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미의 제주여행(7)] 신창해안도로를 가다

▲ ⓒ양영태
어느덧 2004년 한해도 가고 있다.
사람들은 저마다 새해가 되면 새로운 계획을 세우고 실천하기를 희망한다.
특히 1월1일이 되면 해맞이를 하며 한 해를 시작하려는 사람들로 해맞이 행사장이 가득차는 요즘, 새로운 한 해를 새로운 다짐으로 시작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지나간 한 해를 돌아보며 못다한 계획과 다짐을 반성하는 일도 중요하리라.

저물어 가는 한해를 돌아보는 조용한 시간을 보내려거든 바다로 가라.
한 해를 달려 온 고단한 몸둥아리를 태평양의 검푸른 품 속에서 잠시 쉬었다가
내일의 희망으로 가득 채우고 다시 올라오려는 태양이 떠나가는 곳...
그 곳을 찾아 일주도로를 달린다.

일몰은 순식간에 사라진다. 단 몇분도 우리에게 기다려주지 않는다.
또한 날씨의 영향으로 인해 만족할만한 풍경을 보여주지 않을 때가 많다.
또한, 겨울의 일몰을 보기 위해서는 많은 준비도 따른다.
추운 바닷바람을 막아줄 따뜻한 옷과 추위를 녹여줄 따끈한 물 등등.

▲ ⓒ양영태
제주시에서 일주도로를 따라 서쪽으로 가면 북제주군에서 가장 서쪽에는 한경면이 있고, 그 곳 두모리 마을을 지나면 면사무소가 있는 신창리에 이른다.
두모리에 속하였던 신창리는 1910년 부터 두모 서남쪽 일부와 '숭굴왓' 일대를 두모리에서 분리하여 新昌里라 하였다.
한자 뜻 그대로 '새로 창성한 마을'의 뜻이다. 신창리 바닷가를 '솔개(松浦)' 또는 '솔래'라고 부른다.
신창리 마을 끝부분의 신창교회 앞에서 오른쪽으로 꺾으면 신창-용수간 해안도로가 시작된다.
다른 곳의 해안도로보다 거리는 짧으나, 그 끝에서는 일몰 풍경이 아름다워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차귀도를 볼 수 있다.

▲ ⓒ양영태
해안도로가 시작되는 곳에는 어김없이 해안 매립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아마 배가 너무 많아서 댈 곳이 없는 관계로 항만을 더 넓히고 방파제를 만들려고 매립하는 것 같다.

▲ ⓒ양영태

바다를 매립하여 새로 만들어 놓은 해안도로의 한쪽에는 "북제주군의 희귀 동·식물 서식지" 팻말이 박혀 있다.

환경부 보호야생식물 39번인 갯대추가 서식하는 곳이다.

그 팻말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환경 오염과 생태계 파괴로 인해 점차 감소하고 있는 생물종 보전을 위해 많은 관심과 애정이 필요합니다"

지금은 겨울이라 잎이 다 떨어져 가지만 남아 있지만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지켜 볼 필요가 있다.

▲ ⓒ양영태
바다 쪽으로 눈을 돌리면 해안가 용암빌레에 하얀 등대가 하나 서 있다.
'마리여'라는 작은 섬에 등대를 세운 것이다.
이 곳 신창리 해안의 북쪽 바다에는 해저유적이 발견된 곳이다.
이 유적은 해녀들이 발견한 금사, 금팔찌, 금뒤꽂이 등 금제 장신구류와 도자기편을 신고하면서 알져지게 되었다.
1997년 출토된 이 곳의 도자기들은 신안 해저에서 인양된 도자기보다 앞서며, 남송(南宋)때 중국의 절강성이나 복건성지역에서 일본구주나 제주도를 기착지로 하여 해상통행(海上通行)하던 선박이 도중에 침몰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등대 너머 멀리 지나가는 배가 있는 자리 쯤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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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한 복판에 홀로 서 있는 등대를 벗삼아 낚시꾼이 낚시대를 드리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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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 틈에 난 조그만 물길을 따라 돌담을 쌓아 놓은 조그만 포구에는 배 한척이 메어져 있고, 그 너머에는 제주도의 뗏목 배인 터우 한척이 바위위에 올려져 있다.
얼마나 포구가 어려웠으면 '빌레' 틈에 포구를 마련하였을까?
화산섬인 제주도 해안은 용암으로 덮혀 있는 암초가 많아 깊이가 얕고, 해안선이 단조로워 후미진 곳이 없어 썰물과 밀물에 관계없이 배를 붙일만한 포구가 없었다.
입지조건의 조악한 상황을 그대로 보여주는 광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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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수리(龍水里)의 옛 이름은 '지삿개'와 '벗개'다. 그 뜻은 확실하지 않고 19세기 후반부터 용수리로 바뀌었다.
용수리는 '용물'의 한자표기로 용당리의 '용못(龍淵)'에서 유래한 이름이고, 1953년 용당리가 분리되었다.
용수리의 지삿개마을에는 포구가 있다. '펄낭'이라는 곳이다.
옛날부터 지삿개의 쉐머리코지와 논깍원 사이의 ∩모양으로 들어간 곳에 포구를 만들었다.
지금은 일부가 매립되어 도로가 생기고 다시 방파제를 쌓아 어항이 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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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포구에는 사철나무, 후박나무, 동백나무, 돈나무 등 난대식물이 우거져 있는 해안절벽 언덕이 있고, 그 곳에는 절부암이 차귀도를 바라보며 고즈녁이 앉아 있다.
절부암은 제주도지방기념물 제9호 지정되어 있는 곳으로 다음과 같이 이야기가 전해지는 곳이다.

