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백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꽃들(2)
순백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꽃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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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로 다가온 제주의 꽃들(52)

▲ 흰달개비.ⓒ김민수
달개비 또는 닭의장풀과 친척간에 있는 꽃이니 닭의장풀의 꽃말 '짧은 즐거움'을 붙여주어도 될 듯한 꽃이 5월의 끝자락을 붙잡고 피었다.

이 꽃의 사연은 이렇다.
어느 지인의 집에 놀러갔다 돌아오는 길 화단에 하얀 달개비가 피어있었다. 나는 한 번에 많이 얻어오는 것보다 아주 조금 얻어와서 퍼뜨리는 것을 좋아하고, 달개비의 생명력에 대해서는 익히 들은바 있으니 주인의 허락도 받지 않고 한 줄기 뚝 꺾어와 화단 한 구석에 심었다. 그 꽃이 한 해가 지나고 나니 너무 많이 퍼져서 이젠 적당히 뽑아 주어야만 할 정도로 많이 퍼졌다. 그렇게 귀한 대접을 받고 퍼져나가다 뽑혀서 버려지는 꽃이 되어버렸다.

달개비를 보면서 나는 생명의 끈질김에 대해서 배운다.
지난 여름 너무 무성하여 줄기들을 쳐서 담장에 올려놓았다. 흙 냄새를 맡으면 또 뿌리를 내고 퍼져나갈 것이니 아예 말려 죽일 작정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여간해서 마르지 않을 뿐 아니라 서둘러 꽃을 피우는 것이 아닌가! 나의 잔인함에 대해서 반성을 하고는 그 이후 달개비와 싸우지 않기로 했다.

단 하루 피었다 지는 꽃을 위해서도 저렇게 치열하게 살아가는데 나는 나의 하루를 위해 얼마나 치열하게 살아가는가 생각해 보니 달개비 앞에서 부끄러워진다. '하루를 살아도 아름답게'살아가는 꽃, 그 꽃이 있어 내 삶도 더 치열해 진다.

▲ 함박꽃.ⓒ김민수
1987년 6월의 함성, 그 자리에 서있었던 한 사람으로서 그 날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조금은 특별한 날로 만들어가고 싶은 마음, 혼자라도 자축하고 싶은 마음에 한라산에 올랐다. 성판악에서 출발한 산행, 진달래 휴게소를 얼마 앞둔 등산로에 함박꽃이 활짝 피어있었다.
연한 미등을 켠 듯한 함박꽃과의 첫 대면이었다.
첫 만남이라는 것은 이런 설렘이구나 감탄하게 만든 꽃, 한참으로 함박나무 아래에 앉아 그를 바라보았다.

꽃에 마음을 빼앗기기 시작하면서 가장 기쁜 순간은 도감상으로만 보던 꽃과 직접 대면하는 그 순간의 설렘이다. 한 번도 실물을 본 적이 없지만 보는 순간 '아! 저것이...'하는 순간의 기쁨은 뭐라고 표현하기가 힘들다. 때로는 너무 작고, 볼품이 없어서 '에게, 이거야?'할 때가 없는 것도 아니지만 대부분의 경우 횡재를 한 기분이다.
도감에서도 본 적이 없는 듯한 꽃을 사진기에 담아와 혹시 미기록종이 아닐까 해서 꽃 박사들에게 물어보면 이름 없는 꽃들이 없으니 우리네 선조들은 이 땅 구석에 있는 것들 하나라도 허투로 여기지 않았던 것이다.

아이들의 함박웃음처럼 행복하게 하는 것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 함박웃음 한번 보기 위해 재롱을 피는 어른들을 보면 동심으로 돌아간 모습 같아서 저절로 마음이 따스해 진다. 저런 마음으로 모든 사람들, 자연을 대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 치자.ⓒ김민수
향이 깊다는 이야기는 들었다.
초여름 산들바람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직 바닷가에 첨벙 뛰어들기에는 추운 계절 7월의 바람에 꽃향기가 거실로 파고 들어왔다.
겨울이라면 영락없이 수선화이겠지만 이 계절에 이렇게 진한 향기를 품고 있는 꽃의 정체는 무엇일까 궁금해 뜰에 나가 향기를 좇아가 보니 치자나무에 하얀 꽃이 피었다. 순백색의 두툼한 꽃, 그러나 그리 오래가지 못하고 이내 누렇게 말라가는 꽃, 치자의 향기였다.

