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영어교육도시 예정지 구억리①] 결혼식 전 3일간 마을 잔치 벌여

 

▲ 구억리 구억리 마을회관 인근의 모습이다.
ⓒ 장태욱
지난해 9월 국무조정실은 7800여억원을 들여 서귀포시 대정읍 일대에 130만평 규모의 영어교육도시를 건설할 계획이며, 이 제주영어교육도시 내에는 초등학교 7개, 중학교 4개교, 국제고 1개교를 개설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발표가 나간 후 전교조와 민주노총은 학비가 연간 1000만원이 넘는 학교를 제주에 설립하게 되면, 결국 교육 양극화 문제만 부채질하게 될 것이라며 철회를 요구했다. 이에 반해 대정읍 일대 주민들은 영어교육도시로 인해 낙후된 대정지역이 한 단계 발전하게 될 것이라며 기대감을 나타냈다.

▲ 영어교육도시 광고판 구억리로 들어가는 길목에 세워져 있었다.
ⓒ 장태욱
서귀포시 대정읍 지역에서 영어교유도시 예정지에 해당하는 마을은 구억리· 보성리· 신평리 등인데, 그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마을은 구억리다. 억새꽃이 넘실거리는 서부관광도로를 따라 구억리를 찾았다.

구억리(九億里)는 지금부터 250여년 전 당시 안성리에 있던 '구석밭'이라는 곳에 조(趙)·문(文)·양(梁)·고(高)씨 등이 와서 살기 시작하면서 형성된 마을이다. '구석밭'이라는 이름은 그 밭이 구각형 모양으로 생긴 데서 유래한 것이다.

척박한 환경에 4·3까지 겹쳐 험난했던 세월

구억리 일대는 토질이 박해서 밭농사가 잘 안 되는 곳이다. 처음 이곳에 정착한 사람들은 옹기를 만들어 다른 마을에 가서 곡식과 교환하며 삶을 지탱했다. 이로 인해 이 마을은 조선후기 제주도 요업(窯業)의 중심지가 되었는데, 지금도 마을에는 그 흔적들이 남아있다.
1915년에 이르자 마을은 안성리(安城里)에서 분리됐고, 마을 이름은 구석밭을 한자음으로 표기한 구억리(九億里)라 하였다.

▲ 도요지 안내판 구억리는 과거에 도자기를 주로 생산했던 마을이다. 지금도 마을에 당시의 흔적이 남아 있다.
ⓒ 장태욱
그런데 안성리에서 분촌(分寸)된 지 30여년 만에 4·3이 찾아왔다. 당시 해안에서 5km이상 떨어진 산간 마을에 소개령이 내려졌다. 구억리 주민들은 임시 먹을 식량만 들고, 인근 인성·안성·보성 마을과 모슬포 등지로 피난을 가야했다. 주민들이 마을을 떠나온 후 집들은 불타 없어지고 가축과 가재도구는 모두 약탈당했다. 마을이 다시 복구될 때까지 피난처에서 토벌대와 경찰의 폭력에 시달렸는데, 주민들은 당시 고통이 말로 형언할 수 없을 정도였다고 말한다.

4·3사건이 진정되자 주민들은 4·3이전에 살던 구석밭보다 남쪽에 있는 안성리 근방에 성을 쌓고 마을을 재건했다. 그로인해 현재 구억리 주민들의 거주지는 지적도상으로는 구억리 일부와 보성리(保城里) 일부, 안성리(安城里) 일부에 해당한다. 지금 마을에는 200가구에 500여명이 살고 있다.

▲ 돼지 삶기 큰 통에서 삶은 돼지를 꺼내는 모습니다. 돼지를 삶는 일은 결혼식 이틀 전에 하는 일이다.
ⓒ 장태욱
혼례 잔치 첫날 표정, 가정의 일이 곧 마을의 일

구억리에 도착한 후, 강길남 이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노인회관에 있으니 거기로 오세요."

