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영철의 제주해안 따라가기⑧] 가문동해안

▲ 가문동 해안풍경이다. 갯돈지포구라는 가문동포구와 전통의 어업방식인 원의 모습도 볼 수 있다.ⓒ홍영철

가문동 마을회관 옆으로 접어들어 다시 바다와 만난다. 다시 만나는 거북등 모양의 너른 바위가 반기는 듯하다. 여기에 마지막으로 온 때를 헤아려보니 계절 하나를 훌쩍 넘기고 말았다. 여름의 막바지에 왔었는데, 이제 겨울이 문턱에 이른 듯하니 친구의 무심함에 질책할 듯도 한데 바다는 고요하다.

▲ 바다풀들이 자라기 시작하는 가을이다. 각종 해조류들이 어린 순을 내고 있지만, 바다사막화 현상인 갯녹음현상도 볼 수 있다.ⓒ홍영철

육지의 계절과 바다의 계절은 많이 다르다. 바다의 봄은 가을이다. 가을이면 고사리순 처럼 작은 바다풀의 어린 싹이 돋아나기 시작한다. 바다의 여름은 겨울이다. 육지의 칼바람이 바다에는 이르지 못하는 모양이다. 영등할망이 들어온다는 음력2월이 되면 바다풀들이 적당히 자라서 소라나 전복등 바다풀을 먹고 사는 생물들이 왕성한 성장을 시작하니, 영등할망이 바다생물의 씨를 뿌리고 간다는 말이 맞는 셈이다. 가문동 갯돈지 포구에 이르는 곳곳에 모자반이 어린 순이 바위에서 나오고 얕은 바다에는 물위까지 올라와서 둥실 떠있다. 생명이 향연이 시작된 것이다.

▲ 먹이류가 풍부해지는 겨울은 바다의 여름이다. 왼쪽이 꽃고랑따개비, 가운데가 검은큰따개비, 오른쪽이 밤고둥이다.ⓒ홍영철
그런데, 곳곳에서 갯녹음현상이 보인다. 갯녹음현상은 '백화현상'이라고도 하는데, 까맣던 갯바위가 하얗게 변하는 것을 일컫는다. 갯녹음현상의 1차적인 원인은 홍조류이다. 홍조류는 바위에 부착하여 생육하다가 죽으면 바위에 부착했던 부분이 연보라빛의 석회질로 남게되는데, 석회질이 점차 하얀색으로 변한다. 그래서 '백화현상'이라고 부른다. 갯녹음현상이 심각하게 인식되어지는 이유는 하얀색으로 변한 석회질 위에는 바다풀들이 다시 부착하여 생육하기가 어렵다는 데 있다. 그러면 왜 최근에 이런 갯녹음현상이 점차 심각해지는 것일까?

제주섬은 대략적으로 추정하면 약 120만년전부터 형성된 아주 어린 섬이다. 지질학적인 나이로 보면 태어난 지 몇 일되지 않은 갓난 아기다. 이 어린 섬은 갓 태어난 아이처럼 빠른 맥박과 맑은 생명력이 온 섬에 충만하다. 되돌려서 얘기하자면 인간의 간섭에 아주 민감하다는 말로 이해할 수 있다. 우리는 바다를 육지만큼 자세히 보지 못한다. 하지만 제주섬의 중앙에서 바다까지 아무리 먼 곳도 40km를 넘지 않는다. 육지와 바다가 아주 가깝게 연결되어 있다는 얘기다. 당연히 육지의 환경이 바다에 아주 쉽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제주의 육지와 바다는 지하수로 아주 강하게 연결된다. 대부분 육지의 물이 지하로 스며서 바닷가에서 용천수로 솟아나온다. 제주의 육지와 바다는 혈관으로 이어진 유기체다. 따라서 육지환경을 보면 자연히 바다를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주로 곡류를 재배하던 제주의 전통적인 농업이 최근 들어서 과수와 특용작물로 주재배종목이 바뀌었다. 그로 인해 생기는 변화는 무엇일까? 비료와 농약, 물 사용량이 급격히 증가했다는 것이다. 요즈음은 대개 잡초를 사람의 손으로 제거하지 않는다. 제초제 사용량이 급격히 증가했다. 화학비료의 사용도 증가하였다. 특수작물 들은 대부분 물이 많이 필요한 작물들로 지하수를 퍼올려 조금만 가뭄이 들어도 연일 물을 작물에 뿌린다. 제주의 토양은 물을 땅속으로 아주 잘 통과시키기 때문에 화학비료와 제초제도 그 물과 함께 지하로 스며서 바다에서 솟아나온다. 이 제초제와 화학비료의 성분은 바다풀 들에게 어떤 작용을 할까? 제초제는 사람도 먹으면 죽는다. 바다풀 들에게는 두 말할 필요가 없다.

▲ 어린 돌고래의 죽음. 황폐화되고 있는 바다를 느끼면서 육지와 바다와 관계를 돌아보게 한다.ⓒ홍영철
육지에서 만들어진 오염은 일차적으로 해중림을 파괴한다. 미역이나 감태 등 비교적 덩치가 커다란 육상으로 비유하자면 숲이 없어지는 것이다. 미역을 먹이로 하는 소라나 전복이 급격한 감소는 해중림이 많이 사라졌다는 반증이다. 사라진 해중림은 작은 바다풀 등이 자라게 되는데, 이 또한 육상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홍조류의 죽음으로 비롯되는 '백화현상'도 홍조류 자체의 문제이기 보다는 농약과 화학비료 사용으로 일어난 교란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바다와 육지를 분리된 것으로 본다. 바다에서 문제가 생기면 바다만 바라보고, 육지에서 문제가 생기면 육지만 본다. 남아메카 서쪽 남태평양의 '엘리뇨현상'이 육상의 기후에 미치는 엄청난 영향을 직접 보면서도 말이다.

해안을 따라가다가 극동방송의 안테나가 보이는 지점에서 해안도로로 나왔다. 나오다가 우연히 어린 돌고래의 죽음을 보았다. 어떤 이유로 어린 돌고래가 여기서 생을 마감했는지 모르지만, 제주바다환경이 급격히 변하면서 혹시 그 때문에 죽음이 맞이한 것은 아닐까 하는 안타까움과 죄스러움이 마음이 무겁게 했다. 생태계는 아주 복잡한 선으로 얽혀있다. 어떤 것이 어떤 것에 영향을 주는지 모든 것을 알기는 어렵지만, 하나가 파괴되면 다른 하나가 사라지는 것은 너무나 분명하다. 바다는 우리 곁에 있고, 그 바다는 우리의 모습이다.

※ 홍영철님은 제주의 새로운 관광, 자연과 생태문화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대안관광을 만들어 나가는 (주)제주생태관광(www.ecojeju.net ) 대표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 글은 ‘제주의 벗 에코가이드칼럼’에도 실려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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