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국제공항에 도착한 후 시내방향으로 이동하다 보면 외국어로 표기된 대형 안내판과 마주치게 된다. 공항 입구에서는 영어와 일어, 중국어로 표기된 독립된 3개의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고, 시내 주요 교차로에서도 3개 언어로 표기된 대형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다. 대형 안내표지판인 관계로 도보로 이동하거나 또는 버스 창밖에서 여지없이 시선을 잡아채는 홍보슬로건에 무덤덤해질 때도 지났건만 오히려 의아스러운 사항이 차곡차곡 포개지고 있다.

▲ ⓒ 제주의소리 문성민 시민기자
 
첫째, 외국관광객을 환영한다는 의도로 설치된 안내판의 실효성에 관한 문제이다. 특수한 분쟁지역을 방문하는 예외적인 상황을 제외하면 제도화된 관광목적지를 방문하는 관광객 관점에서 환영받는다는 점은 당연한 것으로 인식한다. 단체여행일 경우 전세버스의 창 밖에서 일순 스쳐가는 방문환영 슬로건에 노출되기도 어렵지만 설령 인식하더라도 관광객이 감동한다고 생각하는 건 무리이다. 관광종사원의 서비스라든지 지역주민의 친절 등 관광객은 관광활동 중 마주친 사람과의 조우(encounter)를 통해 해당 관광목적지의 환대정신을 평가하는 것이지, 고정 설치된 도로 안내판의 환영슬로건에 감동받지는 않는다.
 
둘째, 외국관광객은 배려된 반면 내국관광객은 배제된 측면이 다분하다. 영어가 상용화되어 있지 않은 제주의 현실에서 원활한 의사소통이 어려운 외국관광객을 배려하는 건 타당하지만 그렇다고 자국관광객 소외를 합리화할 수 없다. 도로에 설치된 대형 안내판의 효율성에 대해 부정적이지만 한국어는 배제한 채 외국어 안내판만 설치한 것은 외국관광객에 대한 과잉친절로 비춰질 뿐이다. 제주사투리를 제주어로 격상시키려는 논의는 활발하지만 정작 제주어로 표기한 환영슬로건을 도로변에 세우지 못하는 건 자부심과 정체성의 문제이다.
 
셋째, 영어 홍보문구인 We Love Having You Here는 공용어로서의 기능을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 즉, 영어 홍보문구의 노출대상은 비단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관광객뿐만 아니라 일본어와 중국어를 제외한 모든 언어사용집단을 전제로 하면 최대한 명확한 의미의 단어가 선별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행형(~ing)이 좀처럼 사용되지 않는 단어 Have가 Having으로 표기되면서 다양한 의미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예를 들어 <우리는 당신과 여기에 함께 있게 된 점을 사랑합니다>로 해석할 수 있고 혹자는 <우리는 당신이 여기를 방문해 주신 점 사랑합니다>로 해석할 여지도 있는 등, Having의 의미를 수용하는 방식에 따라 천차만별의 의미해석이 이루어진다. 영어를 제2외국어로 구사하는 관광객인 경우 의미가 불명확한 Having이라는 단어를 아예 제외해 버리면 We Love You Here, 즉 <우리는 여기를 방문한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상투적 문구로 치부한다는 점이다.
 
넷째, 영어 홍보문구에서는 We(우리=제주도민)와 You(당신=관광객)가 명백히 구분되어 있다. 이처럼 우리(We)에 속하지 않는 모든 집단을 당신(You)이라는 일반화된 타자(generalized others)로 투사하는 이분법적 구분은 배타성을 드러내 보이고 있다. 더구나 우리(We)와 당신(You)을 구분하면서 사랑(Love)한다는 환영슬로건에서 진정성을 체감하기 어렵다. 결국 제주국제자유도시의 이념이 개방과 포용을 전제로 한다고 보면 거주유무에 관계없이 우리(We)라는 단일 정체성이 부각되어야 한다.
 
뉴욕의 홍보슬로건, I Love NY
 
제주의 홍보슬로건은 Love(사랑)라는 강력한 감정표현 동사를 사용하고 있다. 홍보슬로건에Love(사랑)라는 단어가 사용된 사례로 1977년 도시마케팅 목적으로 개발하여 현재까지 사용되고 있는 뉴욕의 홍보슬로건인 I Love NY(나는 뉴욕을 사랑합니다)은 전 세계적인 인지도를 형성한 대표적인 홍보슬로건이다. 이런 점에서 뉴욕 홍보슬로건과의 비교분석은 추후 미래지향적인 제주홍보슬로건 개발 및 평가에 일조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뉴욕의 홍보슬로건은 대상을 제한하지 않는다. 즉, 제주의 홍보슬로건에서는 We(제주도민)와 You(관광객)가 명백히 구분되는 존재인 반면, 뉴욕에서는 오로지 I(나)만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I(나)의 대상범위는 뉴욕에 거주하는 지역주민으로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뉴욕을 방문한 관광객도 낯선 이방인이 아닌 뉴요커(New Yorker)로서의 I(나)로 탈바꿈한다. 또한 처럼 미국 영상문화에 매료되었다면 뉴욕을 방문하지 않았더라도 스스로를 뉴요커로 인식한다는 점에서 I(나)는 인종, 국적, 연령 등에 구애받지 않는 진정한 코즈모폴리턴을 의미하는 것이다.
 
둘째, 제주의 홍보슬로건과는 달리 뉴욕의 홍보슬로건에서는 장소성과 장소애착의 함의가 명확하다. 제주의 홍보슬로건에서 사용된 Here(여기)가 의도하는 바는 관광목적지로서의 제주를 의미하지만 감정(Love)의 지시대상은 관광객(You)으로 제주를 의미하는 Here(여기)가 아니다. 다시 말해서, We Love Having You Here(제주도민은 여기를 방문해 주신 관광객을 사랑합니다)에서 제주도민이 사랑하고자 하는 대상은 관광객(You)이지 삶의 터전인 제주(Here)가 아니라는 점이다. 이러한 제주의 홍보슬로건과 비교해 보면 I Love NY(나는 뉴욕을 사랑합니다)에서 지역주민으로서 I(나)가 사랑하는 대상은 삶의 터전인 뉴욕(NY)이고, 관광객으로서 I(나)가 사랑하는 대상은 관광목적지로서의 뉴욕(NY)이고, 마지막으로 뉴욕문화매료자로서의 I(나)가 사랑하는 대상은 문화수도로서의 뉴욕(NY)인 셈이다. 따라서 거주여부를 막론하고 뉴욕(NY)이라는 장소를 매개로 전 세계 사람들이 장소성(sense of place)과 장소애착(place attachment)의 공유를 가능케 하는 슬로건이 I Love NY이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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