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년만에 제자리 찾은 '족두리' 바위 20미터 이동 ‘대공사’
“태풍 ‘나리’ 악몽 잊고 마을명물 상징석 잘 보호할 터”

바다 한가운데 치마폭으로 흙을 날라 한라산과 제주 섬을 쌓았다는 전설의 거신(巨神) 설문대 할망. 그 설문대 할망이 벗어 놓았다는 설화를 간직한 일명 ‘족두리할망 모자 바위’가 지난해 태풍 ‘나리’때 범람한 하천 물에 떠내려갔다가(제주의소리 2007년 9월25일 보도) 1년여 만에 제 집을 찾아 왔다. 행정의 관심과 지역주민들의 간절한 소망 덕이다.

▲ 수백년 동안 끄떡없이 제자리를 지키고 있던 설문대할망 족두리 바위 (2006년 8월 촬영) ⓒ제주의소리
제주시 오라동 마을에서 수백년 동안 대대로 마을 상징석으로 애지중지해온 족두리 모자바위는 지역주민들과 애환을 함께해온 이 마을 명물이다. 족두리 모자바위의 무게는 약130여톤. 태풍으로 약20여 미터를 쓸려 내려갔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데 1년이 걸렸다. 원래 위치에서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있었지만 130톤이나 나가는 무게를 들어 올릴 장비가 마땅치 않아 마을주민들은 전전긍긍해왔다. 제주의 전설마저 삼켜버렸던 태풍 ‘나리’의 악몽을 떨치고 8일 바로 그 ‘족두리할망 모자바위’가 제자리로 돌아왔다.

# 130톤 거대한 바위, 행정의 ‘관심’과 주민의 ‘정성’이 들어올렸다

지난해 9월 제주를 처참하게 할퀴고 지나 간 태풍 ‘나리’. 범람한 하천 물은 단 한 번도 자리를 옮겨보지 않은 130톤의 거대한 족두리할망 모자바위를 약 20여미터나 굴러가게 했다. 이 때문에 마을사람들은 “태풍 ‘나리’인지, ‘나으리’인지, ‘개나리’인지가 설문대할망이 쓰던 족도리 모자까지 훔쳐가려고 했다”면서 “마을에 혹시라도 나쁜 일이 생기지 말아야 될텐데…”라며 혹시나 동티나지 않을까 발을 동동 굴러 왔다.

▲ 수백년 동안 제자리를 지켜오다 지난 2007년 태풍 '나리' 때 빗물에 휩쓸려 20여m를 이동하게 된 설문대할망 족두리 바위. 오른쪽 노란색 원이 원래 위치였지만 빗물에 휩쓸려 사진 왼쪽 끝까지 흘러내려와 있다.(2007년 9월 촬영) ⓒ제주의소리
그러나 제자리에 옮기려 해도 장비나 예산이 문제였다. 조막만한 마을살림살이로는 최소 수천만원이 소요될 작업비용은 엄두도 낼 수 없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 했던가. 주민들이 고민속에 빠져있던 중 전임 김영훈 제주시장이 올해 초 제주시 읍면동 연두방문 당시 오라동 주민들은 “설문대할망의 전설을 간직한 족두리 모자바위를 제자리로 옮겨달라”고 간절하게 요청했고, 전임 김영훈 시장은 주민들에게 “족두리 모자바위가 주민들에게 어떤 상징성을 갖는지 잘 알고 있다. 방법을 찾아보겠다”고 약속했었다.

▲ 원래 자리로 되돌아온 설문대할망 족두리 바위. 태풍과 이번 이동작업으로 바윗돌 여기저기 생채기가 났다. ⓒ제주의소리
결국 1년여 만에 그 약속이 지켜졌다. 이에대해 허중웅 오라동 전 주민자치위원장은 “마을사람들과 함께 희노애락을 함께 해온 족두리할망 모자바위가 모든 분들의 관심과 노력으로 늦었지만 이제라도 제자리로 돌아오게 돼 마을사람들은 너무너무 기뻐하고 있다”며 “특히 주민들과의 약속을 지켜준 전임 김영훈 시장과 현 강택상 시장 등 제주시의 노력에 진심으로 감사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 20미터 옮기기에 대형크레인 4대, 포크레인 2대…3일간 총력전 끝에 ‘원 위치’

이번 족두리 모자바위의 제자리 찾기 작업은 총3일이 소요됐다. 20미터를 이동하는데 걸린 시간이 3일이다. 한마디로 한발짝 한발짝 옮긴 셈이다. 장비는 크레인 장비 4대와 포크레인 2대가 투입됐다. 그 중 100톤 크레인이 1대, 50톤 크레인이 3대다. 50mm 와이어 로프로 바위돌을 빙빙 둘러 사방에 포진한 4대의 크레인에 매달고 한 발짝씩 앞으로 나갔다.