▲ ⓒ양영태
옛날 이 용수리에 강씨 총각과 고씨 처녀가 살고 있었다.
강씨 총각도 조실부모하여 남의 집에서 자라고, 고씨 처녀도 역시 조실부모하여 남의 집에서 심부름하며 자라났다.
총각, 처녀가 다 착실하여 동네 사람들의 칭찬을 받았다.
나이가 15, 6세 되어 가니 강씨 총각을 데려 사는 주인이나 고씨 처녀를 데려 사는 주인이나 앞길을 걱정하게 되었다.
어느 날 두 주인은, 이 처녀 총각이 다 같은 처지요 또한 서로 얌전하니 부부를 맺어 주자는 의논을 했다.
드디어 처녀 총각은 부부를 맺게 되었다.
혼인 잔치를 지낸 지 일주일도 못 된 어느 날, 남편인 강씨는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갔다.
가난한 새살림이라 부지런히 일을 해서 벌어들이지 않으면 안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바다로 나간 남편은 날이 저물어도 돌아오지 않았다.
불행히 풍랑을 만나 불귀의 객이 되고 만 것이다.
아내는 거의 미친 사람처럼 바닷가를 돌며 시체나마 떠오르기를 하늘에 빌었다.
석 달이 되어 가도 시체는 돌아 오지 않았다.
아내는 체념하고 남편의 뒤를 따르기로 결심하여 지새포 포구 곁, 절벽 위의 나무에 목을 매고 말았다.
그날 저녁 이상하게도 남편의 시체는 바로 그 절벽 밑으로 떠올라왔다.
동네 사람들은 애처로운 이 광경을 보고 당산봉 양지바른 곳에 두 시체를 안장하여 주었다.
그때 신제우라는 사람이 이 소식을 듣고 '내가 벼슬을 한다면 이런 갸륵한 영혼에게 열녀비라도 세워 주겠는데.......' 하고 중얼 거렸다.
그 후 신제우는 서울에 과거를 보러 갔는데 낙방이 되고 말았다.
고향으로 돌아와 실의(失意)에 차고 있을 때, 어느 날 꿈에 이 고씨가 나타나 다시 과거를 보라고 격려하는 것이었다.
신제우는 고씨의 묘에 참배하고 다시 과거를 보러 갔더니 이번엔 급제하였다.
신제우는 돌아와 고산리와 용수리에 각각 엽전 서른 냥씩을 나누어 주어 매년 3월 15일에 열녀제를 지내도록 하고 열녀비를 세워 주었다.
그래서 고씨가 목매어 죽은 절벽을 절부암(節婦岩)이라 부르게 되고, 그 후 매년 3월 15일에는 그의 묘에서 열녀제를 지내게 되었다 한다.
--자료출처-- '제주도 전설' 현용준 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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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절부암 절벽에는 희귀수목인 박달목서가 자라고 있다.
박달목서(Osmanthus insularis Koidz)는 물푸레나무과에 속하는 큰키나무로 1928년 거문도에서 처음 발견되었다.
10월-11월에 백색의 꽃이 피는 이 나무는 암수 딴그루로 오랫동안 수나무 3그루만 남아 멸종될 위기에 있어, 임업연구원과 제주대학교 김문홍교수가 거문도산 암나무를 증식시켜 1995년 이 곳에 옮겨 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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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수리 포구에는 포구의 좌(남쪽), 우(북쪽)에 두 개의 탑이 있다
바다인 서쪽이 허(虛)하여 남쪽과 북쪽에 1기씩 쌓고 탑 위에는 긴 돌을 세워 놓았다.
돌은 새 부리 모양과 흡사한 것들인데 모두 서쪽을 향하고 있다.
북쪽에 위치한 탑은 '새원'이라는 원이 있는 곳에 있어서 '새원탑'이라고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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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에 위치한 탑은 속칭 '화성물탑'이라고 하는데 탑의 남쪽 지경에 '화성물'이 있는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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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근처에는 '삼백초'의 자생지도 있다.
삼백초(Saururus chinensis Baill)는 삼백초과의 다년초로 1998년 환경부가 보호 야생식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현재 해안가 주변 습지지역에 부분적으로 분포하고 있으나 특별한 보호대책이 없이 자연상태로 보호되고 있다.

▲ ⓒ양영태
차귀도는 제주도에 있는 무인도 중 가장 큰 섬이라고 한다.
고산리 자구내포구 앞에 오롯이 들어 앉아 있는 이 섬은, 본섬인 죽도(대섬)와 지실이섬, 와도(누운섬) 등 세개의 큰 섬과 작은 부속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전설에 의하면, 호종단이 고산 앞바다로 돌아가던 중, 그의 배가 이 섬 앞에 이르렀을 때 매 한마리가 날아와서 돛대에 앉더니 별안간 돌풍을 일으켜 배를 침몰시켰다.
한라산 수호신이 매로 변하여 지맥을 끊고 가는 호종단을 죽여버렸다는 것이다.
그래서 호종단이 돌아가는 것을 막았다 하여 대섬과 지실이섬을 합하여 차귀도(遮歸島)란 이름이 생겼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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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뜩 찌푸린 구름 사이로 태양이 지고 있다.
한 해를 달려 온 고단한 몸둥아리를
태평양의 검푸른 품 속에서 잠시 쉬었다가
내일의 희망으로 가득 채우고
다시 올라오려는 태양이
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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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영태님은 '오름오름회' 총무, 'KUSA동우회 오름기행대' 회원입니다. 이 글은 양영태님의 개인 홈페이지  '오름나들이(ormstory.com) 에도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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