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박3일 추자도 여행기 첫날

밤잠을 설쳤다.

그래도 다른 곳에서 이틀 밤을 잔다는 것은 분명 여행임에 틀림없고 그렇다면 여행에 대한 막연한 설레임이 그 이유였을 것이다.

일기예보에는 광복절부터 일요일까지 제주는 계속 비소식이었다.

아무리 요즘 일기예보가 중계수준이기는 하더라도 요 며칠간 계속 내리는 빗방울이 연휴기간동안 내릴 비의 양을 미리 짐작할 수도 있기에 과연 이 짧은 여행이 성사될 수 있을 까 하는 불안감도 있었다.

하지만 오늘 아침(8월15일) 쨍쨍 내리쬐는 햇볕에 자꾸 빗나가던 일기예보를 오히려 고마워했다. 나의 추자섬 첫 방문이 비로 시작되어서는 안 될 일이지 않은가...

▲  상추자항 ⓒ 제주의소리 강충민
▲  야간조업을 준비중인 어선의 불빛 ⓒ 제주의소리 강충민

사실 나는 여행지를 선택하라면 번잡한 대도시보다는 소도시, 그리고 엄밀히 말한다면 고즈넉한 산사 혹은 작은 섬이 좋다. 그래서 이번 휴가 모처럼의 여행지를 추자도를 선택한 것이다.

같은 제주도에 속해 있으면서도, 같은 제주도민인 내가 한 번도 가보지 않았고 거의 내 의식 속 머언 발치에 있던 곳 추자도 그곳을 내 눈으로 내 발로 보고 밟아보려고 하는 것이다.

늑대와 양치기소년의 이야기가 불쑥 생각났다.

자꾸 일기예보가 맞지 않길래 설마 이번에도 맞지 않겠지 했는데 정말 비가 온다.

오후가 되면서 내리는 비는 시간이 갈수록 빗방울이 더욱 굵어진다.

다행히 우리 일행이 제주항에서 추자도로 출발하는 시간인 14:10이 다가오기 시작하자 가는 비로 바뀐다.

예정보다 지연된 쾌속선을 타고 출발한지 1시간 만에  상추자항에 도착했다.

우리가 계획한 2박3일의 일정은 마침 추자도 최초의 축제인 “추자도 참굴비 축제”가 열리고 있다.

그래서인지 우리일행이 내린 상추자항에는 많은 사람들로 북적대고 행사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하얀 천막들에선 고소한 냄새들이 흘러나오고 있다.

▲  추자도 참굴비 축제 행사장 주변의 음식천막 ⓒ 제주의소리 강충민

그때 휴대폰이 울린다.

“지금 나와 있는디 어디에 계세요?”

미리 예약한 민박집 주인아저씨이다. 추자도에서는 제주사투리가 아니고 전라도 사투리를 쓴다는 말이 실감나는 순간이다. 그때 비로소 추자도에 도착했다는 느낌이 바로 든다.

우리가 도착하는 시간에 맞춰 숙소까지 픽업서비스를 해달라고 부탁했던 것이 미안하게 차량으로 채 3분도 걸리지 않는 거리다.

옛날엔 이런 골목도 참 많았다.

담벼락을 사이에 두고 자치기도 하고 딱지치기도 했던 어린시절의 정감어린 골목길끝에 바로 내가 2박3일을 머물 곳 민박집이 있다. 바로 추자도에서 잃어버렸던 내 어린 시절을 발견한다.

그래서 민박집이 여러 번 와 본 것처럼 낯설지가 않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추자도 방문은 처음이다. 그래서 왠지 편안해진다.

환한 네온사인 반짝이는 상가가 있는 것도 아니고 최고의 서비스를 자랑하는 특급호텔의 분위기가 아닌데도 편안해 지는 것,

▲ 태성민박 ⓒ 제주의소리 강충민
▲  태성민박 주인 아주머니 ⓒ 제주의소리 강충민

그렇다 나는 상추자항에 도착할 때부터 왠지 기분이 좋아져 있었던 것이다.

처음에 무턱대고 추자도여행을 계획할 때는 부부 세 쌍이 함께 하기로 했었다.

그런데 짝이 다른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사정이 생겨 참석을 못해서 나와 내 각시, 짝이 다른 한 남자와 한 여자, 거기에 우리 일행의 자식들 다섯 명이 여행을 온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편하게 민박집의 방도 각각 남자 방, 여자 방 이렇게 정했다. 아이들도 자연스럽게 각자의 성별에 맞게 찾아 들어가고...

참 이러고 보니 대학시절 M.T를 온 것 마냥 즐거워진다.

샤워를 하고 편안한 옷으로 갈아입고 거실에 나오니 인심 좋은 민박집 아주머니가 싱싱한 자연산 해산물들로 저녁상을 차려놓았다.

따깨비와 우뭇가사리로 시원한 냉국을 커다란 생고등어로 조림, 특히 갈치속젖은 정말 맛있다는 말밖에는 달리 표현할 말이 없다.

꼭꼭 눌러 담은 밥 한 공기를 뚝딱 해 치웠으니 배는 이미 더 이상 들어갈 데가 없다고 신호를 보내는데 고등어 머리까지 쪽쪽 다 발라 먹었다.

▲  저녁밥상 ⓒ 제주의소리 강충민
▲  고등어 조림 ⓒ 제주의소리 강충민

평소의 정량을 과다하게 초과한 첫 식사와 함께 추자도의 저녁을 그렇게 맞이했다.

저녁을 물리고 담배를 피우러 민박집 밖으로 나왔는데 비가 억수같이 내리고 있었다.

처음 계획은 추자항 주변을 따라 산책을 할 요량이었는데 저녁에 먹다 남긴 고등어조림과 반찬을 생각해 내고는 소주 몇 병과 같이 내 달라고 부탁했다.

▲  소주 ⓒ 제주의소리 강충민
▲  추자항의 밤 ⓒ 제주의소리 강충민

이렇게 해서 네 명의 남녀는 추자도를 적시는 빗소리를 음악처럼 들으며 소주잔을 기울였다. 특히 각자 남편과 각시를 두고 온 남녀는 더욱 더 신이 나 있었다.

그러다 맛있는 음식과 소주를 앞에 두고 보니 각자 남편과 각시가 생각난다는 멘트도 가끔 날려 주면서...

소주가 참 달다.

추자도에서 마시는 소주라서 더 더욱...

이렇게 추자에서의 첫 밤은 알싸한 소주향과  상쾌한 빗소리와 더불어 깊어가고 있었다.<제주의소리>

<강충민 시민기자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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