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드마크 이미지와 내국인면세점 연계

광활한 대륙과 연결되어 있는 북방을 제외한 3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지정학적 특성에도 불구하고 청해진을 무대로 동북아시아 해상무역을 관장한 신라시대의 장보고와 세계해전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이순신 장군 이후 무역뿐만 아니라 군사측면의 해양문화는 침체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고갈이 임박한 육상의 부존자원과는 달리 탐사기술수준의 획기적 발전 및 경제성이 확보되면서 부존자원이 전무하다시피 한 우리나라에서는 동면상태의 해양문화를 집중 육성함으로써 해양자원을 선점하려는 강대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자 한다. 그러나 세계 최대수준의 경제력뿐만 아니라 막강한 해군력이 배후에 있는 일본과 중국의 틈바구니에서 배제되지 않으려면 힘의 균형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국가적 차원에서 최적입지에 해군기지 조성을 추진하고 있다.
 
해군기지 조성의 최적입지로 선정된 제주는 사람과 상품, 자본의 자유이동을 보장하는 국제자유도시로의 발전을 모색한다는 점에서 민간인의 통제가 불가피한 군사기지의 조성은 국제자유도시의 기본취지에도 부합되지 않는다. 15만 톤급 크루즈 기항이 가능한 2개의 선석을 조성하는 이른바 民軍복합항 계획으로 민간인 출입을 불허하는 통제구역이 최소화된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 거대한 접안능력으로 인해 중소형 민간선박 출입이 사실상 원천 배제되어 군사통제 목적이 강화되었다는 점이다. 즉, 평균 규모가 수십 톤에서 수백 톤 내외에 불과한 관광낚시전용 어선이라든지 레저용 요트, 또는 유람선이 입출항하는 항구로서 15만 톤급 초대형 선박의 접안을 고려한 선석은 부적절한 관계로 크루즈선박을 제외한 일반 민간선박의 이용은 애초 배제된 것이나 다름없다.
 
크루즈선박의 이용활성화가 전제되지 않고서는 民軍복합항이 사실상 軍전용항으로 전환되면서 국제자유도시의 기본이념인 사람의 이동자유가 훼손될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지역사회의 경제적 파급효과의 축소가 불가피해진다. 이러한 예상되는 부작용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는 전술한 바처럼 크루즈선박 이용활성화가 전제되어야 하는데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수행한 예비타당성 분석에 의하면 제주방문 전체 크루즈선박의 70%가 民軍복합항에 기항하는 반면 30%만이 제주외항의 크루즈전용선석을 이용할 것으로 제시되었다. 언론보도를 종합해 보면 7:3으로 제시된 民軍복합항과 제주외항 크루즈전용선석 이용비율의 근거로는 외국관광객이 선호하는 지역비율이 반영된 것으로 기사화되었다.
 
한국개발연구원에서 수행한 용역보고서가 비공개된 관계로 단편적인 언론보도를 재구성해 보면 제주를 방문한 외국관광객을 대상으로 서귀포시와 제주시라는 2개 권역 중 선호하는 지역을 선택하도록 한 설문조사 결과 7:3의 비율이 도출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설문조사 방식의 잠재적 문제점은 첫째, 설문조사의 장소 둘째, 표본추출의 방식 셋째, 설문응답대상의 대표성 넷째, 설문문항의 설계 등 조사전반의 차원에서 제기될 수 있다. 친숙한 일상거주지를 일시적으로 벗어나 낯선 관광목적지를 방문한 외국관광객으로서는 공간인식의 혼란으로 인해 현재 본인이 위치하고 있는 지역을 기준점(anchor point)으로 간주하여 심리적 안정감을 느끼게 된다. 따라서 설문조사의 장소와 선호지역의 일치비율이 높다고 추정할 수 있는 관계로 설문조사가 제주시와 서귀포시에서 동등한 비율로 수행되지 않고 서귀포시에서 보다 많은 설문조사가 이뤄졌다면 서귀포시 선호비중이 70%인 점이 설명될 수 있다. 이러한 우려를 해소할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은 분석된 설문지 전체원본을 공개하는 것이다.
 