저렇게 아름다운 순간, 아름다운 향기를 담았는데 좀 오래갔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다가도 그렇게 짧은 순간이니 그 여운이 더 깊게 남아있는 것이라 생각하니 꽃들마다 피어있는 시기, 향기가 다른 이유들이 있는 것 같아 내 욕심만 채울 수는 없을 듯 하여 가장 예쁘게 핀 그 모습에 눈길을 한번이라도 더 주기 위해 이해인 수녀의 '치자꽃'이라는 시를 읊으며 그 곁을 서성거린다.

눈에 익은
어머니의
옥양목 겹저고리

젊어서 혼자된
어머니의 멍울진 한(恨)을
하얗게 풀어서
향기로 날리는가

「얘야, 너의 삶도
이처럼 향기로우렴」
......<하략>

▲ 풍란.ⓒ김민수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8월, 2004년 제주의 여름은 가뭄까지 겹쳐서 온 대지가 목말라하는 것을 넘어서서 타들어 갔다. 바짝 달궈진 대지에 씨앗을 뿌리지도 못할 정도였으니 그 가뭄이 얼마나 심했는지 상상해 보시길...

그런데 그 뜨거운 햇살, 가뭄에도 불구하고 물기의 흔적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바위에 뿌리를 내린 풍란이 꽃을 피웠다. 얼마나 대견스러운지 뜨거운 햇살에 얼굴이 타는 줄도 모르고 한참을 바라보았다. 눈부신 순백의 꽃송이 하나하나는 마치 바닷가 바위에 부서지는 파도의 포말 같았다. 너무 고마워 눈시울 가득 눈물이 핑하니 돈다.

어쩌면 우리가 사는 일도 저 풍란이 바위에 뿌리를 내리는 것 같을지도 모르겠다. 풍란을 쳐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풍란의 뿌리가 바위에 내리기까지 얼마나 많은 인내의 시간들이 요구되는지 모른다. 그렇게 오랜 인고의 세월이 그 뿌리마다 가득 고여 있으니 그 힘으로 꽃을 피웠을 것이다. 우리네 인생살이에 다가오는 고난, 그것쯤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일갈을 하는 듯 피어있는 풍란에게 '고마워, 너무 고맙다'하며 인사를 나눈다.

▲ 하늘타리.ⓒ김민수
하늘타리만 보면 나도 모르게 '미친년'이라는 불경스러운 단어가 떠오른다. 그 이유는 다른데 있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든 붙잡을 수 있는 것만 있으면 하늘을 향해 피는 꽃의 술이 얼키설키 엉켜있어서 마치 빗질을 하지 않은 듯한 형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거지들이 많이 있었는데 종종 여자 거지들도 심심치 않게 보았다. 그리고 간혹은 '미친년'도 보았는데 공통점이 있다면 머리가 제 멋대로 헝크러져 있다는 것이다.

대학 1학년 겨울방학, 삶의 밑바닥을 사는 이들의 삶을 조금이나마 느끼고자 강원도 원주 태장동 골목을 누비고 다니며 쓰레기청소를 대행해 주는 일을 한 적이 있었다. 청소차가 들어가기도 쉽지 않은 골목, 당시에는 연탄을 많이 사용을 했으니 연탄재를 치우는 일도 보통이 아니었다. 가정집은 한 달에 3000원 정도, 음식점 같은 곳은 1만5000원 정도를 받고 쓰레기를 대신 치워주는 아르바이트였다. 문이 잠겨있는 집에 초인종을 누르면 "누구세요?"하는 소리가 스피커를 타고 나온다. 그러면 "쓰레기요"하는 단 한 마디면 문이 삐걱 열린다.
그런데 태장동 어느 골목 어느 집에 미친년이 살고 있었다.
보기만 하면 "야, 쓰레기 온다, 쓰레기 온다."하는 통에 허겁지겁 쓰레기통을 비워야 했다. 문득 그 말을 듣고 '그런데 정말 내가 쓰레긴가?'하는 생각이 들어 다음날 부터 "누구세요?"하는 소리에 "청소하러 왔습니다."고 대꾸를 했다.

