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은 자의 소리]모슬포 김안신씨 가족의 참사

1948년 12월 22일 아버지(김용언, 한림국민학교 교감)가 토벌대에 의해서 학살 당한지 3일만에 김안신은 유복녀로 태어났다. 아버지의 뜻밖의 죽음을 맞이한 어머니(윤영석, 조천)는 실성하여 갖난아기에게 젖물리는 것조차도 잊어버리고 아기구덕을 방 한쪽으로 밀쳐버리고 누워버렸다.

동네 사람들이 삽을 들고 와서 아기가 죽은 줄로 알고 들고 나가려는데 거품을 품어내면서 다시 숨을 쉬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 날까지 모진 목숨을 부지해 왔다.

"우리 식구들(3남 2녀)은 한림면에 살고 있었다. 아버지가 죽고나서 둘째와 셋째 오빠 그리고 언니가 병이 났다. 어머니는 지서에 가서 제주 성내에까지 갈 수 있는 통행증을 해 줄 것은 청원했으나, 폭도 가족으로 낙인이 찍혀서 그것을 받아 낼 수가 없어서 꼼짝 없이 셋 모두의 목숨을 한꺼번에 잃고 말았다."

"우리 아버지는 아무런 죄가 없었다. 그러나 작은 외삼촌(윤창석)이 사상적인 의심을 받고 잠적한 상태였다. 외삼촌은 모슬포 농협에 근무하고 있었는데 서북청년단들과 많이 다투었다. 작은 외삼촌이 잠적해 버리자 외숙모를 끌어내어 대살하여 버렸다. 어머니 사촌 오빠는 당시 조천면장을 지냈다. 서북청년단의 횡포를 견디다 못해서 산으로 피신한 것이 그만 '폭도아닌 폭도'가 되어 버렸다. 외가 쪽은 모두 똑똑하였는데, 그게 탈이었다."

"작은 외삼촌이 잠적하여 버리자 토벌대들은 둘째 이모딸(강여숙)을 잡아다가 온갖 고문을 다하였다. 그들은 여자에게 능욕을 저질렀다. 고문에 못 이긴 이모딸은 외삼촌이 숨어 있는 곳을 불고 말았다. 당시 이모딸은 약혼한 상태였는데 파혼 당하고 지금까지 독신으로 살아오고 있다. 현재 센프란시스코에 살고 있다.

외삼촌은 체포되고 광주형무소(?)로 보내졌다. 거기에서 이북서 피난 나온 전도사 한 분을 만났다. 어린 자녀들(3녀 2남, 지자, 덕자, 혜자, 광호, 광준)은 그 전도사인 새 어머니의 손에 의해서 자라났다. 그 분은 자식을 낳지 못하였다. 동대문 시장에서 포목점도 하고 태능 근처에서 젖소 목장도 경영하면서 남편 옥바라지를 하는 억척이었다. 작은 외삼촌은 그분 덕으로 목숨을 부지하고 만기 출옥했다. 내가 여중 1학년때라고 생각된다. 처음으로 외삼촌을 만났던 기억이 난다."

"토벌대는 아버지가 근무하고 있는 한림국민학교에 들이닥쳤다. '여기 윤창석의 매부가 있느냐?' '내가 기다'하니 끌고 나가서 총살하고 말았다. 한림교회 목사님의 주선으로 큰 오빠(김경중, 당시 13세)가 아버지의 금이빨을 보고 시신을 인식하고 찾아내어 산에 가매장하였다가 시국이 안정된 다음에 정식으로 묘를 만들었다."

"작은 외삼촌은 약 8년전에 한많은 이세상을 하직하였다. 한 10년전에 내가 미국 이민오기 전에 서울에서 만났는데, 책상에 앉아서 원고를 집필하고 있었다. '진실'을 꼭 밝히고야 말겠다고 몇 번이고 나에게 일러주었다. 모슬포에 가면 강 아무개가 있었는데 그 자가 고자질을 해서 패가망신하게 만들고 모든 재산과 목숨까지 앗아갔다는 것이었다." 모슬포에서 강 아무개 하면 옛날 사람들은 모두 고개를 흔들 정도로 악명이 높았다.

"큰 오빠는 오현 중학교를 다니다가 광주로 가서 광주일고를 나왔고, 서울서 대학을 나온 후에는 제주도에 들어와서 제주여중 영어교사를 했다. 1973년 경 미국으로 이민왔다. 고교를 다니던 청소년기때는 방황을 많이 했었다고 오빠는 회상한다. 현재는 우즈베키스탄에 선교사로 나가서 활동하고 있다."

"제주에 살던 우리 모자는 67년도에 서울 오빠집으로 이사를 했다. 내가 신성여교 2학년을 다니다가 전학을 하였다."

"어머니도 미국으로 나와함께 이민을 와서 같이 지내다가 86세로 이 한 많은 세상을 하직했다."

"나는 새로운 세계에서 억척스럽게 일을 하면서 남편과 함께 1남 1녀(모두 변호사)를 키웠다. 이제야 제 정신을 차리고 행복하게 살아가려고 한다. 켈리포니아에서 살다가 자녀들이 모두 워싱턴 디씨에 일자리를 얻는 바람에 최근에 아이들과 함께 모두 이사를 왔다. 현재 북부 버지니아의 미국계 은행에서 일을 새로 시작했다."

"다 지나간 일 고랑 뭐헙니까마는 '진실'만은 밝혀야 헙쭈게...이 인생 누가 보상해 줄꺼우까?"

김안신은 필자의 고향 2년 후배(대정 초,중등학교)로 지난 달 초순에 워싱턴 디씨 근교의 한 한인식당에서 만났었다. 그때 얘기는 대충 들었지만, 당시는 새로운 집을 장만하여 이사하느라 정신없이 바쁜 시기였다. 이제 좀 살림살이가 정리가 되어 정신을 다시 차리고 전화로나마 인터뷰를 하고 마무리할 수가 있었다.

전화로 인터뷰하는 동안 두 볼로 흐르는 눈물을...그리고 억한 감정을 삼키느라 무진 애를 먹었다. 여기에 한토막 역사를 기록으로 남긴다. 영.

<이도영의 뉴욕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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