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굿이야, 돼지고기 파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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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녕마을 2] 굿을 올리고 주민끼리 통돼지를 나눠먹는 김녕마을 '돗제'
▲ 궤네기당 김녕중학교에서 남쪽에 자리잡고 있다. 과거 이곳에서 주민들이 모여 돗제를 지냈다.
ⓒ 장태욱

김녕은 굴이 많은 마을이다. 그중 세계 최장으로 알려진 만장굴은 이미 전국에 잘 알려진 관광 명소다. 이 마을에는 이 외에도 김녕사굴, 당처물굴, 용천굴, 궤네귀굴 등이 있는데, 마을에는 굴들마다 주민들의 삶의 정서가 녹아있는 사연들이 전해진다.

그중 가장 유명한 이야기는 김녕사굴에서 전해진다. 이굴은 김녕마을에서 만장굴로 올라가는 길목에 있다. 과거 이 굴속에는 뱀이 살면서 주민들에게 제물로 뱀을 바치게 했는데, 판관 서련이 제주에 부임하면서 이 뱀을 괘씸하게 여겨 굴속으로 들어가 그 뱀을 죽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 제주판관서련공사적비 김녕사굴 입구에 있는 비석이다. 김녕사굴에 살던 뱀을 죽였다는 판관 서련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석이다.
ⓒ 장태욱

김녕마을 주민들의 정서를 잘 보여주기는 궤네기굴이 김녕사굴에 뒤지지 않는다. 마을에 전해지는 구전이나, 현장에서 발굴한 유적들은 주민들이 이 마을에 정착해서 살아가는 전 과정을 압축해서 보여준다.

궤네기굴로 김녕 중학교 북쪽 400m 지점에 있다. 국립제주박물관이 궤네기굴 발굴과정에서 덧띠무늬토기와 반달돌칼 등이 발굴되었다. 이로보아, 초기철기시대에 이굴에 사람이 살았음을 알 수 있다. 무당의 본풀이에도 이 마을 최초의 정착지는 궤네기동굴이라 되어 있다. 이 마을의 정착 역사가 약 2000년 전 궤네기동굴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궤네기굴에는 300여년 된 큰 팽나무가 수문장처럼 굴 입구를 지키고 있다. 주민들의 증언에 의하면, 궤네기굴은 입구가 네 군데나 있다. 과거 주민들은 기 굴에 ‘궤네기또’라는 당신이 좌정하고 있다고 하여, 이곳에서 제사를 지냈다. 이제(祭)를 ‘돗제’라고 하는데, 제사를 지낼 때 통돼지를 잡아서 올렸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 궤네기굴 선사인들의 유적과 더불어, 다량의 멧돼지뼈가 발굴되었다.
ⓒ 장태욱

궤네기당이 언제 형성되었는지 알 길이 없다. 하지만 이 굴의 초기 철기시대 유적에서 멧돼지 뼈가 다량 발견되었는데, 그중 특히 머리뼈가 많이 발견되었다. 과거 멧돼지를 제물로 바치던 제사가 주민들에 의해 돗제의 풍습으로 굳어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김녕노인대학 김군철 학장의 증언에 따르면, 이 마을 돗제는 거의 모든 주민이 참여하는 마을행사다. 주민들 가운데 간절히 바라는 바가 있거나, 좋은 일이 있는 사람이 심방(제주에서 무당을 이르는 말)에게 제를 청한다. 그 경우 제를 청한 사람이 돼지 구입비용을 포함한 모든 비용을 감당하고, 다른 주민들은 굿이 끝난 후 돼지고기를 나눠먹는다고 한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주민들은 이 궤네기굴에서 굿을 하지 않고, 각자 집에서 돗제를 지낸다. 돗제를 궤네기당에서 지내지 않고, 가정에서 지내게 된 이유에 대해 두 가지 설명이 있다. 하나는 4.3을 겪으면서 바깥출입이 자유롭지 못할 때 풍습이 굳어졌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주변 입산봉이 온통 무덤으로 뒤덮이면서, 궤네기또가 피냄새 때문에 이 굴에 머무를 수 없었기 때문이라는 거다. 마지막으로 궤네기굴에서 돗제를 마지막으로 지냈는지도 기억하는 사람도 없다.

