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의 몸에 기름을 뿌리고 불을 당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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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녕마을3] 주민들 괴롭히는 뱀 퇴치한 판관 서련의 이야기

김녕마을에는 만장굴을 비롯하여 많은 굴들이 있는데, 그중 김녕 사굴에는 과거 마을 주민들의 의식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굴에 살면서 주민들을 괴롭혔다는 뱀과, 그 뱀을 죽여서 주민들을 뱀의 지배에서 해방시켰다는 판관 서련(徐憐)의 전설이 그것이다. 

▲ 공덕비 2기 김녕사굴 입구에 판관 서련을 추모하기 위한 공덕비 2기가 세워져 있다.
ⓒ 장태욱

주민들을 사악한 뱀으로부터 구해준 판관 서련

예날 이굴에는 큰 뱀이 살아, 마을사람들로 하여금 해마다 봄과 가을 두 차례로 처녀를 제물로 바치게 했다. 만약 주민들이 이를 지키지 않으면, 뱀은 나물이나 약초를 캐러 나온 주민들을 물어 죽이기도 했고, 일년 농사를 망쳐놓기도 했다.

주민들이 힘센 장사를 동원하여 뱀을 잡으려 하였으나, 번번이 실패하고 말았다. 예나 지금이나, 세상 어려운 일은 힘없는 서민들이 감당하는 법이다. 권세가에서 딸을 바치려들지 않으니, 제물로 잡혀가는 처녀들은 결국 힘없는 상민들의 몫이 되고 말았다. 

▲ 처녀를 삼키려는 뱀 뱀이 처녀를 삼키려 달려드는 장면이다. 마치 영화 '괴물'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 도서출판 디룸

관아에서는 주민들이 처녀를 뱀에게 바치는 것을 미신이라 하여 금하고자 했으나, 주민들은 오히려 뱀을 두려워하여 이를 고치려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서련(徐憐)이 제주목 판관으로 부임했다. 그는 판관으로 부임하고 얼마 후, 아전으로부터 믿기 어려운 소문을 전해 들었다. 김녕마을에서 해마다 어린 처녀를 제물로 뱀에 바친다는 것이었다.

"백성들이 아무리 무지하기로서니, 어찌 사람을 뱀에게 제물로 바칠 수 있단 말이냐?"

"그간 여러 차례 이를 중지하도록 권했으나, 주민들이 듣지 않았습니다."

"주민들이 무서워서 그러는 것이다. 내 손수 그 뱀을 죽여 이 나쁜 풍습이 전해지지 않도록 하겠다."

며칠 후, 김녕마을에서는 마을 처녀를 뱀에게 바치는 제례가 열릴 계획이었다. 서 판관은 뱀을 잡기 위해 치밀한 계획을 세운 뒤, 병졸들과 장사들로 하여금 창과 방패를 지니고 굴 입구에서 대기하도록 했다.

▲ 제주 판관 서련 전설에서 뱀을 퇴치했다고 전하는 서련은 실존인물이다. 그는 제주 판관에 부임했다가 병을 얻어 죽었다.
ⓒ 도서출판 디룸

제례가 시작되고 큰 북이 올리자 커다란 구렁이가 굴에서 기어 나와 소녀를 삼키려 하였다. 이때를 기다리던 서련이 창으로 뱀을 내리 찌르자, 기다리던 병졸 및 장사들이 한꺼번에 달려들어 뱀을 찔렀다. 그리고 뱀의 몸뚱이에 기름을 뿌리고 불을 당기니, 뱀은 화염에 휩싸여 죽고 말았다. 송강호가 출연했던 영화 ‘괴물’의 마지막 장면과 비슷하다.

뱀에게 잡혀죽기 일보 직전에 목숨을 구한 처녀는 감격하여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이를 지켜보던 주민들도 판관의 용기에 감탄하며, 그 자리에서 춤을 추며 잔치를 벌였다. 서 판관은 기뻐 춤을 추는 주민들의 모습을 뒤로한 채, 제주목을 향해 말을 달렸다.

그런데, 서련이 제주성에 거의 당도할 무렵 하늘에는 갑자기 붉은 기운이 감돌았다. 이를 심상치 않게 여긴 서판관은 더 부지런히 말을 달렸는데, 어느덧 붉은 기운은 제주성 온천지를 감쌌다. 그가 관아에 도착하자마자 그의 귓전에 천둥소리 같은 것이 들리더니, 그는 그만 말에서 떨어져 정신을 놓고 말았다. 그리고 시름시름 앓더니 끝내 일어나지 못했다.

