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영철의 제주해안 따라가기⑧] 가문동해안
가문동 마을회관 옆으로 접어들어 다시 바다와 만난다. 다시 만나는 거북등 모양의 너른 바위가 반기는 듯하다. 여기에 마지막으로 온 때를 헤아려보니 계절 하나를 훌쩍 넘기고 말았다. 여름의 막바지에 왔었는데, 이제 겨울이 문턱에 이른 듯하니 친구의 무심함에 질책할 듯도 한데 바다는 고요하다.
육지의 계절과 바다의 계절은 많이 다르다. 바다의 봄은 가을이다. 가을이면 고사리순 처럼 작은 바다풀의 어린 싹이 돋아나기 시작한다. 바다의 여름은 겨울이다. 육지의 칼바람이 바다에는 이르지 못하는 모양이다. 영등할망이 들어온다는 음력2월이 되면 바다풀들이 적당히 자라서 소라나 전복등 바다풀을 먹고 사는 생물들이 왕성한 성장을 시작하니, 영등할망이 바다생물의 씨를 뿌리고 간다는 말이 맞는 셈이다. 가문동 갯돈지 포구에 이르는 곳곳에 모자반이 어린 순이 바위에서 나오고 얕은 바다에는 물위까지 올라와서 둥실 떠있다. 생명이 향연이 시작된 것이다.
제주섬은 대략적으로 추정하면 약 120만년전부터 형성된 아주 어린 섬이다. 지질학적인 나이로 보면 태어난 지 몇 일되지 않은 갓난 아기다. 이 어린 섬은 갓 태어난 아이처럼 빠른 맥박과 맑은 생명력이 온 섬에 충만하다. 되돌려서 얘기하자면 인간의 간섭에 아주 민감하다는 말로 이해할 수 있다. 우리는 바다를 육지만큼 자세히 보지 못한다. 하지만 제주섬의 중앙에서 바다까지 아무리 먼 곳도 40km를 넘지 않는다. 육지와 바다가 아주 가깝게 연결되어 있다는 얘기다. 당연히 육지의 환경이 바다에 아주 쉽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제주의 육지와 바다는 지하수로 아주 강하게 연결된다. 대부분 육지의 물이 지하로 스며서 바닷가에서 용천수로 솟아나온다. 제주의 육지와 바다는 혈관으로 이어진 유기체다. 따라서 육지환경을 보면 자연히 바다를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주로 곡류를 재배하던 제주의 전통적인 농업이 최근 들어서 과수와 특용작물로 주재배종목이 바뀌었다. 그로 인해 생기는 변화는 무엇일까? 비료와 농약, 물 사용량이 급격히 증가했다는 것이다. 요즈음은 대개 잡초를 사람의 손으로 제거하지 않는다. 제초제 사용량이 급격히 증가했다. 화학비료의 사용도 증가하였다. 특수작물 들은 대부분 물이 많이 필요한 작물들로 지하수를 퍼올려 조금만 가뭄이 들어도 연일 물을 작물에 뿌린다. 제주의 토양은 물을 땅속으로 아주 잘 통과시키기 때문에 화학비료와 제초제도 그 물과 함께 지하로 스며서 바다에서 솟아나온다. 이 제초제와 화학비료의 성분은 바다풀 들에게 어떤 작용을 할까? 제초제는 사람도 먹으면 죽는다. 바다풀 들에게는 두 말할 필요가 없다.
해안을 따라가다가 극동방송의 안테나가 보이는 지점에서 해안도로로 나왔다. 나오다가 우연히 어린 돌고래의 죽음을 보았다. 어떤 이유로 어린 돌고래가 여기서 생을 마감했는지 모르지만, 제주바다환경이 급격히 변하면서 혹시 그 때문에 죽음이 맞이한 것은 아닐까 하는 안타까움과 죄스러움이 마음이 무겁게 했다. 생태계는 아주 복잡한 선으로 얽혀있다. 어떤 것이 어떤 것에 영향을 주는지 모든 것을 알기는 어렵지만, 하나가 파괴되면 다른 하나가 사라지는 것은 너무나 분명하다. 바다는 우리 곁에 있고, 그 바다는 우리의 모습이다.
※ 홍영철님은 제주의 새로운 관광, 자연과 생태문화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대안관광을 만들어 나가는 (주)제주생태관광(www.ecojeju.net ) 대표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 글은 ‘제주의 벗 에코가이드칼럼’에도 실려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