20년도 더 된 오래 전 일인데 참 이상하게도 하늘타리만 보면 그 때가 생각나고 그래서 불경스럽게도 '미친년'이 생각나는 것이다.

▲ 흰해국.ⓒ김민수
가을꽃 해국이 피면 바다를 거니는 일이 즐겁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바다에 피어있는 털머위, 해국, 갯고들빼기, 갯쑥부쟁이까지 지고 나면 봄까지는 허전하겠지 하는 생각에 서운하기도 하다.

그 날도 해국이 흐드러진 바닷가를 걸으면서 바위틈에 피어난 해국들을 사진기에 담기 위해 이리저리 살피며 바닷가를 거닐었다. 해국이니 바닷가를 배경으로 찍고 싶어서 몇 번을 바닷가와 해국 근처를 왔다갔다했다. 해국은 대부분이 연한 보랏빛이었고 흰해국을 만나기까지는 흰해국의 존재자체도 알지 못했다.

그런데 그 많은 보랏빛 해국의 행렬 속에서 흰해국을 만나는 행운을 얻었다. 맨 처음에는 색이 발해서 흰색인가 유심히 보았지만 피어나는 순간부터 흰해국이었다.
"와, 특종이다!"
부지런히 집에 돌아와 사진을 편집해서 내가 가입해 있는 야생화 사이트에 기쁜 소식을 올렸다. 그런데...이미 원예종 흰해국이 등록되어 있었다.

신(神)이 처음 만든 꽃으로 알려진 꽃은 국화과인 코스모스다. 코스모스(Cosmos)라는 명칭은 그리스어의 코스모스(Kosmos·질서,조화)에서 유래된 것이니 혼돈(Kaos)의 세계에 질서를 불어넣을 때에 국화과의 꽃으로 시작했다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그렇다면 신이 가장 나중에 만든 꽃은 무엇일까? 제일 마지막으로 만든 꽃이 바로 국화꽃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국화가 꽃 중에서는 가장 고등식물이라고 하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해국도 우리가 부르는 들국화 중의 하나이니 그런 꽃이리라.

▲ 흰갯쑥부쟁이.ⓒ김민수
순백의 많은 꽃들의 경쟁을 물리치고 마지막으로 소개되는 흰갯쑥부쟁이도 국화과의 꽃이다. 제주에서 갯쑥부쟁이는 가을에 피었다 지는 꽃이 아니라 온 겨울 내내 피는 꽃이다. 꽃을 찾아 떠난 여행길에서 만난 쑥부쟁이들의 종류는 참으로 다양했는데 갯쑥부쟁이는 그야말로 은은한 보랏빛, 그 한가지만 있는 줄 알았는데 그것 역시 착각이었다.

아예 천성적으로 흰색이 꽃도 있고, 변이종으로 흰색이 된 특별한 꽃도 있다.
그러나 이렇게 순백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는 꽃들을 만나면 내 마음 어딘가에 숨어있는 더러운 것들이 부끄러워진다. 하얀 도화지, 그것은 미래를 향해 열려있는 가능성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흰 꽃들, 순백의 꽃들을 보면서 미래를 향한 가능성들을 본다. 미래에 대한 가능성의 다른 말은 희망, 신앙적인 용어로 바꿔 말하면 '소망'이다.

꽃.
그것은 어떤 눈으로, 어떤 마음으로 바라보는가에 따라서 다르게 다가온다.
얼마만큼 그들을 항해 열려있는 마음인가에 따라 그들은 다른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그런데 어김없이 희망의 메시지들이다. 그래서 나는 꽃을 찾아 떠나는 여행길을 멈출 수 없다.

※ 김민수님은 제주의 동쪽 끝마을에 있는 종달교회를 섬기는 목사입니다. 작은 것의 아름다움을 보는 것을 좋아하며, 일상에서 소중한 것을 찾는 것을 즐겨 합니다. 자연산문집 '달팽이는 느리고, 호박은 못생겼다?' '내게로 다가온 꽃들'의 저자이기도 한 그의 글은 '강바람의 글모음 '을 방문하면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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