2006년 제주를 방문한 전체 외국관광객의 38%를 점유한 일본관광객과 중국과 대만, 그리고 홍콩 관광객을 중화권 관광객으로 개념화한 비율인 44%를 합산하면 제주방문 외국관광객 시장의 82%는 일본과 중화권 관광객이고 유럽 및 미주지역 비율은 미미한 수준이다. 이러한 외국관광객 구성비를 감안하면 설문조사의 대상범위도 사실상 일본과 중화권 관광객으로 제한된 것으로 추정된다면 세계크루즈시장의 주요고객인 북미와 유럽국적 출신이 배제되었으므로 실질적인 표적시장에 대한 조사가 누락되게 된다. 그리고 관광활동반경이 광범위한 육상에서의 관광활동과는 달리 고립된 크루즈선박의 협소한 공간에서 관광활동과 숙박을 동시에 해결하는 크루즈관광은 대표적인 특수목적관광(Special Interest Tourism)이라는 점에서 일반관광형태와는 확연히 구분된다. 따라서 제주를 방문한 일반관광객을 대상으로 설문조사가 수행되었다면 크루즈관광 예측근거로서의 활용가능성은 제한될 수밖에 없다.
 
이탈리아의 나폴리와 호주의 시드니, 그리고 브라질의 리오데 자네이루는 공신력 있는 국제기구에서 선정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세계 3대 미항으로서의 이미지로 인식되는 것처럼 크루즈선박이 정박하는 항구 자체가 중요한 관광매력요인으로 인식된다. 국가차원에서 크루즈산업육성을 지원하는 아시아 국가들이 증가하는 현실에서 크루즈선박이 기항하는 항구의 이미지는 해당 관광목적지의 첫 인상을 좌우하는 관문으로서 차별화 전략이 집중되는 부문이다. 이러한 정황을 감안하면 제주를 방문한 외국관광객을 대상으로 선택 가능한 기항지로서 제주시의 크루즈전용선석과 서귀포시의 民軍복합선석을 제시하는 것이 객관적인 설문문항 설계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행 선호하는 지역을 질의하는 설문문항의 조사결과 서귀포시의 선호비율이 70%라는 점을 인정해도 제주외항에 정박한 크루즈관광객이 서귀포시에 도달하는데 소요되는 시간은 1시간 내외에 불과하고, 이동 과정에서 조망할 수 있는 제주의 자연경관 자체가 매력적인 관광자원이라는 점에서 제주시와 서귀포시를 구분할 필요성은 설득력이 낮아진다.
 
낭만적인 이미지를 기대하는 크루즈관광객으로서는 제주외항의 크루즈전용선석이 선택 가능하다면 民軍복합항을 기항지로 선택하지는 않을 것이다. 제주특별자치도의회의 행정위원회에 출석한 이경창 해군기지사업단장이 크루즈선 입항횟수가 연 5-6회에 불과하여 군사작전 수행에 큰 영향을 주지 못할 것이라고 답변한 바처럼 크루즈선박 기항으로 지역사회와 제주도에 미칠 경제적 파급효과는 측정조차 무의미한 수준일 것이다. 이러한 문제점으로 크루즈관광객과는 별도로 연간 500만 명을 상회하는 일반관광객을 民軍복합항으로 유인할 수 있는 매력요인 조성은 재론의 여지가 없지만 문제는 제시된 방안의 타당성과 효율성에 대한 의구심이 제기될 수 있다는 점이다.
 
