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법을 부둥켜 안으려는 자들은 '독사의 자식'들이다

나는 한국전쟁 전후 발생한 국가공권력에 의한 양민(=민간인)학살을 5년째 집중 조사해 오고 있다. 피학살자의 증언은 유가족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밖에 들을 수가 없고 또 증거력이 부족하여 주로 학살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자들의 자백과 증언을 채록하고 한국정부와 미국정부의 관련 문서를 수집하여 왔다.

특히 당시 정부의 문서를 찾아내는데 초미의 관심을 두고 한국정부 문서기록 보존소(대전, 부산)를 수차례 방문했고, 미 정부 문서보존소(NARA, National Archives and Recordings Administration)를 수년째 뒤지고 있다.

최근에 공개된 CIA문서들이 CD로 NARA내 컴퓨터에서 찾아 볼 수가 있었다. 흥미로운 것은 내가 관심있는 주요 단어(Key Word)를 넣으면 그 키 워드가 들어 있는 문서목록들이 주욱 열거된다는 점이다.

'김창룡'을 넣으니 'Tiger Kim'이라고 나오고, '장석윤'은 넣었더니 'Snake Chang'이라고 나왔다. 내 몸에 전율같은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 앞에 형용사가 하나 더 붙어 있는데, 'famous'(유명한)가 아니라 'notorious'(악명높은)이란 형용사가 첨부되어 있었다.

나중에 시카고 대학의 역사학과 교수로 한국전쟁사에 이름있는 브루스 커밍스 교수에게 이멜로 이 사실을 문의한 바 장석윤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지만, 그의 별명이 'Snake'(뱀)인지는 몰랐다는 답변이었다.

왜 주제인 '국가보안법'을 놔두고 이 두 사람의 이름을 거명하느냐고 의아해 할 독자들이 있을 것이다. 특히 제주인들에게는 '이승만' '조병옥'같은 거물들의 이름이 더 귀에 익었다.

김창룡과 장석윤은 한국전쟁 당시 국방부(장관 신성모)와 내무부(장관 조병옥) 소속 학살책임 하수인들이기 때문이다.

김창룡은 일제 때 일본군 헌병보를 지냈고 독립투사들을 잡아가두고 고문하는 앞잡이 노릇을 하다가 해방후 김일성에게 붙들려 형장으로 끌려가는 도중 탈출하여 남하한 후 이승만의 충견이 되었고 멸공의 기수가 되었다. 지금의 기무사의 원조가 된다.

장석윤은 해방 전 미군의 정보요원으로 발탁되어 훈련을 받았던 인물로 해방 후 이승만 정권에 침투되어 관료로 승승장구하였다.

그런데 왜 미국 정보당국은 장석윤을 'Snake'란 이름을 붙여 주었나?

한국전쟁이 확전되자 3일 내 내무부 치안국은 불순분자 '예비검속'령을 내리는 동시에 각 형무소에 수감 중인 '정치범'(=좌익 사상범)들을 처형하라는 명령을 발한다.

무수한 사람들이 예비검속되었고 등급이 메겨졌다. D,C,B,A순으로 'D'급은 '가장 중한 자' 'C'급은 '중한 자' 'A'급은 '애매모호한 자'. D급과 C급을 정치범과 동일 수준으로 간주하고 모두 처형해 버린다.

수원, 대전, 전주, 광주, 목포, 대구, 김천, 부산, 마산 등지에 수감되었던 정치범들은 한국전쟁 확전 1개월 이내에 거의 모두 처형되었다.

형무소에 수감되었던 정치범들의 처형 명단은 대구형무소 것만 유일무이하게 남아 있었다. 대구 형무소 소장은 다른 형무소 소장에 비해서 상당히 의식이 뚜렷한 사람으로 보인다.

대구 형무소에서 10년 만기를 채우고 출옥한 생존자 양 아무개 씨(안덕면 화순리 생존)는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형무소장은 항소하고 있는 우리들에게 소내 방송으로 '항소를 포기하라'고 권유했다. '항소'를 한 사람들은 지금 모두 중형을 받고 있다"고 증언했다. 여기서 중형이라 함은 '총살형'을 뜻한다.

대구 형무소의 처형자 명단(1,402명)에는 성명과 형명 및 형기 그리고 군(CIC 와 헌병)에 인계된 날짜가 기록되어 있다.