▲ 지난 2007년 태풍 '나리' 때 빗물에 휩쓸려 간 설문대할망 족두리 바위가 8일 본래 자리로 옮겨지고 있다. ⓒ제주의소리
현장작업을 맡은 고석종(53)씨는 “와이어 로프가 끊어지기를 몇 번씩 반복했고, 울퉁불퉁한 하천지형으로 크레인 장비가 안정적인 작업위치를 잡기 어려워 작업은 더딜 수밖에 없었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 오라동 향토지 '족감석(族感石)' 기록...“무거워서 도둑도 가져가지 못해”

▲ 제주시 오라동 허중웅 전 주민자치위원장은 8일 현장에서 자리를 뜨지 못하고 작업상황을 내내 마음졸이며 지켜봤다. 허 전 위원장은 평생을 오라동에서 살아온 이 마을 토배기다. ⓒ제주의소리
제주시 오라동 향토지(2004.1월 발간)에 따르면 '설문대 할망 모자'는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지만 화산이 폭발한 후 냇가에 큰 바위 덩어리하나가 서 있었다고 기록돼 있으며 일명 '족감석(族感石)으로 나와 있다.

예전에 이 돌을 훔쳐가려고 해도 너무 무거워 갖고 가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올 정도로 '돌 애호가'사이에서는 유명세를 치렀던 '명물 중 명물'로 웬만한 이들 사이에선 화제의 돌이다.

설화에 의하면 설문대 할망이 '제주 앞바다에서 목포까지 다리를 놓아주겠다'며 모자를 벗어 한 쪽에 놓아두고 어디론가 떠나버렸다는 유래와 함께 마을 선인들이 '족두리 할망 모자'라고 부르며 마을 사람들과 삶의 애환을 함께 해 왔다고 전해진다.

'...옛 설화에 의하면 이 할머니는 몸이 워낙 커서 아래 바지, 즉 소중이를 해 입을 옷감이 없어서 마을 주민들에게 하는 말이 "나에게 소중이 한 벌을 해주면 제주 앞바다에서 목포까지 다리는 놓아 주겠다"고 말을 했다고 한다. 그 때도 마을 주민들이 너무나 가난하여 소중이를 못해 드리니까 그 할머니는 모자를 벗어 그 곳 한 쪽에 놓아두고 소중이 해 줄 곳을 찾아 어디론지 떠나가 버렸다는 설화가 전해내려 오고 있다...'(오라동 향토지 374페이지)

▲ 130t에 이르는 거대한 설문대할망 족두리 바위의 제자리 찾기는 대형크레인 4대, 포크레인 2대 등이 동원된 가운데 3일에 걸쳐 진행된 '대공사'였다. ⓒ제주의소리
제주시 오영복 재난안전관리과장은 8일 “지역주민들의 숙원사업이었던 이번 족도리 모자바위 이전 작업은 마을사람들의 아픈 상처를 보듬는 취지로 시행됐다”며 “그러나 만만치 않은 예산이 예상돼 안전하면서도 가장 최소의 비용으로 사업을 맡아줄 업체를 찾다보니 예상보다 착수시간이 오래 걸렸다. 이번 사업에 약 3000만원의 예산이 투입됐다”고 밝혔다.

" + __flash__argumentsToXML(arguments,0) + "")); }" player_set_skin="function () { return eval(instance.CallFunction("" + __flash__argumentsToXML(arguments,0) + "")); }">
오라동 주민들은 8일 설문대할망 족두리 모자바위가 제자리를 찾자, 환호와 박수를 보냈다. 기적같은 대공사를 해냈다고 기뻐했다. 무심히 지나칠수도 있는 일이지만 제주시의 ‘밀착행정’과 주민들의 간절한 ‘소망’이 130톤의 거대한 바윗돌을 들어 올린 것이다. 오라동 주민들은 “이제 엄청난 재난을 불러왔던 태풍 ‘나리’의 악몽을 잊고 마을명물인 상징석 ‘족두리 모자바위’를 잘 보호하고 가꿔나가겠다”고 입을 모았다. 주민들은 또 조만간 족도리 모자바위 앞에서 정성스럽게 제물을 차려놓고 소박한 제(祭)라도 꼭 지내겠다고 했다. 말은 제(祭)라고 했지만 분명 잔치가 될 터이다.  <제주의소리>

<김봉현 기자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