굿을 청한 주인은 굿을 하기 3일 전부터 부정을 막기 위해 대문에 새끼로 금줄을 걸어놓는다. 제물은 마당에 차려놓고, 심방은 그 마당에서 굿을 한다. 밖에서 들어오는 궤네기또를 맞기 위해서이다.

이때 차리는 음식들은 떡, 고사리, 삶은 계란, 콩나물, 옥돔, 과일, 술, 쌀 등이다. 심방이 초감제(신들을 굿판으로 불러들이는 의식)를 지내고나서 바닥에 비닐을 깔면, 상자 가득 돼지고기가 들어온다. 돼지를 부위별로 꺼내 놓은 후, 돼지머리 정수리를 내리쳐 구멍을 내고 골을 꺼낸다. 그리고 접시 9개에 골을 포함해서 돼지고기를 부위별로 골고루 담아 궤네기또에게 바친다. 고기가 올라가면 심방은 다시 굿을 시작하는데, 궤네기또 본풀이는 이때 나온다.

뭣을 먹음냈가?

나는 장수가 되난, 황밧갈쇠 먹음네다.

어서 황밧갈쇠를 받치나네 그디서 곧는 말이 부샛집이사 황밧갈쇠 바쳐도 좋수다만 어디 가난헌 집이 조슨은 어떵 황밧갈쇠 받집네까? 그때에 곧는 말덜이 가문족발이 한족발이 자릿도새기 지들팡 아래 돋도구리 놓앙 아침, 점심, 저녁 물주고 수금주엉 황밧갈쇠만이 크거들랑 창지만 똑 쾌내어덩 상받지가 어떵허켄 허난 기영헙서.

‘황밧갈쇠’란 밭을 갈기위해 기르던 황소를 말한다. 장수는 황소 고기를 좋아하지만, 가난한 집 사람들은 황소를 대접할 형편이 안 되기 때문에, 돼지를 잘 키워서 황소만큼 크걸랑 그걸로 대접하라는 내용이다.

다음은 쌀로 가족들의 운세를 점치는 행위가 이루어진다. 점괘가 끝나면 심방은 주신을 따라온 많은 군졸들 및 잡귀를 위해 준비한 술과 음식을 들고 대문 밖에 쏟아놓는다.

돗제가 끝나면 심방은 돌아가고, 이웃 주민들이 고기를 먹기 위해 몰려든다. 이때는 고기만 먹는 것이 아니라, 쌀과 고기를 넣고 끓인 ‘몸죽’도 같이 먹는다. ‘몸’은 제주 해안에서 자라는 ‘모자반’을 말한다. 모자반과 돼지고기를 넣고 몸국을 끓이는 것은 제주도 해안마을에서 잔치가 열릴 때,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 문순실 심방 김녕마을의 모든 굿을 관장한다.
ⓒ 장태욱

옛날에 비해 음식이 풍부해진 오늘날에도 주민들은 돗제를 통해 음식을 나눈다. 김녕마을에서 돗제는 마을 주민들 간 결속을 다니는 주요 수단이 되고 있다. 아마도 과거 부족 간 분배의 양식으로 이루어지던 집단의례가 현재에 변형된 형태로 전하는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김녕마을 돗제를 직접 구경하고 싶었지만, 기회가 닿지 않았다. 그런데 마침 김녕 큰당에서 굿이 열릴 예정이라고 했다. ‘꿩 대신 닭’이라고 큰당에서 열리는 굿이라도 구경하기로 했다.

▲ 정성 굿은 정성이 제일이다. 심방이 제를 지내는 동안 단골은 소원을 빌고 있다.
ⓒ 장태욱

김녕 큰당은 김녕중학교 동쪽에 있는데, 강남 천자국 둘째 아기인 ‘관세전 부인’을 모시는 당이다. 이 신은 김녕 사람들의 생산물과 호적을 관장한다. 이곳에도 오래된 팽나무가 아늑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이곳에서는 1월 13일과 14일에 ‘대제일’로, 7월 13일과 14일에 ‘마불림제일’로, 9월 13일 14일에 ‘시만국대제일’로 당제를 올린다. 마침 내가 방문한 날이 음력 9월 13로 시만국대제가 열리는 날이었다.

