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소깍에 얽힌 슬픈 사랑 이야기

서귀포 시내에서 1132번 도로를 따라가다 신효마을과 하효마을을 지나면, 효례교에 이르게 된다. 효례교는 하효마을과 남원읍 하례리의 경계에 해당하는 효돈천이 1132번 도로를 가로지르는 지점에 건설됐다.  
  

   
남쪽에서 바라본 쇠소깍 관광객들을 실은 테우가 계곡을 떠다니고 있다. ⓒ 장태욱

효돈천 상류는 비가 내리지 않으면 하천이 바닥을 드러내는 건천이다. 효례교 서쪽에서 효돈천을 끼고 남쪽으로 바다를 향하는 도로를 따라 내려가면, 하류 지점에서 푸른 상록수림을 낀 바위 계곡에 이른다. 이곳에 지하수가 솟아나 깊은 연못을 형성하는데, 사람들은 이 연못을 '쇠소깍'이라 부른다.

'쇠'란 효돈의 옛 지명이 유래한 '소'를, '소'는 물웅덩이를, '깍'은 제주어로 '끝' 혹은 '마지막'을 의미한다. 쇠소깍은 효돈천 하류가 웅덩이를 형성하여 바다와 만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효돈천 효돈천의 상류는 비가 내리지 않으면 바닥을 드러내는 건천이다. 이 하천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면 바다와 만나는 곳에 쇠소깍이 있다. ⓒ 장태욱

쇠소깍에는 용이 살고 있었다는 전설이 전해지므로, 과거에는 이곳을 '용소(龍沼)'라고 불렀다. 과거에 주민들은 여름에 가뭄이 들면 용의 노여움을 풀기 위해 이곳에 모여 기우제를 올렸는데, 기우제를 올리면 반드시 효험이 있었다고 한다. 용의 전설 말고도 이 연못과 관련하여 전해지는 애절한 사랑의 이야기가 있다.

하효의 어느 대감댁에 머슴이 살고 있었는데, 공교롭게도 대감의 딸과 머슴의 아들이 서로 나이가 같았다. 이 어린 아이들은 반상의 구별을 넘어서 어릴 적부터 친구로 지내면서 우정을 키웠다. 그러다가 나이가 들자 이들의 우정은 사랑으로 발전했다.

그런데 대감은 자신의 딸을 다른 곳으로 시집보내려 했고, 차마 사랑하는 남자를 두고 다른 남자에게 시집을 갈 수 없었던 대감의 딸은 부친에게 머슴의 아들을 향하 자신의 사랑을 실토했다. 하지만 신분사회에서 반상을 뛰어넘는 사랑이란 비극을 잉태할 수밖에 없었다.

딸의 항변에 분노한 대감은 머슴 가족을 모두 내쫒고 말았다. 사랑을 이루지도 못하고 기거할 곳마저 잃어버린 머슴의 아들은 억울함을 이기지 못해 효돈천에 있는 자살소에 몸을 던져 죽고 말았다.
  

쇠소깍 주변의 상록수림과 더불어 장관을 연출한다.  ⓒ 장태욱  

사랑하는 연인의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대감의 딸은 죽은 연인의 시체라도 찾을 수 있게 해달라며 매일 밤 자시에 기원바위 위에서 하나님께 빌었다. 이렇게 100일을 빌었더니 하늘에서 폭우가 쏟아졌다. 그리고 자살소에 몸을 던졌던 머슴 아들의 시신이 쇠소깍 하류 모래 위에 떠올랐다.

죽은 연인의 시신을 부여잡고 통곡하던 대감의 딸도 결국은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기원바위 위에서 쇠소깍으로 몸을 던져 죽고 말았다.

하효마을 주민들은 신분을 뛰어넘고 간직해 온 사랑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내던진 처녀의 애절한 넋을 기리고 그 억울한 죽음을 위로하기 위해 마을 동쪽에 있는 용지동산에 당을 마련해 그 영혼을 모셨다. 이 당을 주민들은 '할망당' 혹은 '여드레당'이라고 하는데, 최근 마을 안길을 정비할 때 당은 철거됐다.
  

