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귀포시 효돈동3] 농가 경영난과 김재윤 의원 수사...근심스런 주민들

농원 친구는 한라봉이 훤히 내다보이는 이 농원 온실에서 한라봉을 재배하고 있다.   
현재 제주에서 재배되는 귤은 대부분 일본에서 들여온 온주밀감(중국의 온주지방이 원산지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으로, 이들이 제주 농가에 본격 보급된 것은 1960년대 이후다.

1963년 박정희 대통령이 서귀포를 방문한 자리에서 '서귀포 사람들이 먹고 살 길은 오직 감귤이다'라고 직접 말하기도 했다. 도민 사회에서 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과정에서 1967년에는 귤이 농민소득 특별사업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귤은 서귀포시를 중심으로 동서로 퍼져나갔다. 서귀포 도심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한 효돈동에도 신품종 온주밀감이 빠르게 확산되었다. 산업화가 진행되는 와중에 생산된 귤은 도시에서 비싸게 팔렸다. 귤나무가 대학나무로 불리는 귤 농업 전성시대가 열렸다.

온주밀감과 더불어 시설농업이 발전하면서 오렌지와 한라봉을 비롯한 다른 종류의 귤들도 재배되기 시작했다. 농민들 중 더러는 농업을 통해 재산을 일구고 자본을 축적한 이들도 생겨났다.

신효마을과 하효마을은 한라산 남쪽 가까운 곳에 자리 잡고 있어서, 한라산이 겨울에 차가운 북서풍을 막아준다. 겨울에도 거의 눈이 내리지 않을 정도로 포근하다. 도내에서도 단위면적당 귤 수확량이 가장 많고 귤 맛도 으뜸으로 인정받는다. 1970년대와 80년대 효돈 귤은 풍요로운 농촌의 상징이었다.

귤나무가 대학나무이던 전성시대, WTO체제로 무너져
  

한라봉 친구가 재배하는 한라봉이다. 열매를 지탱하기 위해 줄로 천정에 일일이 매달아야 한다. 이 열매는 내년 초에 수확할 예정이다.   ⓒ 장태욱 시민기자
하지만 10여 년 전부터 상황이 달라졌다. WTO체제에 들어서면서 오렌지 수입이 늘어나고, IMF외환위기 이후 국내 소비시장이 위축되면서 이전에 귤 농업으로 누렸던 그 풍요로움은 점차 옛 이야기가 되어가고 있다. 게다가 농자재 가격과 기름 값 상승은 시설농업에 종사하는 농가에는 큰 시련으로 다가왔다. 게다가 언제 발효될지 모르는 한미자유무역협정(FTA)은 농가를 위협하는 암초로 자리잡고 있다. 

효돈에서 귤 농사와 한라봉 농사를 짓고 있는 친구 오상봉을 만났다. 내 고등학교 동창생인 그는 어릴 적부터 농업에 관심이 많아서, 농과대학에 진학했다. 우리가 대학에 진학 할 당시인 80년대는 귤이 풍요를 약속하던 때였기에 충분히 그럴 만 했다.

원예학을 전공한 그는 지금 4천 평 규모의 비닐온상에서 한라봉을 재배한다. 이 정도면 일반 농가에서는 매우 큰 규모다. 일 년 수확량이 4만kg에 이를 때도 있다고 한다. 매출을 계산해보면 1억이 넘는다. '중소기업 사장 부럽지 않겠다'는 말에 그의 대답은 달랐다.

"하우스에 비닐을 덮는 일당만도 천만 원이 넘어. 게다가 자재 값도 많이 오르고 기름 값도 많이 오르고, 무엇보다도 가격이 해마다 일정하지가 않아. 지금 남은 빚이 얼만지도 모를 지경이다."

친구의 소개로 효돈농협 강성종(43) 팀장을 만났다. 강팀장의 말에 의하면 효돈농협은  농가들의 소득증진을 위해 단계별 귤 브랜드를 개발했다고 한다.