크루즈터미널이 조성될 <크루즈Zone>의 부대시설로 제시된 ‘명품관’의 실현가능성은 극히 회의적이다. ‘루이비통’이나 ‘에르미스’, ‘아르마니’처럼 우리사회에서 높은 인지도가 형성된 브랜드의 매장은 수요시장과 입지분석을 토대로 백화점 명품관 또는 고급쇼핑거리가 형성된 일부지역에 한해 개설되므로 군사기지의 한편 구석에 자사 브랜드의 입점을 허용할 명품브랜드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루이비통’ 매장의 실내 인테리어 전체비용의 50%인 25억 원을 부담한 명품전용 백화점 ‘에비뉴엘’의 사례를 감안하면 10개의 명품브랜드 매장개설에 소요될 추가비용인 250억 원과 149억 원으로 책정된 크루즈터미널 공사비용을 비교해 보면 ‘명품관’의 실현가능성은 극히 낮을 것이다.
 
퇴역한 해군함정을 재활용할 것으로 추정되는 ‘함상공원’의 전망도 낙관적이지 않다. 총 사업비 748억 원이 투입될 제주평화대공원 사업의 규모 측면뿐만 아니라 일본군 진지와 알뜨르 비행장처럼 역사성에 근거하는 점과 비교해 보면 차량으로 20분 이내 도달 가능한 ‘함상공원’의 존재는 상쇄될 개연성이 높다. <크루즈Zone>의 부대시설로 제시된 ‘푸드코트’와 <향토체험Zone>의 부대시설인 ‘토속식당’, 그리고 <해양관광Zone>의 부대시설로 제시된 ‘seafood 거리’의 공통점은 음식점으로 치열한 내부 경쟁뿐만 아니라 성황 중인 기존 음식점과의 외부경쟁에서도 생존 가능성이 극히 낮아질 것이다.
 
크루즈전용선석이 조성될 제주외항을 포함한 동북아시아 일대 민간항구와의 비교열세에 놓인 民軍복합항의 경쟁력 향상방안은 크루즈관광객의 첫 인상을 결정하는 크루즈터미널의 차별화를 모색하는 것이다. 즉, 수속절차와 기본적인 편의시설의 배치를 강조하는 모더니즘 건축의 기능적 사고방식을 벗어나 건물 자체가 랜드마크(landmark)로 인식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심미적 경향이 채택되어야 한다. 세계 3대 미항의 반열에 시드니항이 포함될 수 있었던 중요한 영향변수는 오페라하우스의 디자인이고, 쇠퇴해가는 스페인의 빌바오시를 회생시킨 요인도 구겐하임(Guggenheim) 미술관의 미학적 디자인에 기인한다. 따라서 크루즈터미널 조성비용으로 책정된 149억 원의 예산범위로는 기능중심의 건물을 지향하고 있는 관계로 예산규모를 500억 원 이상으로 확대한 후 국제현상설계공모를 통해 심미적 디자인의 크루즈터미널로 조성되어야 한다.
 
제주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부상할 크루즈터미널을 배경으로 사진촬영을 하는 일반관광객의 행렬이 끊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크루즈터미널을 제외하고는 제주 전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향토음식점만이 즐비한 民軍복합항의 분위기는 ‘제주다움’과는 괴리가 있기에 사진촬영 직후 관광객의 발길을 재촉할 것이다. 체류시간의 연장이 전제된다면 관광객의 향토음식점 이용횟수도 증가할 것으로 예측되므로 실현가능성이 희박한 ‘명품관’의 대안으로 ‘내국인면세점’이 설치되어야 한다. 차량으로 15분 이내 이동 가능한 중문관광단지의 컨벤션센터에 내국인면세점이 운영된다면 <크루즈Zone>의 ‘명품관’뿐만 아니라 <향토체험Zone>의 부대시설로 제시된 ‘특산물판매장’을 포함한 모든 유형의 쇼핑판매시설의 실패가 예견되므로 지역주민 주도의 향토음식점 운영의 존폐도 명약관화한 것이다. 크루즈터미널에 내국인면세점을 우선 도입하여 쇼핑관광의 명소로 활성화한 후 크루즈관광객이 증가하면 외국인면세점 유치도 연계될 수 있을 것이다. <제주의소리>

<문성민 시민기자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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