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검찰, 1심 공소장에 없던 박영식 카드 제시…증인채택 등 법적 공방 불가피

▲ 현대텔콘 준공승인과 관련, 직권남용 혐의로 기소된 김태환 지사가 15일 항소심 첫 심리를 위해 법정에 섰다.ⓒ제주의소리
현대텔콘 준공승인과 관련, 직권남용 혐의로 기소된 김태환 지사에 대한 항소심 첫 심리에서 검찰이 박영식 전 제주시 주택과장의 카드를 꺼냈다.

1심에서 ‘무죄’ 판결이 내려져 사실상 “무리한 기소가 아니었느냐”는 지적을 받았던 검찰은 이날 항소심 첫 심리에서 원심판결에 대해 법리적 오해와 잘못된 행위판단에 대해 일탈했다며 항소이유를 밝힌 후 1심 심리와는 달리 박영식 전 제주시 주택과장을 항소이유에서 새롭게 거론했다.

이는 1심에서 검찰이 김태환 지사와 김성현 전 상하수도사업소장과의 양자 관계에서 김 시장이 재검토할 것을 지시하고 김 소장이 주택과에 공문을 발송해 결과적으로 현대텔콘 사용승인이 남으로써 김 소장이 '의무 없는 일'을 하도록 직권을 남용했다는 주장에 대해 1심 재판부가 “김성현은 사용승인권자가 아니며, 승인권자인 주택과장과 김 지사와의 인과관계가 없다”며 무죄를 선고하자 승인권자인 박영식 전 과장을 새로운 카드로 꺼낸 것이다.

박영식 전 주택과장은 1심 항소장에서는 전혀 거론되지 않았던 인물로 검찰은 1심 재판부의 판결에 대해 법리적 오해와 행위판단에 대한 일탈을 거론하면서도 2심의 승부수로 박영식 과장과 김태환 지사와의 ‘직권남용’ 혐의를 새롭게 추가하려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검찰은 이날 첫 심리에서 “공소사실을 변경할 지 여부를 검토하겠다”며 신중한 입장을 밝히긴 했으나 결국 항소심에서 주된 초점을 김성현과 함께 박영식에 맞추고 이를 입증할 수 있게끔 공소사실도 변경할 것으로 추측된다. 또 이들 두 공무원에 대해 검사와 변호인단의 증인신청도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검찰이 항소 요지에서 밝힌 새로운 쟁점은 대략 두 가지이다. 하나는 이미 거론된대로 박영식에 관한 문제이고 또 다른 하나는 법률적으로 ‘의무 없는 일’에 대한 해석상의 차이이다.

1심에서 드러난 검찰의 공소사실은 김태환 지사와 김성현 전 소장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이는 현대텔콘이 원인자부담금을 내지 않은 상태에서 사용승인이 떨어졌으며, 이는 김태환 지사가 김성현 소장에게 재검토하도록 부당한 지시를 내렸기 때문이라는 게 검찰의 주된 요지이다. 또 김성현 소장 역시 검찰조사에서 김 지사가 얼굴을 붉히면서 격앙된 목소리로 승인해줄 것을 지시했다고 밝힌 진술을 토대로 한 것이다.

그러나 이게 1심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자 원인자부담금 담당자인 김성현과 함께 사용승인 담당자인 박영식 전 과장을 끌어들였다.

이는 1심 재판부가 김성현 전 소장에 대한 김태환 지사의 지시를 인정했으면서도 김성현 소장이 사용승인권자가 아니라며 ‘무죄’판결을 내린데 따른 것으로 검찰은 김 지사가 김성현 전 소장과 함께 박영식 전 과장에게도 부당한 압력을 행사했음을 입증하고자 하는 것이다. 

   
검찰은 이날 항소이유서에서 김태환 지사가 2000년 4월29일 제주종합경기장에서 김성현 소장에게 재검토지시를 내렸을 뿐만 아니라 같이 있던 박영식 전 과장에게도 재검토지시를 내렸다고 주장했다.

즉 김태환 지사가 김성현 전 소장에게 원인자부담금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공문을 주택과에 발송해 ‘의무없는 일’을 하도록 직권을 남용했을 뿐만 아니라 박영식 전 과장에게도 원인자부담금을 납부하지 않은 상태에서 사용승인을 하도록 직권을 남용했다고 주장했다. 건축물 사용승인의 주요한 열쇠가 되는 김 소장은 물론, 직접 담당자에게도 압력을 행사했다는 게 검찰측 항소이유이다. 

