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석 제주교대 교수, 도정신문에 ‘쓴소리’…정관변경 위해 다섯 차례나 도청 방문

제주교대 김은석 교수가 5일자로 발간된 제주도정 신문 ‘다이나믹 제주’에 쓴 기고문이 공직사회에 회자되고 있다. 제주도청 각종 자문위원이자 ‘다이나믹 제주’의 편집위원이기도 한 김 교수가 자신이 몸담고 있는 단체의 정관을 변경하는 과정에서 다섯 차례나 도청을 방문토록 한 ‘불친절’을 꼬집은 글이었다. 김 교수는 이 글에서 “평화도시니, 자유도시니 하는 거대한 담론보다 조그마한 일에서 서민의 마음을 상하지 않게 하는 도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6일 열린 제주도청 확대간부회의에서 김태환 지사는 계장급 이상 전 간부공무원들이 참석한 자리에서 공보계장에게 문제의 글을 읽도록 하고는 “민원신청 서류에 사소한 흠을 이유로 몇 차례 반려시키고 처리를 지연한 제주도청 공무원의 경직된 자세를 도민들이 어떻게 보겠느냐”고 질타했다. 김은석 교수의 기고문 전문을 싣는다. - 편집자 주  

올 한 해가 마무리되는 단계이다. 그러나 주민들의 마음 속에는 희망과 기대보다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더 많이 자리잡고 있는 것 같다. 지역경제난이 가중되고 있는 가운데 집단이기주의와 지역간 계층간 보혁간 갈등으로 사회가 몸살을 앓고 있으나 난국을 타개할 구심점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지역에서도 공동체 내의 신뢰를 회복해 주민역량을 결집시키는 일이 급선무이다.

이런 의미에서 제주도정의 역할은 자못 크다. 그러나 무소신, 무책임, 행정편의주의가 있다면 그것은 문제가 심각한 것이다. 제주도정에 대한 신뢰가 애초부터 무리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지역사회발전과 사회봉사를 목적으로 하는 순수한 비영리법인단체의 실무를 맡고 있다. 이 단체에서 지난 달 재경부에 기부금지정단체로 등록하기 위해 정관의 일부조항을 개정했다. 변경된 정관은 도지사 허가 사항이므로 며칠 전 도청을 찾았다.

실무자가 제출된 서류를 검토하더니 회의록이 빠졌으니 첨부해 가지고 다시 오라는 것이었다. 오후에 다시 회의록을 첨부해서 갔더니 이번에는 지난 정관과 새로 변경된 정관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퇴근 시간에 맞추어 다시 변경된 정관을 제출했다. 그리고 나서 몇시간 뒤 또 다시 연락이 왔다. 이번에는 정관에 오자들이 있어 다시 수정하여 제출해 달라는 것이다.

속으로 너무한다 싶었지만 아쉬운 쪽에서 참을 수밖에 없었다. 다음날 아침 정관의 오자를 고쳐 가져갔다. 그러나 이게 끝이 아니었다. 또 연락이 와서 이번에는 정관변경 신청서가 빠졌으니 첨부하라는 것이었다. 동일한 민원으로 5회 이상을 방문하게 만드는 제주도정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한 번에 이런 저런 서류들이 필요하니 제출하라고 하면 안될까. 이 정도는 아주 손쉽게 처리된 것이라는 주변의 이야기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작은 문제가 대수롭지 않게 보일지는 몰라도, 이 모순은 민원인 일반이 절감하는 상습화되고 구조적이라는데 심각성이 있다.

제주도의 고위공직자들의 입장에서 볼 때 이 같은 일은 대수로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다. 어느 식당에서 비싼 요리 대신 싼 설렁탕을 시켰다고 해서 그 곳 종업원으로부터 푸대접 받는다면 으레 그런 것이라고 쓴 웃음만 짓고 말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민원인들의 입장에서 행정이 이루어지지 못하는 한, 어떻게 주민자치시대의 제주도정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비영리단체의 정관변경에 5차례 이상을 방문하는 만드는 시스템으로 민자유치를 어떻게 할 것이며, 국제자유도시는 과연 가능할까? 싱가포르에서 사업 승인을 받는데 반나절이면 된다는 말이 차라리 잘못 전해들은 말이었으면 싶다.

한비자에 따르면 천하의 어려운 일은 반드시 쉬운 데서부터 시작되고, 천하의 큰일은 반드시 작은 데서부터 시작된다고 했다. 도지사에게 부탁하고 싶다. 지금까지 제주도정은 많은 부분에서 개혁과 변화를 시도해 왔고 또 그 성과도 적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화와 개혁이 피부에 와 닿지 않는다면 그 누구도 제주도정에 신뢰를 보내지 않을 것이다.

제주도정에게 바라는 도민의 마음은 ‘평화의 도시’니 ‘국제자유도시’니 하는 거대담론의 청사진이 아니다. 서민들이 작은 일에도 마음 상하지 않는 도민을 위한 제주도정이면 족하다.  철학자 아미엘이 말하기를 “새로운 습관을 배우는 것이 인생의 전부”라고 했다. 구습을 버리고 새롭게 태어나는 제주도정을 기대해 본다. [김은석·제주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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