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사람이 쓰는 제주이야기 2] 제주 제사상엔 오르지 못할 것이 없다

제주도 제삿상 차림 저희 집 제삿상 차림입니다. 제주도에도 지역마다 상차림 풍습이 많이 다릅니다. 이를테면 옥돔머리 방향, 등부분의 위치가 다르던가 하는 것은 많이 있습니다. ⓒ 강충민

제가 초등학교 졸업 전까지는 제주에서 하얀 쌀밥을 먹는 것, 그것은 일상적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올해 우리 나이로 마흔 둘인 제 기억 속 하얀 쌀밥은 제사나 명절, 혹은 잔치나 상(喪(덧말:상)) 한 그릇 가득 먹을 수 있는 맛난 그런 특식 같은 것이었습니다.

이런 쌀밥을 제주에서는 '곤밥'이라고 했습니다. '고운 밥'의 준말이지요. 보리밥의 거무스레한 빛깔과 까칠한 감촉과 달리 하얀 쌀밥은 기름을 바른 듯 윤기 자르르 흐르고 씹지 않아도 그냥 소화될 것 같은 황홀한 것이었습니다.

자정이 넘어야 지내는 제사를 기다리는 것은 여간 고역이 아니었습니다. 하얀 쌀밥이 아니라면 사실 그 시간까지 졸린 눈을 비비며 버틸 이유는 없었습니다. 그러다 졸음을 못 이기고 깜빡 잠이 들면, 집안 어른들은 제사 지낼 무렵 서둘러 우리들을 깨웠습니다. 이 말은 꼭 빼놓지 않고 덧붙이면서요.

"자 저 일어낭 곤밥 먹으라."(자 얼른 일어나서 쌀밥 먹어라.)

바로 어제(4일)가 이런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할아버지 제삿날이었습니다. 제주에서는 설날이나 추석, 제사 음식이 특별히 다르지 않습니다. 육지에서는 설날에 떡국을 올린다는데 제 기억에 그런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추석에는 메밀전병에 데친 무를 말아 빙빙 만 빙떡을 자주 올렸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 옥돔과 초코파이 제주의 제사상에 옥돔과 국민간식 초코파이가 같이 올랐습니다. 초코파이를 제사상에 올리는 것 바로 우리집에서는 늘상 있는 일입니다. ⓒ 강충민

우연히 저희 아파트 같은 라인에 사시는 분이 제주도 제사상에 빵을 올리는 것을 보고 무척 놀랐다고 하더군요. 그 분은 고향이 서울이었습니다. 저는 그 말에 덧붙여서 빵만이 아니고 초코파이도 올린다고 귀띔해 주었습니다. 제주(祭酒)로 주스를 쓴다는 말에는 더 신기해하더군요.

그래서 명절 때가 되면 제주에서는 빵집도 호황입니다. 시루떡 대용으로 직사각형의 카스테라를 제사상에 올리는 집이 많습니다. 또 롤 케이크는 비닐을 개봉하여 상자째 올리기도 하고요. 그 위에 더 푸짐해 보이라고 크림빵이나 팥빵을 올려놓는 경우도 많습니다. 

제주사람들은 이런 초코파이, 롤케이크, 카스테라, 빵 등 모든 것을 제사상에 오르는 것이기에 다 제물(祭物)이라고 합니다. 그러고 보면 제물과 우리가 먹는 게 다른 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제사를 지내는 집에 갈 땐 주스 한 병이나 초코파이 한 상자라도 꼭 사서 갑니다. 흡사 동네 어르신 댁에 갈 때 빈손으로 가기 뭐해서 과자 한 봉지라도 사가지고 가는 것처럼요. 그러면 제사를 지내는 집에서는 그것을 제사상에 조금이라도 올립니다. 고인에게도 어느 집 누가 이것을 사 왔으니 맛보시라는 의미로요. 

그러고 보니 제주의 제사상에 오르지 못하는 음식은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과일 중에는 복숭아, 자두를 올리지 않고 생선 중에는 꽁치, 갈치, 고등어를 올리지 않습니다. 금기시하는 과일, 생선을 제외하고 올려지는 제주의 제사음식은 그래서 우리들 평소에 먹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제물과 제주입니다. 제사를 지내는 집에 갈 때는 주스와 초코파이 한 상자로 성의를 표시합니다. 그러면 그 집에서는 그것을 한잔이라도, 한 개라도 제사상에 올립니다. 꼭 양이 아닌 마음을 표현하는 선에서요. ⓒ 강충민

제주 사람들도 귀하게 여기는 옥돔을 넣은 '옥돔 미역국'을 끓여 제사상에 올리기도 하고 저희 외가에선 햄에 계란을 입혀 전처럼 부친 뒤 상에 올리기도 합니다. 아 참, 제주의 제사상에 빠지지 않는 것은 바로 제주의 특산물인 감귤과 옥돔입니다.

제사를 지내고 나면 다 같이 둘러 앉아 음식을 먹습니다. 이렇게 제사가 끝나면 제사를 지낸 집에서는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에게 밥과 국을 제외한 모든 제사음식을 조금씩 싸서 줍니다. 만약 참석하지 못한 친척이 있다면 가까운 편에 전하라고도 하고요. 이런 걸 제주에선 '찍시, 나시'라고 하는데, 표준어로 하면 '몫'이 되겠지요.

제례의식에 밝고 철저히 따르는 분들이 보기에는 기가 막힐 만한 것을 하나 더 얘기하자면 저는 제 외할머니 제사 때 정성스레 김밥 두 줄을 말아서 갑니다. 예쁘게 썰어서 접시에 담고 외갓집에 도착하자마자 그것을 할머니 영정사진 앞에 올립니다. 외할머니가 살아 계실 때 김밥을 참 좋아하셨습니다. 생전 할머니에 대한 외손자의 그림움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입니다.

하얀 쌀밥을 '곤밥'이라 부르며 먹고 싶어 했던 것처럼 제주는 정말 먹을 것이 귀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제사상에 올릴 변변한 음식 하나 없어 주위에서 먹는 것으로 그렇게 올렸는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제주사람들은 거기에 아주 크나큰 제물(祭物)을 더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고인에 대한 살아 있는 사람들의 진심어린 마음이었습니다. 그 마음은 형식을 훨씬 뛰어넘고도 남는다고 자부해 봅니다.

덧붙이는 글 | 제주이야기를 저의 경험을 위주로 쓰고 있습니다. 제 자신도 모르는 인용이나 표절에 대비하여 어떤 책이나 논문도 의지하지 않았음을 미리 밝힙니다. 그래서 어떤 질문이라도 성심껏 저의 의견을 말씀드릴 수는 있으나 그것이 제 지식의 부족함에 대한 공격성 글이라면 답변하지 않겠습니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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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http://www.ohmynews.com) 제휴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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