처형자 명단 중 국가보안법 위반자가 826명, 내란 및 반란죄 191명이었다. 거기에는 국보법 위반으로 1년형을 받은 자도 처형되었음을 볼 수가 있었다.

'예비검속'이라는 일제 때 치안유지법을 적용하여 국가보안법을 위반할 소지가 있다고 의심하는 국민들까지도 모두 총살 암매장하였다.

그만큼 국가보안법 위반은 목숨과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후에도 국가보안법은 국가의 안전을 도모하기 위해서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이승만의 개인 '정적'들을 제거하기 위해서 악용되었다. 특히 죽산 조봉암 선생의 처형은 그 악명을 떨쳤다.

1951년 한 미국 관리는 루즈벨트 전 대통령 미망인(당시 유엔 인권위원장)에게 편지를 보냈다. "이승만을 조속히 처리하지 않으면 미국은 싸움에서 이기고도 모든 것을 잃을 것이다. 이승만은 정적들을 구금하고 고문하고 그 이상의 것을 서슴치 않고 행하고 있다."

이 편지는 국무성 관료 모두에게 회람되었다. 그 후 9년이 지나서 4.19 학생혁명에 의해서 이승만 정권은 무너졌다. 미국은 이승만 정권이 무너지도록 수수방관했다.

국가보안법은 그 후 연속되는 군사독재에 의해서 근 30년 동안 민주화를 요구하는 저항세력을 탄압하고 구금 고문하고 치사케 하는 통치수단으로 또한 악용되었다.

역대 대선 때마다 상대방 후보를 색깔론으로 공격하기는 물론이고 대형 간첩단 사건을 조작 공포정치를 폈다. 바로 국가보안법은 이현령 비현령으로 악용된 사례가 너무도 많았다.

이제 국가보안법으로 사형선고를 받았던 분이 대통령도 되고 '간첩으로 암약'하던 분도 국회의원이 되는 진정한 자유 민주주의가 되었다. 이를 두고 국가보안법을 철밥통으로 여기고 출세하고 권세를 누리던 저들도 국회의원으로 또는 국가의 원로로 남아 행세를 한다.

'노무현 정권은 좌익이다'. '이제 나라가 망한다.' 이런 유언비어를 쏟아내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잡아가두질 않는다. 그래서 국가보안법은 이미 사문화된 것이다.

왜 그렇게 외쳐데는 이들이 국가보안법을 살리려고 기를 쓰는 지 이해가 안간다. 만약 국가보안법을 그대로 적용한다면 저들을 구속하고 중형에 처해야 마땅하리라.

저들을 그대로 방치해 두고 있다. 헷갈린다. 국가보안이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해야지 한 독재자의 권력을 보전하기 위해서 국민의 생명을 위협하거나 해쳐서는 안된다. 국가보안법을 여태까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한 것이 아니고 국민을 죽이는 일을 태반으로 자행하여왔다. 즉 국가보안법은 '민사'(=국민을 죽이는)법이었다.

세상이 뒤바뀐 탓인지, 사실상 국보법은 정권을 찬탈한 자들이 주무기였다. 현재 국보법 사용권(=적용)자인 대통령이 더 이상 사용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였음데도 불구하고 야당 중에서도 유독 한나라당 상당수 의원들이 그 지속적 사용을 주장하고 있으니 아이러니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국가보안법을 폐지하여 역사의 박물관에 쳐넣는 것은 바로 '민생'(=사람을 살리는 일)과 직결되어 있다.

요즘 국가보안법 완전철폐를 주장하며 생계도 아랑곳 하지 않고 투쟁하다 쓰러지는 분들도 있다. 바로 '민생'이 위협을 받고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

과거사 청산 특별법을 하루속히 제정하여 과거 공권력에 의해서 무참히 짓밟힌 인권의 실태를 만천하에 밝히고 이런 불행한 사태가 다시는 재발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범죄자들에 대한 용서는 그 뒤의 일이다. 저들은 지금도 회개하거나 참회하지 않고 적반하장으로 큰소리치는 사람들은 일벌백개로 다스려야 할 것이다. 반인륜적 범죄는 공소시효가 적용되지 않는다.

우리는 '잘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것'이 못지 않게 중요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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