강성종 팀장 효돈농협 강성종 팀장과 대화를 나눴다.   ⓒ 장태욱 시민기자
그렇게 개발한 브랜드가 <행복담원>과 <천해원>이다. 이 브랜드는 센서를 통해 귤의 당도와 산도를 엄격하게 조사해서 그 중 기준을 통과한 상품만을 선정한 다음, 오존수를 이용해서 귤 표면에 기생하고 있을 지도 모르는 세균을 세척, 살균한다고 했다.

<행복담원>의 기준이 당도 12브릭스 이상, 산도 1% 이하고, <천해원>의 기준이 당도 11브릭스 이상 산도 1% 이하라고 했다. <행복담원>이 더 품질이 좋은 귤 브랜드에 해당한다.

강팀장은 효돈농협에서 농가의 사활을 걸고 개발한 브랜드이니 도시에서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좋겠다고 했다.

김재윤 의원의 고향 효돈, 그곳 민심은?
 

김재윤 의원의 고향 김재윤 의원은 효돈동 출신이다. 그가 자랐다는 집 근처다.   ⓒ 장태욱 시민기자
한편, 효돈은 최근 외국 의료기관으로부터 로비 댓가로 뇌물을 받은 혐의로 기소되어 연일 언론에 오르내리는 김재윤 의원의 고향이기도 하다. 김재윤 의원과 관련된 쪽으로 화제가 전환되자, 강 팀장은 자신의 입장을 확고하게 말했다.

"어떤 국회의원이 뇌물을 1억 원짜리 수표로 받습니까? 김재윤 의원이 여러 차례 베스트의원에 선정된 데다가 공영방송 사수를 위해 앞장서는 바람에 표적수사에 걸린 겁니다. 검찰 주장은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 봅니다.

이번 사건은 검찰이 사실을 밝히기 위해 더 철저히 수사를 하고, 법원이 공정하게 재판을 하면 무죄가 선고될 겁니다. 하지만 뇌물수수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았다는 거 하나로만도 김재윤 의원의 이미지에 크게 손상을 줄 겁니다."

강팀장과 대화를 마치니 점심때가 되었다. 친구가 가까운 식당에서 점심을 사겠다고 했다. '복순이네 식당'으로 가서 한치물회 2인분을 주문했다. 자리젓을 포함해서 제주 토종 반찬이 여럿 올라오고, 물회는 둘이 다 먹지 못할 만큼 푸짐하게 올라왔다. 마을 주민들이 주로 이용하는 음식점이라 인심이 후했다.

식사 도중 친구가 다른 테이블에 앉은 손님과 인사를 나눴다. 몇 해 전 효돈동 연합청녕회장을 역임했던 한삼용(43)씨였다. 한씨는 지금 귤과 한라봉을 재배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농자재 판매업도 겸하고 있다.

2004년 한씨가 효돈동 연합청년회장을 역임할 당시는 쇠소깍이 관광지로 알려진지 몇 해 되지 않은 때였다. 당시 쇠소깍 축제가 3회째 열리고 있었는데, 한씨의 아이디어에 의해 처음으로 테우(전통 뗏목)를 만들었다고 했다.

한삼용 씨 전에 효돈동 연합청년회장을 역임했다. 귤과 한라봉을 재배하고 있고, 농자재를 판매하는 일도 겸하고 있다. 쇠소깍에 테우를 띄울 생각을 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 장태욱 시민기자
"쇠소깍에 테우를 띄울 생각을 했는데, 막상 만들려니 그 제작 방법을 몰랐습니다. 여러 곳을 방문해서 문헌도 구하고 장인들의 도움을 얻어서 겨우 테우를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띄운 테우는 관광객들로부터 기대 이상의 좋은 반응을 얻었습니다. 이제 테우는 쇠소깍의 명물이 되었습니다."

