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병 어린이를 돕기 위한 "End & Start2004展"을 마치고

▲ 장래의 꿈이 피아노선생님인 하은이. 그 꿈이 이뤄지길….ⓒ김민수

'2004 나만의 특종'은 무엇일까 생각해보니 10대 뉴스로 정리를 하기에 아쉬울 정도로 많은 특종(?)들이 있었습니다. 나만의 특종을 만들 수 있었던 배경에는 '오마이뉴스'가 있었고, 제가 몸담고 살아가고 있는 제주의 인터넷신문 '제주의 소리'가 있었습니다.

한 해를 얼마 남겨두지 않는 시점에서 심장병어린이들을 돕기 위한 "End & Start2004展"을 준비했습니다. 제목의 의미는 모든 절망적인 상황들을 끝내고(End) 새로운 출발(Start)을 하는 2004년이 되기를 기원하는 제목이었습니다. 심장병으로 고생하고 있는 하은이와 승엽이를 위한 의미인 동시에 우리 사회의 절망적인 상황을 끝내고 새출발하자는 의미를 담은 행사였던 것이죠.

아름아름 알려지면서 언론사와 방송사의 인터뷰가 쇄도했고 급기야는 전국방송(KBS 6시 내고향)에 '사랑의 꿈을 만드는 종달리 사람들'이라는 제목으로 방영되었습니다. 방영이 되는 동안 한 컷 한 컷 사진을 담으면서 이것이 올해 나만의 특종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 하은이 어머니 이희성씨.ⓒ김민수

하은이의 엄마 이희성씨를 그저 수더분한 시골아줌마로만 알았습니다. 어린이집 교사로 일하면서 얼마 안 되는 월급을 매달 하은이의 심장병수술을 위해서 적금을 든다는 말에 참 힘들겠다는 생각을 했죠. 대략 5년에 한 번 꼴로 인공심장의 배터리를 교체해 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방송을 보면서 알지 못했던 그 속내까지도 알게 되었답니다.
이미 하은이를 낳기 전에 뱃속의 아기가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었던 것입니다. "그래도 생명인데 어떻게 그를 죽일 수 있겠어요. 낳기로 했습니다." 그 한 마디는 제 마음에 비수처럼 다가왔습니다.

"인공심장에 들어있는 배터리는 많이 뛰면 뛸수록 빨리 달거든요. 그러면 건전지교체를 위해서 수술도 더 빨리 해야 하죠. 늘 천천히, 천천히 했어요. 어느 날 하은이가 엄마, 나 뛰어 놀고싶은데 괜찮아요? 하더라구요."

그래도 아이가 밝게 웃으며 자라는 모습을 보면 행복하다고 하는 이희성씨를 보면서 참으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이런 마음으로 한 생명 한 생명을 바라본다면 이 사회가 어찌 삭막해 질 수 있겠는가 생각하니 오히려 그들을 위한 행사가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한 행사였던 것입니다.

   

작게 시작한 행사가 점점 커지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사진전과 음악회, 올해 내 이름을 달고 나왔던 책의 도서사인회 등을 통해서 나온 수익금을 전달할 예정이었습니다. 내심 불안했습니다. 액자와 도서를 전부 팔아도 행사비도 안나올지 모른다는 생각도 있고, 이러다가 생색만 내고 도움도 못 주면 어쩌나 하는 생각때문이었죠.

오마이뉴스와 제주의 소리, 라디오방송 인터뷰를 통해서 이 행사를 알게된 분들이 하나 둘 찬조출연을 요청했습니다. 하나씩 받아들이다 보니 점점 풍성해 졌습니다. 결국 사진전, 종이공예, 압화작품전시, 도서사인회, 은공예까지 다양하게 전시를 할 수 있었고, 멀리는 뉴욕에서부터 삼천포에서도 소식을 듣고 도서와 엽서를 가지고 오신 분도 있었습니다.

정말 따스한 세상이구나 느꼈습니다.
행사 이틀 전부터 전시회를 준비하느라 참으로 분주하게 지냈습니다. 이마에서 땀이 흐를 때마다 '그래, 땀을 흘리려면 이런 땀을 흘려야지' 스스로 독려를 했습니다.

   

드디어 개막을 하고 행사의 하이라이트인 음악회가 시작되었습니다. 하은이 뿐만 아니라 아이들이 어찌나 즐거워하는지 그것을 보는 것 자체가 큰 선물이었습니다. 어린아이부터 어르신들까지 하나가 되어 박수를 쳐주고, 하은이와 승엽이를 위해 '당신은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을 부를 때에는 쑥스러워하는 그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습니다. '그래, 너희들은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아이들이야.'

이렇게 기쁜 성탄선물이 어디에 있을까 생각하니 감사가 절로 났습니다.
그동안 준비하는 과정에서 힘들었던 일, 행사를 앞두고 거의 뜬눈으로 지샌 밤들이 봄햇살에 눈 녹듯이 내 마음을 따스하게 했습니다. 선한 일을 하면 가장 행복한 사람은 바로 당사자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순간입니다.

▲ 새싹의 힘.ⓒ김민수

이번 전시회에 출품했던 작품 중에서 가장 사랑을 많이 받았던 '새싹의 힘'이라는 작품입니다. 그 언젠가 이 사진을 가지고 글을 썻을 때에도 반응이 좋았고, 1월경에는 KBS TV동화 행복한 세상에도 방영될 예정입니다. 나의 작은 텃밭에서 어느 날 아침에 찍은 장면인데 그들을 보는 순간 얼마나 감동을 받았는지 모릅니다.
새싹 같은 아이들, 그 아이들이 넉넉하게 절망적인 상황들을 이겨나가길 바라는 작품이었는데 오신 분들이 너도나도 구입을 하고 싶어하셨습니다. 경매를 부칠 수도 없고 해서 양해를 구해 원하시는 모든 분들 모두에게 액자를 제작해서 보내드리기로 했습니다.

사실 제가 가장 고생을 하면서 찍었던 사진, 일순위에 두었던 사진은 뒤로 밀렸고, 아내가 일순위로 찍은 사진이 히트를 쳤습니다. 그래도 기분이 좋습니다. 액자 50점이 거반 팔렸으니까요.

   

웃는 모습이 어색해서 사진 찍히는 것을 무척 싫어하는데 화면에 나오는 모습을 담았는데도 어색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방송이 끝나자마자 전화벨이 울리는데 대부분 지인들이었고, 어느 틈에 현수막에 붙은 전화번호를 적어두셨다가 전화를 주신 분들도 계셨습니다. 2004년을 보내면서 끝자락에 내 삶에 잊혀지지 않을 특종이 생긴 셈입니다.

어머님이 전화를 하셨습니다.
"야야, 얼굴 많이 탔다. 수고 많았다. 근데 우리 손주들은 왜 안나왔냐? 손주들이 더 보고 싶은데."
"손주들이 주인공이 아니었으니까요."
"그래도 섭섭하다. 얼굴 한번 볼 줄 알았는데."
"제가 비디오로 찍어서 보내드릴께요."

어머님도 작은농어촌마을에 아들을 보내고 늘 마음이 편하지 않다고 하시더니만 이제 마음 푹 놓아도 되겠다며 활짝 웃으십니다. 착한 일하고 효도까지 했으니 이만하면 2004 나만의 특종으로 부족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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