노인회관에 이르자 마당에 천막을 치고 주민들이 윷놀이를 하고 있고, 돼지를 삶는 솥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고 있다. 마침 마을에 무슨 잔치가 열린 모양이다.

"오늘이 무슨 날입니까?"
"동네 총각이 모레 결혼식입니다."

▲ 잔치 준비하는 날 내가 처음 방문했들 때 노인회관에서 주민들이 모여 잔치를 준비하고 있었다.
결혼식 이틀 전 풍경이다.
ⓒ 장태욱
제주도에선 결혼식이 열리기 이틀 전에 친척들이 모여서 돼지를 잡고 잔치 준비를 한다. 그리고 피로연은 결혼식 전날에 치른다. 제주에서는 피로연이라는 말을 잘 쓰지 않는다. 결혼식 전날을 '가문잔칫날'이라고 한다.

혼례 잔치를 3일간 치르는 것이 지금은 드믄 일이 되었다. 모두들 삶에 바쁘고 친척이나 이웃 간 유대감이 옛날 같지 않은 세상이라, 주변에 3일간 일을 거들어달라고 부탁하는 것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젠 다른 지역의 혼례 잔치처럼 예식과 피로연을 하루 만에 치르는 경우가 보통이다.

그런데 이 마을은 그렇지 않다고 한다. 혼례 잔치를 3일에 걸쳐서 치르는 것은 보통이고, 그 잔치에 모든 주민들이 참여해서 일손을 거둔다는 것이다. 첫날부터 마을 주민들이 잔치에 참여해서 밥을 먹는 것은 이 마을에서 당연한 일이다. 잔치에 참여하는 인원이 많다보니 개인 집은 비좁아서, 주민들은 누구나 노인회관에서 잔치를 연다

"우리 마을에 자랑거리가 있다면, 그건 주민들 간 유대감이 강하고 화합이 잘 된다는 겁니다. 내일 한 번 와 보세요. 이 노인회관이 왁자지껄할 겁니다."

강길남 이장의 자랑을 듣고 나니 호기심이 발동하여 이튿날 다시 노인회관을 찾았다. 가문잔치가 열리는 날이다.

▲ 윷놀이 제주에서는 윷놀이를 '넉동뱅이'라고 한다. 윷을 던질 때는 맨손으로 던지는 것이 아니라,
사기 술잔에 윷을 넣고 던진다. 윷놀이 장면은 잔치에 빠질 수 없는 풍경이다.
ⓒ 장태욱
잔치 둘째 날, 마을 자랑 끝이 없어

신랑(김공남)과 신부(오지영)의 사진과 함께 이들의 이름이 적힌 작은 현수막이 노인회관 입구에 걸려있었다. 전날에는 없던 것이다. 신랑이 마당에서 축하객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었다.

노인회관 마당에 설치된 천막에서는 전날보다 더 많은 주민들이 윷놀이를 하고 있었다. 회관 별관에는 아주머니들이 여러 팀으로 나뉘어져 일을 분담하고 있었다. 밥, 국, 고기, 생선회, 빙떡, 밑반찬 등이 팀별로 따로 준비되고 있었고 주방 한 모퉁이에서 아주머니 대여섯 명이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음식을 준비하는 인원만도 30여명이 될 듯했다. 피로연에 초대된 손님들은 회관 마루에서 식사를 하고 있었다. 별관에서 준비된 음식들을 젊은 아가씨들이 회관 마루로 부지런히 나르고 있었다.

▲ 음식 차리기 동네 청년이 장가가는 날 주민들이 모여 음식을 차리는 모습이다. 결혼식 전날의 풍경이다.
ⓒ 장태욱
회관마루 입구에서 커피 심부름을 도맡고 있던 김복실(48)씨를 만났다. 김복실씨는 구억리로 시집을 온 후 줄 곳 이 마을에 살았고, 이전에 부녀회장을 맡아서 마을일을 돌보기도 했다.