▲ 김녕사굴 출입구 출입구가 굳게 잠겨있다. 내부를 보호하기 위해 2011년까지 통제하고 있었다.
ⓒ 장태욱

죽은자 전설로 화려하게 부활하다 

"서련의 시신은 충남 홍성군 보개산 덕은에 안장되었다. 그의 운구가 제주를 떠날 때, 김녕주민들은 모두 몰려와 통곡하며 애도했다고 전한다."   

김녕사굴 입구에는 지금도 판관 서련의 은덕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공덕비 2기가 있다. 하나는 1937년 강공칠이란 자가 세운 '판관서공련기념비(判官徐公憐紀念碑)'이고 다른 하나는 1972년에 건립위원회에서 만든 '제주판관서련공사적비(濟州判官徐憐公社蹟碑)'이다. '제주판관서련공사적비'에는 판관 서련의 덕행을 기념하는 내용이 비문에 세겨져 있다.

서련은 실제로 1513년 2월에 제주에 부임하여, 1515년 4월 관청에서 죽을 때까지 제주판관으로 재임했던 인물이다. 이 전설은 실존 인물이 가공되어 마을의 전설 속으로 들어가서, 이야기를 재구성하고 있는 것이다. 전설과 역사의 경계를 굳이 구분하자면, 그가 제주판관으로 재임했고, 병을 얻고 죽었다는 이야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역사 밖의 것이다. 주민들은 역사 밖의 이야기를 두고 역사적 인물에게 공덕비를 세운 셈이다.

판관 서련의 전설과 관련하여, 김녕노인대학 김군천 학장은 독특한 해설을 내놓았다. 그의 주장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과거 이 굴에 불량한 도적들이 살고 있었다. 이들은 툭하면 마을 주민들에게 행패를 부리고, 심지어는 억지로 마을 처녀들과 혼사를 치렀을 것이다. 판관이 이들의 행패를 괘씸히 여겨 병졸들을 거느리고 이 굴에서 싸움을 벌여 이들을 소탕했다. 도적 일당을 일망타진하고 돌아오는 길에 남아있던 도적 무리들이 서 판관에게 보복을 하니, 서 판관은 방심한 틈에 도적의 칼을 맞고 부상을 입게 되었다. 그리고 앓아 누었다가 끝내 죽게 되었다."

김 학장은 당시 서판관의 용맹을 귀히 여겼던 주민들이 당시 상황을 비약해서 전하다보니 결국은 '악당'들을 뱀으로 묘사하게 되었다는 거다. 하지만 이영권은 저서 '제주역사기행'에서 이와는 다른 해석을 내 놓았다.

"서련은 당시 제주에서 중앙권력을 대표하는 인물이었다. 제주민중들과는 지향하는 바가 다를 수밖에 없었다. 서련이 뱀을 퇴치했다는 대목은 유교학자가 중앙권력을 대표해서 행하는 제주민들의 토착신앙에 대한 파괴 행위를 의미한다는 것이다. 서 판관은 주민들을 위하는 행위가 아니라, 주민들의 정신세계를 억압하는 일을 저지른 셈이다. 이로 인해 현실에서 패배를 경험한 제주민중들의 의식 속에서 서 판관은 하늘의 보복을 받고 죽은 인물로 남게 되었다는 해석이다."

▲ 김녕사굴 입구 김녕사굴 입구 표지판에도 판관 서련의 전설이 적혀 있다.
ⓒ 장태욱

지금은 주변에서 목조건물이나, 초가집을 찾아보기 어려운 시대다. 주변 습지들도 대부분 파괴되어 뱀이 서식할 수 있는 환경은 점점 좁아지고 있다. 그런데 줄어드는 것은 비단 뱀의 서식지뿐이 아니다. 유교, 불교, 기독교 등 외래종교와, 일상을 급속하게 변화시키는 과학이 현대인들의 사고를 잠식하면서,  제주인들의 의식 속에서 민간신앙이 머무를 영역 역시 점점 줄어들고 있다. 병을 얻고 죽은 판관 서련에 대한 애도가 제주인들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자기부정으로 보인다. <제주의소리>

<장태욱 시민기자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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