실제로 전통 테우가 쇠소깍 절경과 어우러져 좋은 평을 얻고 있다. 한씨는 전통문화와 연계한 창의적 발상을 통해 마을을 전국에 알릴 수 있는 상징물을 만든 것이다.

한씨가 농자재 판매업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현재 농자재 가격 상승을 더욱 가까이서 느낀다고 했다.

"작년까지 철재 비닐하우스를 시설하려면 인건비를 포함해서 평당 7만원이 소요되었습니다. 그런데 금년 들어서면서 평당 11만원이 넘게 드는 겁니다. 그런데 정부에서 하우스 시설 보조금으로 나오는 돈은 평당 8만 6천원을 기준으로 삼습니다. 보조비가 평당 시설비의 50%가 나오는데, 농가 자부담이 평당 7만원에 육박하면 실질 자부담율이 70%에 육박합니다. 이젠 누구도 시설투자를 할 엄두를 못내는 형편입니다."

한편 김재윤 의원 사건에 대해서는 한씨도 강팀장처럼 검찰이 정치적 목적으로 수사를 진행한다고 판단했다.

"내가 중학교 1학년 때 재윤이 형은 중학교 3학년이었습니다. 학교 다닐 때부터 한 번도 문제를 일으키는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검찰이 제대로 밝혀지지도 않은 사실을 언론에 흘려서 멀쩡한 국회의원을 매장하는 겁니다."

"노인들이 돈을 번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예요"

김태규 신효마을 노인회장 신효마을은 장수마을로 선정되었다. 김태규 노인회장을 뵙고 말씀을 들었다.   ⓒ 장태욱 시민기자
신효마을 회장님을 만나 뵐 수 있을까 싶어서 마을회관을 방문했다. 마침 마을회장님이 여행 차 자리를 비운지라, 노인회관을 방문했다.

노인회관 벽에 '장수마을'이라고 쓰인 액자가 눈에 들어왔다. 노인 몇 분이 대화를 나누고 계셨는데, 장수마을에 걸맞게 70-80대 연세에도 불구하고 얼굴 표정도 밝고 말씀도 잘들 하셨다. 신효마을이 장수마을로 선정되자 정부에서 주는 지원금이 할당되었다.

김태규(78) 노인회장님의 말씀이다.

"신효가 장수마을로 선정된 게 마을 주민들의 수명이 길어서가 아니에요. 마을 노인들이 평화롭게 화합하면서 살라는 취지일 거예요. 노인들이 모여 정부 지원금을 밑천삼아 야생화도 가꿔보고 지각나무를 재배하기도 합니다. 노인들이 손수 막걸리도 만들어보고......, 그런데 노인들이 돈을 번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에요."

김태규 회장은 경주김씨여서 마침 김재윤 의원과도 종친이라고 했다.

"김의원의 조부는 신효마을에 살았어요. 가난해서 무척 힘들게 살았어도 남 한번 속이지 않은 양반이었어요. 삶이 어려워서 하효마을로 옮긴 후로 김의원 부친이 열심히 일해서 가업을 잘 일궜어요. 참 성실하고 좋은 사람들이에요. 우리 늙은 사람들이 나라에서 하는 일을 뭘 알겠습니까? 그저 안타깝기만 합니다."

농산물 수입개방과 수입 원자재 가격 상승에서 비롯된 경기침체가 효돈동 농민들에게는 더 절실한 문제로 다가오고 있었다. 고향이 이렇듯 어려운 상황에 놓여있을 때, 자신들이 지지해서 어렵사리 재선에 성공한 국회의원이 사면초가에 놓였으니, 이들의 우려와 허탈감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이 실의에 빠진 주민들에게 '정치인이 사업가들과 돈거래를 하는 것 그 자체만도 처신이 부적절하다'는 내 생각은 차마 말하지 못했다. <제주의소리>

<장태욱 시민기자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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