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도영의 뉴욕통신]'유신의 망령'이 총집합된 고물상?

1961년, 한일국교 정상화를 위한 '한일회담'이 치욕적이고 굴욕적인 외교라면서 전국 대학생과 고교생들까지 반대시위를 하는 바람에 거의 대부분의 대학과 고등학교까지 폐교상태에 이른 때였다.

당시 고교3년생이었던 나는 서북청년단 출신 송아무개 교장에게 '이유있는 반항'을 하다가 양쪽 귀의 고막이 파열을 당하는 뭇매를 맞았다.

전혀 위의 주제와는 다른 이유로 소위 '백지동맹'(기말시험 답안지를 백지로 제출)을 했다. 우리더러 "빨갱이 사주를 받았다"고 훈시하는 교장에게 "그 말씀 취소하십시오!"라고 손가락질하며 대들다가 무참히 당했다.

그 교장 선생은 나를 퇴학조치하겠다고 으름장을 놨고 나는 교장선생을 파면시키겠다고 맞섰다.

권아무개 담임선생의 애원으로 나는 그 일을 성취하지 못하였다. 대신 나는 장발로 졸업 때까지 홀로 항의시위를 했다. 우리는 모두 졸업사진도 찍지 못하였다. '가단두, 발부단'(내 목을 짤라도 내 머리는 못 짜른다)...

'빨갱이'란 말을 들으면 나는 지금도 알레르기 반응을 보인다. 누군가는 나에게 '레드 컴플렉스'가 너무 심하다고 핀잔도 한다.

'빨갱이'라는 이름으로 나의 아버지와 동네사람들이 숱하게 죽임을 당했다. 그리고 수십년이 지난 후에도 이 굴레는 '관행헌법'속에 들어 있는 '연좌제'에 의해서 살인을 계속했다.

나의 아내가 자신은 아무런 죄도 없는데 나와 결혼했다는 이유 하나로 '빨갱이 가족'이 되어서 신원조회에서 퇴짜를 당하고 실망한 나머지 우울증으로 이 세상을 하직했다.

당시 공안당국에 의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빨갱이'로 만들어냈는지 모른다. 멀쩡한 사람들을 김일성 수령 쪽으로 몰아부쳤다. 즉, 관제 빨갱이를 만들어 바쳤다. 누가 진짜로 '국가보안법'을 위반한 것일까?

지금도 대한민국 국회에서는 용공조작 공안검사 출신들과 과거 중앙정보부(안기부) 간부출신들이 득세를 하고 있어, 툭하면 간첩, 빨갱이 논쟁으로 아까운 세비를 축내고 있다.

북의 김정일 위원장은 맘속으로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제들이 정말로 제정신을 가지고 말하고 있을까?'

한나라당은 이미 폐쇠당해야 할 공해당이다. 유신의 망령을 되살려 재집권해 보겠다는 야욕을 지금도 불태우고 있으니 아직도 청산되지 못한 '과거사'가 원망스럽다.

기득권을 놓칠세라 노심초사한 나머지 아직도 1940년 후반에서 기승을 떨치던 '레드 헌트'가 지금도 유효화하고 싶은 게다.

이미 사문화된 국가보안법을 되살려 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을 보면 화가 나기보다는 측은하기 그지 없다.

마치 흡혈귀 드라큘라가 관속에서 다시 일어나며 괴성을 지르는 듯한 오싹함도 있다.

멀쩡한 한 시민이고 가장이었던 이철우씨를 용공조작하여 4년간 옥살이 시킨 것도 모자라서 지금도 공석상에서 매도질하고 있다. 물리적인 폭력 못지 않게 언어적 폭력은 그 심신에 미치는 파괴력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한 보수기관지나 다름없는 '찌라시'를 흔들어대며 사실확인도 하지 않은 체 '살인적'인 만행을 일삼는 자들이 국회의원이라니...

그래서 지금 여의도 시각은 '1960년 5월 16일 새벽 미명인가' 착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 기회에 국가보안법을 확실히 폐기처분하여 틀린 시각을 고쳐놓도록 하자. 지금 시각은 2004년 12월 9일 정오가 지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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