"마을 인심이 너무 좋은 것 같습니다. 이런 마을에 정을 붙이고 살면, 떠나기 어려울 것 같은데요."

내가 마을로 부터 받은 인상을 말하자, 김복실씨는 기다렸다는 듯이 답했다.

"그럼요. 인심이 좋아서 매일 웃다보면 늙지도 않아요. 누가 나를 손자를 본 할머니라 생각하겠어요?"

▲ 김복실씨 전임 부녀회장인데, 잔치에 커피를 담당하고 있었다. 마을 자랑이 끝이 없었다.
ⓒ 장태욱
김복실씨의 대답에 주변에 있던 아주머니들이 폭소를 터트렸다. 김복실씨가 어려서 시집을 오는 바람에 남들보다 손자를 일찍 보게 되었다는 얘기를 옆에 있던 아주머니가 전해줬다. 김복실씨의 마을 자랑이 이어졌다.

"9억이에요. 8억도 아니고 9억. 사람들이 부지런하고 인심이 좋다보니 모두 부자에요. 자고로 마을 이름이 좋아야한다니까요."

김복실씨의 자랑이 약간 과장된 면은 있지만 이 마을 주민들이 부지런한 것은 다른 사람들의 증언으로도 확인할 수 있었다. 마을 주민들은 귤, 키위, 마늘 등 다양한 작물을 재배할 뿐만 아니라, 양돈과 한우를 키우는 집도 꽤 많았다. 마을 200 농가가 저마다 소득원을 확보하기 위해 다양한 분야에 종사하는 것이다. 이처럼 부지런한 주민들의 기질은 과거 척박했던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길러진 자산일 것이다.

▲ 손님들 가문잔칫날 축하객들이 음식들 대접받고 있다.
ⓒ 장태욱
여성을 귀하게 여겼던 전통 녹아 있는 결혼 예식

신랑인 공남씨가 약간 한가한 틈을 타서 얘기를 나눴다.

"결혼식은 어디에서 치를 건가요?"
"강정마을에 있는 00콘도에서 할 겁니다."

"여기에서 꽤 먼데 왜 거기로 예식장을 선택했나요?"
"신부 집이 그 근처에 있는 호근동입니다. 신부의 집이 가까운 쪽으로 선택했습니다."

▲ 신랑 김공남씨 결혼식 전 날 한복을 입고 축하객들을 맞고 있다.
ⓒ 장태욱
신랑의 대답에서 신부 측을 배려하는 제주도 전통을 엿볼 수 있다.

"내일 아침 몇 시에 출발할 건가요?"
"여기서 새벽 6시경 출발할 겁니다. 신부 집에 가서 인사를 드리고 나서 예식은 11시에 치를 겁니다."

제주도에선 신랑, 신랑의 친구들, 신랑 가족대표가 결혼식 당일 일찍 함을 들고 신부 집으로 인사를 간다. 거기서 아침 식사를 대접받은 신랑 측 사람들은 신부 가족들과 하객들을 차로 모셔 예식장으로 출발한다. 11시로 예정된 예식 시간을 맞추기 위해서는 이른 새벽부터 서둘러야한다는 것이다.

*덧붙이는 말 : 제주에서는 결혼식을 마치면 신부 측 친족들은 신랑의 집으로 초대된다. 다른 지역에서는 신부 집에서 준비한 음식으로 신랑의 부모에게 대접하지만, 제주도에서는 정 반대다. 신부는 물론이고, 신부의 가까운 친족들이 신랑 집으로 초대되어 술과 음식을 대접받는다. 애쓰게 키운 딸을 보내 주셔서 고맙다는 취지인데, 역시 여성을 귀하게 여겼던 전통이 예식에 반영되어 있는 것이다.

결혼식을 치른 날 신부와 신부의 가까운 친족들이 다시 이 마을회관으로 초대될 것이다. 그러면 마을 주민들이 새롭게 이 마을 주민이 될 신부를 맞아 음식을 대접한 후에야 3일간의 잔치를 정리하는 것이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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