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로 다가온 제주의 꽃들(51)

하얀 크레파스로는 어떤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
어린 시절 나는 하얀 종이에 그림을 그리는 것이라는 단편적인 생각에서 벗어나질 못했다. 그래서 크레파스 중에서 가장 키가 큰 것은 늘 하얀 크레파스였다. 그리고 조금 더 생각이 자랐을 때에는 검은 도화지에도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하얀 크레파스도 다른 크레파스와 비슷한 키가 되었다. 거기서 조금 더 생각이 자라자 이젠 하얀 크레파스, 하얀 물감을 별도로 사야할 정도로 많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신(神)은 대지에 하얀 물감으로 순백의 꽃들을 만들어 놓았다.
몇 가지나 될까 그동안 찍은 사진들을 정리하면서 깜짝 놀란 사실 중 하나는 하얀 꽃이 꽃 색깔 중에서는 으뜸으로 많다는 것이었다.
모든 꽃들이 다 예쁘고, 순백의 꽃들 중에서도 더 예쁜 꽃들도 많지만 내 삶 어딘가에 그들이 들려준 소리들로 인해 행복했던 순간들이 진하게 남아있는 꽃들을 모아 보았다.

▲ 토끼풀.ⓒ김민수

그저 한 송이가 아니라 작디작은 꽃들이 모이고 모여 한 송이처럼 보이는 토끼풀, 그렇게 많은 꽃들이 모였는데도 여전히 작다. 어린 시절에는 토끼풀이니 토끼가 좋아할 것이라는 생각에 토끼풀만 뜯어다 토끼장에 넣어주었다. 나중에 토끼풀말고 쓴 풀들을 토끼가 더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는 그들에게 편식을 강요하지 않게 되었다.
토끼풀이 무성하게 올라올 때면 꼴망태를 메고는 토끼풀을 베러 다녔다. 어느 날 토끼풀 속에 숨어있는 작은 병에 서슬 퍼런 낫이 튀면서 중지손가락을 베었다. 뼈가 다 보이는 큰 상처였지만 그저 민간요법으로 싸매고 치료를 했을 뿐인데 지금은 상처만 남아있을 뿐이다.

그래서일까?
그 이후로는 꼴을 벨 때면 풀섶을 자세히 보는 습관이 생겼고(혹시 병이나 돌같은 복병이 있을까봐) 네잎크로버를 참 잘 찾는 아이가 되었다. 네잎크로버는 '행운'을 가져다 준다고 해서 한 때는 네잎크로버를 발견하는 날에는 혹시 좋은 일이 있으려나 은근히 기대를 하기도 했는데 이런 기대감을 품고 살아가서인지 그날은 나도 모르게 기분이 좋았다.
이후 세계 역사를 배우면서 전쟁광 나폴레옹과 관계가 있는 네잎크로버, 그에게는 적의 화살을 피할 수 있었던 행운의 풀이었지만 어쩌면 그 전쟁광으로 인해서 수탈을 당해야 했던 식민지의 백성들에게는 불행한 일이었을런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내 시야에서 멀어져 갔다.

그럼에도 아직도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있는 순백의 꽃으로 꼽힌 것은 토끼풀로 만든 화관, 목걸이, 팔지, 반지에 대한 추억 때문이다. 흰 꽃이 만발할 때 긴 줄기까지 쑥쑥 뽑아서 댕기머리를 따듯 엮어 가면 화관도 되고, 목걸이도 되었다. 반지와 팔찌는 꽃 두 개만 엇갈리게 끼워도 되었으니 누님들에게, 좋아하던 소녀에게 참 좋은 선물이었다.
3월의 봄날 따스한 양지에서 만들던 이 모든 것들에 대한 추억이 있어서 나에게는 참 따스한 꽃이다.

▲ 풀솜대(지장보살).ⓒ제주의소리

봄이 무르익어가고 있는 4월에 풀솜대 또는 지장보살이라는 꽃을 그늘지고 습기가 많은 곳에서 만났다. 아직은 쌀쌀하면서도 완연한 봄기운이 감도는 계절, 혁명의 계절 4월에 만난 꽃은 마치 부처의 자비를 온누리에 기원하는 꽃처럼 보였다.
그 기원을 담은 소망들은 이렇게 작은 것들로 시작하는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작디작은 꽃들이 모이고 모여 핀 형상은 민주화의 열망을 담은 이들 하나하나가 모여 거대한 물길을 만들어 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슈마허의 말을 실감하게 하는 꽃, 그러면서도 단지 작은 것 자체가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그 하나 하나가 모여 또 다른 하나를 만들어갈 때 그 아름다움을 온전히 만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이 꽃에서 보았다.
연약함의 영성이란 것, 그것은 단지 연약함에 머물러 있기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와 깊은 관련이 있다.

작은 불꽃 하나가 큰 불을 일으키듯이 작은 꽃들 한 송이가 더해짐으로 인해 그 아름다움을 더해 가는 꽃을 보면서 내 안에 작은 것들 하나 하나가 나라는 존재를 만들어 감을 알게 되었고, 내 안에 순백의 꽃처럼 순수한 것들, 작은 것들 하나 하나를 사랑할 수 있게 이끌어 주었다.

▲ 흰그늘용담.ⓒ김민수

5월초 한라산 백록담을 오르는 길에 만난 꽃, 이름과는 달리 그늘에 피어있는 것이 아니라 햇살 바른 양지에 피어있는 것이 신기했다. 한라산 정상에 가까이 가면 갈수록 흰색의 꽃들이 많이 보였다. 어쩌면 고난과 깊은 관련이 있을 것도 같았다.
5월의 한라산은 봄이라고 하기엔 겨울의 기운이 많이 남아있어서 이런 저런 꽃들이 한창 피울 준비들을 하고 있는 시기다. 체감온도로 보면 겨울과 봄의 경계를 넘어서는 꽃, 이제 겨울은 끝났음을 온 몸으로 보여주는 꽃으로 다가왔다.

80년대 초, 혁명의 계절 4월을 넘어서 5월 광주로 이어지는 시간들의 초입이면 내 입안에서 맴돌던 '오월의 노래'가 있다.

봄볕 내리는 날
뜨거운 바람 부는 날
붉은 꽃잎져 흩어 지고
꽃향기 머무는 날
묘비없는 죽음의
커다란 이름 드리오
여기 죽지 않을 목숨에
이 노래 드리오
사랑이여 내 사랑이여
음음음

이렇듯 봄이 가고
꽃피고 지도록
멀리 오월의 하늘 끝에
꽃바람 다하도록
해기우는 분수가에
스몄던 넋이 살아
앙천의 눈매에 되뜨는
이 짙은 오월이여
사랑이여 내 사랑이여
음음음

눈이 부셨다.
80년대 5월 최루탄보다 더 내 눈시울을 뜨겁게 만드는 한라산의 흰그늘용담은 내 삶이 나만의 삶이 아님을 다시 한번 뜨겁게 일깨워 주었다.

※ 김민수님은 제주의 동쪽 끝마을에 있는 종달교회를 섬기는 목사입니다. 작은 것의 아름다움을 보는 것을 좋아하며, 일상에서 소중한 것을 찾는 것을 즐겨 합니다. 자연산문집 '달팽이는 느리고, 호박은 못생겼다?' '내게로 다가온 꽃들'의 저자이기도 한 그의 글은 '강바람의 글모음 '을 방문하면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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