검찰의 이 같은 항소이유에 대해 변호인단은 즉각적으로 공소장을 변경할 것을 요구했다. 박영식 전 과장 문제는 1심 공소장에는 전혀 언급이 없던 내용으로 항소심에서 박영식 전 과장 문제를 거론하게 될 경우 그에 맞춰 공소장을 변경할 것을 주문했다. 

검찰이 1심에 이어 항소심에서 주요하게 제기했던 또 하나의 문제는 김 지사의 직권남용 판단여부가 되는 ‘의무없는 일’에 대한 법리적 해석이다.

검찰은 김 지사와 김성현이 사적인 관계에서 재검토 지시가 내려졌다면 이는 법률상 ‘의무 없는 일(직권남용)’이 아닐 수 있으나, 김 지사와 김성현 전 소장 사이는 법률적 직무권한과 관련된 관계로, 법률에 없는 내용을 지시함으로써 법리상 ‘직권남용’에 해당된다고 주장해 새로운 법리논쟁을 촉발시켰다.
 
그러나 변호인단의 반론도 만만치 않다.

이날 첫 공판에서 김 지사 변호인단은 심리를 하지는 않았으나 공판종결 후 “검찰이 공소장을 변경한다 하더라도 판결자체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

변호인단은 “검찰은 김 지사의 재검토 지시가 ‘직권남용’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시장과 김성현 소장과의 관계는 ‘특별권력관계’로 민선자치단체장이 민원과 관련해 재검토 지시는 당연히 내릴 수 있는 지시사항”이라고 밝혔다.

변호인단은 또 “김성현 소장이 당초 원인자부담금 납부를 요구했다가 자체적으로 재검토하고 현대텔콘으로부터 각서를 받은 후 공문을 발송한 것으로, 30년 넘게 공무원 생활을 한 간부가 시장이 위법한 지시를 내렸다고 과연 따르겠느냐”며 검찰측의 강압주장에 반론을 펼쳤다.

이 변호인단은 또 “법리적으로 다소 논쟁은 있으나 건축물 사용승인 이전에 원인자부담금을 내야한다는 것은 행정의 ‘재량행위’일 뿐 반드시 내야 한다는 ‘기속규정’은 아니”라면서 “오히려 원인자부담금을 납부하지 않는다고 사용승인을 하지 않는 행위가 ‘직권남용’이자 재량행위 일탈”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오는 29일 열릴 예정인 항소심 2차 공판에서는 김태환 지사의 재검토 행위가 과연 법적권한을 뛰어넘은 직권남용인지, 아니면 특별권력관계에서 있는 당연한 지시인지를 놓고 치열한 법정 공방이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 과정에서 김태환 지사가 김성현 전 소장과 박영식 전 주택과장에게 내린 ‘재검토 지시’를 이들 두 공무원이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도 여부도 주요한 변수로 떠오를 전망이다.

또 검찰은 김성현 소장이 김태환 지사로부터 ‘얼굴을 붉히면서 격앙된 목소리로 재검토 지시를 했다’고 진술했다고 밝혀 1심에서 생략된 김성현 소장의 진술 진위여부에 대해서도 검찰과 변호인단간의 치열한 공방이 전개될 것으로 예상된다.

변호인단은 그러나 이미 1심 심리에서 김성현 소장이 검찰 조사에서 1∙2번째 조서까지는 이에 대한 아무런 문제를 제기하지 않다가 갑자기 3번째와 4번째 조사에서 ‘김 시장이 얼굴을 붉히고 정색하면서 이야기 했다’는 내용으로 진술을 번복했다고 지적한 바 있어 김성현 전 소장의 진술의 신빙성 여부에 대한 법정 다툼도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날 재판부는 통상 다음 재판기일을 한 달가량 여유를 두는 관례에서 벗어나 2주 후인 29일로 2차 심리일자를 잡음으로써 집중심리를 하겠다는 의지를 간접적으로 내비쳤다.

그러나 검찰이 공소장 변경이 불가피하고 또 3차 공판에서 증인채택도 불가피할 것으로 보여 항소심 결심공판은 빠르면 4차, 늦어도 5차 공판에서는 내려질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2주에 한 차례씩 집중심리가 이뤄진다고 가정했을 경우 빠르면 12월말 늦어도 내년 1월 상순쯤에는 내려질 것으로 관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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