기원바위 사람들이 기도를 올렸던 흔적이 남아있다. 최근에도 소원을 빌기 위해 주민들이 많이 찾는다고 한다.  ⓒ 장태욱 

사람들은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할망당이나 기원바위 위에서 소원을 빌며 성취된다고 믿어왔다. 이 쇠소깍에서 기우제를 지낼 때도 제관은 전날 밤 할망당에 와서 용인부인석을 모셔다가 제단을 쌓고 제를 지냈다.

쇠소깍의 매력은 푸른 상록수림이 계곡에 비쳐 빚어내는 짙은 초록빛에서 비롯된다. 여기에 푸른 하늘빛이 연못에 더해지고, 산들바람이 바닷바람과 함께 계곡에 어우러지면 이 일대는 자연이 주는 평화로 물들게 된다.  

산책로 쇠소깍 주변에 산책로가 잘 정비되었다.  ⓒ 장태욱

쇠소깍은 해수와 담수가 만나는 연못이다. 이 곳에서 유년기를 보냈던 주민들의 증언에 따르면 어린 시절 바다에서 수영하다가 쇠소깍 연못 안으로 들어오면 어느 순간 수온이 급격하게 내려가는 것을 느꼈다고 한다. 쇠소깍 구석구석에서 담수가 솟아나기 때문이다. 이 연못을 지탱하는 것은 웅덩이 양쪽가의 바위들이다. 식물의 뿌리와 상호작용하면서 안정화된 바위벽이 수조 역할을 감당하는 것이다. 
  

구멍 뚫린 바위 타포니에 의해 바위 표면이 떨어져 나가고 큰 구멍이 형성된 바위다. ⓒ 장태욱

이 연못의 양쪽 바위 안에는 크게 구멍이 파헤쳐진 흔적이 발견되는데, 이를 '타포니'라고 한다. 타포니(tafoni)란 화학적 풍화작용에 의해 암벽에 벌집처럼 집단적으로 구멍이 파인 것을 가리킨다. 타포니는 산지 내륙에서는 서릿발의 작용에 의해 주로 나타나는 반면, 해안가에는 소금의 풍화작용에 의해 주로 나타난다.

쇠소깍 주변의 바위들은 주로 조면암질 현무암이다. 현무암 암석은 표면에 구멍이 많기 때문에, 이 작은 구멍 안에 빗물이나 바닷물이 쉽게 들어가 머물게 된다. 이때 바위 안으로부터 소금에 의해 풍화작용이 일어나고, 그 작은 구멍들은 점점 성장한다. 결국 바위 내부가 팽창되면서 밖에 있는 바위 표면을 밀어내 바위의 표면이 무너져 내린다. '계란으로 바위 치기'란 말이 있지만 계란보다 더 약한 소금물이 바위 표면을 무너뜨린 것이다.
  

테우 체험 쇠소깍의 테우체험 프로그램에 대해 관광객들이 좋은 반응을 보이고 있다.  ⓒ 장태욱

여름에 쇠소깍에는 제주의 전통 뗏목인 '테우'을 직접 타보는 체험 프로그램이 운영 중이다.  테우를 타고 계곡을 따라 물위를 왕복하는 동안 계곡을 둘러싼 푸른 숲과 더불어 소금물에 의해 힘없이 무너진 바위 표면을 구경하는 것도 쇠소깍을 찾는 이들이 염두에 두어야 할 일이다.

쇠소깍은 오랜 기간 외부에 그 비경을 감추고 있었다. 따라서 쇠소깍이 관광지로 부상한 것은 최근의 일이다. 외부에 노출된 시간이 짧았던 만큼 아직은 원시절경이 거의 대부분 훼손 없이 보존되어 있다.
  

쇠소깍 하류 연못이 바다와 만나는 곳에 모래사장이 형성되어 있다.  ⓒ 장태욱

최근에는 해마다 여름이면 효돈동 청년회를 주축으로 '쇠소깍축제'가 열리는데, 관광객들로부터 호응이 매우 좋다고 한다. 하지만 빠른 시일 내에 인기 있는 관광지로 부상한다는 점이 다소 마음에 걸리는 점이다. 쇠소깍을 둘러싼 생태환경에 대해 체계적으로 연구한 다음,  보존 방안을 마련하여 지속가능한 관광지로 잘 간직됐으면 좋겠다.<제주의소리>

<장태욱 시민기자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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