밤낮의 기온차가 큰 계절에 새벽부터 제를 올리기 때문에, 찬 기운이 감돌았다. 심방도 추위를 느꼈는지, 큰당 구석에 장작불을 피워 놓고 있었다. 제를 올리기 위해 당을 찾아온 이들을 단골이라고 한다. 가끔 한 명씩 단골이 찾아왔는데, 그때마다 심방은 단골의 소원을 갖고 제를 올려주었다.

▲ 큰당에 올린 제물 단골들이 큰당에 올린 제물이다.
ⓒ 장태욱

단골이 제물을 제단에 올려놓으면, 심방은 단골의 소원을 담아 제문을 읊었다. 그리고 쌀을 이용해서 점괘를 받고, 단골에게 신의 계시를 전해주었다.

“금년엔 운전을 조심허랜 햄수다. 혹시 술 한 방울이라도 마시면 절대 차 운전 허지 말랜 헙서”

심방이 ‘아들에게 운전 조심하게 하라’는 점괘를 전해주자, 단골이 듣고 끄덕였다.

▲ 점꿰 심방이 쌀을 이용해 점꿰를 받고 있다.
ⓒ 장태욱

문심방은 초면임에도 불구하고, 거리낌 없이 면담에 응해주었다.(나중에 무속을 전문으로 연구하는 대학교수님에게 들어서 알게 된 사실인데, 이 심방은 방송에도 여러 차례 출연한 유명인사였다.)

심방은 자신을 문순실(48)이라고 소개했다. 무당이었던 어머니를 어릴 적부터 따라 다니다가 본인도 무당이 되었다고 했다. 돗제는 물론이고 이 마을에서 열리는 모든 굿을 문심방이 주관한다. 그뿐만 아니라, 구좌를 벗어나서 서귀포시 일대까지 굿을 하러 가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 대접 신에게 식사를 대접하고 있다. 대접하는 음식은 제단 좌우에 있는 두 구멍으로 들어간다.
ⓒ 장태욱

“김녕마을 굿만 붙들고 있으면 먹고 살 수 있겠습니까? 심방도 돈을 벌어야 사는 시대 아닙니까?”

편한 인상의 문심방은 다른 종교인들과는 달리 돈에 대해서도 솔직한 심내를 드러냈다. 요즘에도 마을에 돗제 일정이 잡혀 있는지 물었다.

“돗제는 예수 믿는 사람들을 빼고 모든 주민들이 지냅니다. 형편이 좋은 사람은 매년 한 차례, 그렇지 않은 사람은 3-4년에 한 차례, 제를 지냅니다. 며칠 후에도 돗제가 잡혀 있습니다. 그런데 집주인들이 돗제에 외부인이 참여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자신들 정성으로 제를 지내는데 다른 이들이 와서 부정해질까 걱정하는 겁니다. 굿은 정성이 제일입니다. 단골들은 평소에 마음가짐을 조심하고 특히 제를 올리기 3일 전부터는 특히 부정한 일을 삼가야합니다.”

어느덧 해가 높이 솟았다. 아침 일찍 찾아오던 단골들의 발길이 잠시 뜸해졌다. 여러 차례 제를 올렸더니 허기가 졌는지, 문심방이 밥을 차리고 나에게도 식사를 청했다. 조반을 일찍 먹었던지라 식사에는 함께하지 못했다. 돗제 구경은 아쉽지만 다음 기회로 미뤄야했다. <제주의소리>

<장태욱 시민기자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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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신순 추천순 이 기사에 달린 댓글 1
2008-10-17 05:05:49
김녕에 몇 번 간 적이 있었는데,이렇게 기사를 통해 '속살'을 들여다보니
또 다른 느낌으로 와닿는군요.
잘 읽었습니다.나중에 돗제도 소개해 주시길 ^^
(그런데,정말 부지런하시네요.제 게으름을 반성해야겠습니다)
12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