. 섬은 상록활엽수로 덮여있고, 국내에서 유일하게 파초일엽이 자생한다. 제지기오름과 더불어 보목마을을 상징한다. ⓒ 장태욱
마을 학생들에게 정기를 드높였던 숲섬의 문필봉

보목마을 바닷가 바로 앞에서 떠 있는 숲섬은 제지기오름과 더불어 보목마을을 상징한다. 이 섬에는 문필봉이라고 부르는 바위가 우뚝 서 있었다. 보목마을에서 유독 교사들이 많이 배출되었는데, 주민들은 그 이유가 마을 학생들이 문필봉의 정기를 받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최근에 문필봉이 벼락을 맞고 넘어진 일이 발생했다. 교사임용시험을 고시라 부를 정도로 교사되기가 어려운 현실을 문필봉이 깨달아버린 것일까?

숲섬은 섬 전체가 후박나무, 구실잣밤나무, 아왜나무, 가마귀쪽나무, 소귀나무 등으로 덮여있어서 상록수림으로 만든 자연식물원이라 부를 만하다. 그리고 이 섬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파초일엽이 자생지하는 곳이다. 그로인해 이 섬은 사람들의 출입을 엄격하게 통제하고 있다. 공무를 목적으로 이 섬을 방문하고자 한다면 서귀포 시청의 허가를 얻어야 한다.

▲ 이근섭 보목마을 회장 귤농사를 짓고 있다. 최근에 자리돔축제를 준비하느라 바쁘게 지내고 있다. ⓒ 장태욱
자리돔축제 준비로 정신없이 바쁜 이근섭 마을회장

보목마을회관을 찾아가 이근섭 마을회장을 만났다. 마침 보목마을 자리돔축제를 준비하느라 마을 임원들이 분주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이근섭 보목마을회장은 슬하에 1남 1녀를 두고 있다. 지금은 귤농사를 짓고 있는데 자녀들이 다 장성하였기에 큰 부담은 없다고 했다.

보목마을의 주 수입원이 무엇인지 물었다.

"주민들이 대부분 귤 농사나 바다일에 종사합니다. 귤은 우리 마을을 지탱하는 기둥입니다. 마을에 농지 면적이 작기 때문에 주민들이 외지에 농지를 많이 갖고 있습니다. 수산물도 마을에 주요한 수입원입니다. 전국에 유명한 보목 자리돔을 비롯하여 아직도 바다에서 소라와 전복이 많이 잡힙니다."

농민들이 어려운 시기를 맞고 있다. 보목 마을 상황은 어떤지 궁금했다.

"올해 귤꽃이 핀 것을 보면 작황이 형편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가격이 지지되지 않으면 큰일 납니다. 기름값이 올라서 시설 농업에 종사하는 분들도 상당히 어려운 처지에 있어요."

보목 마을로 들어오는 길가에 이국풍의 펜션이 많이 보였다. 인근에 유명한 관광지가 많아서 농촌형 숙박 시설이 인기가 좋을 것 같았다. 운영상황이 어떤지 물었다.

"이 동네에 펜션은 아주 잘 운영된다고 들었어요. 주말에는 방이 부족할 정도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펜션 소유자들은 전부 외지인들입니다. 지역 주민들은 거의 없어요."

▲ 서귀포시 하수종말처리장 서귀포시에서 약 20년 전에 이 곳에 하수종말처리장을 세울 계획을 발표하자 마을 주민들이 크게 반발한 적이 있었다. 이곳에 하수종말처리장이 들어서고 주변을 공원으로 꾸몄다. 지금은 야유회 장소로 각광받고 있다. ⓒ 장태욱
약 10여 년 전 보목마을에 서귀포시 하수종말처리장이 들어서면서 마을 주민들과 서귀포시청이 큰 갈등에 휩싸인 적이 있다. 마을 입구에 하수종말처리장에 들어섰는데, 지금 이 시설에 대한 주민들의 느낌이 어떤지 물었다.

"하수종말처리장이 당시 마을주민들이 걱정했던 것처럼 혐오할 만한 시설이 아니에요. 이 시설이 들어서면서 시청에서 그 주변을 공원으로 꾸며주니까 주민들이 여가활동하기도 좋아요. 서귀포시 주민들이 야유회로 가장 선호하는 곳이 하수처리장입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이 시설이 우리 마을에 들어선 것이 마을에도 보탬이 되었어요. 마을 발전을 고민하는 주민들은 이런 잘 판단해보고 시설이 큰 해가 되지 않을 것 같으면 유치를 위해 노력해야합니다."

혹시 마을에서 바라는 점이나 불편한 점이 있는지 물었다.

"언제부턴가 우리 마을에 해안도로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는데, 예산이 없다고 시청에서 공사를 중단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마을 옆에 신효에 쇠소깍 인근에는 해안도로가 만들어졌습니다. 이게 다 마을에 정치적인 힘이 없기 때문입니다. 인근의 마을은 도의원도 있고, 국회의원(김재윤 의원을 칭함)도 있어서 사업이 잘 이루어지는데, 우리는 그렇지 못해서 하던 일도 중단하는 겁니다. 이런 식으로 할 거면 지방자치 없애는 게 낳아요. 아무튼 우리 마을 청년들 중 인물 한 명 빨리 만들어야겠습니다."

▲ 포구 보목마을의 포구다. 보목마을에는 이 외에도 세개의 포구가 더 있는데 어선을 댈 정도 규모로는 이 포구가 유일하다. 이 포구 일대에서 자리돔축제가 열린다. ⓒ 장태욱
6월 13일부터 15일까지 보목 포구 인근에서는 자리돔축제가 열린다. 이근섭 마을회장은 "이 축제에 많은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게 홍보 좀 잘 해달라"고 신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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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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