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동성의 관점에서 조망한 제주해군기지 입지여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적군보다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는 기동성(機動性)은 군사전략의 기본전제로 유지되고 있다. 수적 절대 우위에도 불구하고 이집트 왕정과 페르시아 제국의 군대는 팔랑크스(phalanx)로 명명된 알렉산더(Alexander)의 보병대오가 발휘하는 파괴력을 감당할 수 없었다. 이처럼 방패와 창으로 무장한 마케도니아의 보병이 절대무적의 군대로 승승장구 할 수 있었던 이면에는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기마부대가 적군의 대오를 사분오열시켰기에 가능하였던 것이다. 알렉산더 대왕 사후 알프스를 횡단하여 이탈리아로 진격한 한니발(Hannibal)의 코끼리 부대 이동속도는 기병보다 뒤처지지만 심리적으로 위압된 로마의 군대를 충분히 제압할 수 있었다.
 
알렉산더의 기마부대 운영과 한니발의 코끼리 전술로부터 교훈을 얻은 로마군대의 선택은 전차부대의 운영이다. 이처럼 기동성을 강조한 로마제국 군대의 일면은 아카데미 11개 부문을 수상한 고전영화 벤허(Ben-Hur, 1959)의 전차경주 장면으로부터 확인해 볼 수 있다. 13세기 몽고의 군대가 오늘날 헝가리 영토까지 진격하여 전 유럽을 공포의 도가니로 휩쓸리게 한 동인은 당대 유럽산 말(馬)과 비교하면 최소 2배 이상의 속도로 이동 가능한 몽고 조랑말의 기동성이다. 이후 진보된 과학을 적용한 군사무기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군사적 요충지 선점을 위한 기동전략은 현대전에서도 반복되고 있다. 현대전의 기동성이란 물리적인 이동속도의 비교우위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예기치 못한 적의 허점을 찌른 인천상륙작전의 사례처럼 심리적인 이동속도에 주안점을 둔다.
 
두 차례의 걸프전쟁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운 스텔스기의 존재는 심리적 이동속도의 중요성을 입증한 것이다. 적의 레이더망에 감지되지 않은 채 적진 한복판에 위치한 목표물의 정밀 타격이 가능한 스텔스 폭격기의 물리적 이동속도는 미군의 주력전투기인 F-15보다 뒤처지지만 이라크군뿐만 아니라 민간인에게도 전후방 안전지대가 없다는 불안의 인식은 심리적 이동속도의 효율성을 반증하고 있다. 2005년 실전 배치된 미군의 F-22랩터의 최대순항속도인 마하 2.5는 경쟁기종과 유사하거나 또는 뒤처짐에도 불구하고 역사상 최강의 전투기로 평가받는 근거는 장착된 스텔스기능에 있다. 적기의 레이더망으로부터 감지되지 않는 원거리에서 적기를 감지하여 미사일 발사가 가능한 F-22기의 등장으로 물리적 이동속도의 경쟁 패러다임은 의미를 잃게 되었다.
 
현대전에 있어서 기동성의 의미를 종합해 보면 아군의 존재는 은닉한 채 적군의 존재를 탐지할 수 있는 위치를 선점하는 것이다. 독립작전수행이 가능한 F-22기를 제외하고 현재 개발된 전투기종의 기동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안은 외부로부터의 지원여부 및 성능에 좌우된다. 즉, 원거리에서 적기의 동태를 관측할 수 있는 공중조기경보기(AWACS)라든지 해상에서 공중목표물의 탐지가 가능한 이지스함(aegis vessel)으로부터의 지원은 전투기의 기동성을 증가시킬 수 있다. 유사시 즉각 출격이 가능하고 작전반경범위의 위치변경이 용이한 공중조기경보기와는 달리 이동속도가 현저히 느린 이지스함의 효율성은 작전반경범위로부터의 근접성에 좌우된다. 즉, 작전반경범위로 설정된 해상과 최대한 근접된 장소에 이지스함의 모항(母港)이 입지해야 한다는 점이다.
 
한국형 구축함(KDX-Ⅲ) 사업은 각각 서해와 동해, 그리고 제주도의 남방해역을 작전반경범위로 설정하여 총 3대의 이지스함 건조를 추진하는 것이다. 서해상에 배치될 이지스함의 모항으로 유력한 평택항 또는 목포항에서 출항하면 곧바로 작전반경범위로 근접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동해항도 동일한 여건을 구비하고 있다. 그러나 기존 해군기지인 목포항이나 진해항, 또는 부산항에서 출항하여 작전반경범위가 제주도 남방해역으로 설정된 해상으로의 진출에 소요되는 시간을 감안하면 기존 해군기지는 모항으로서의 입지여건을 충족하지 못하고 있다. 예를 들어 목포항에서 출항한 직후 이지스 시스템을 운영할 수 있지만 제주 상공의 북적이는 민간항공기로 인해 항공감시의 효율성이 저하될 수밖에 없다. 결국 민간 비행항로의 간섭으로부터 벗어난 지역에 도달해야 이지스 시스템이 제 기능을 발휘하지만 목포항에서 마라도 해역까지의 이동에 최소 3시간 이상 소요된다면 유사시 시의적절한 대응이 불가능해진다.
 
종합해 보면 남방해역이 작전반경범위로 설정된 이지스함 모항의 입지로 제주도 이외의 지역은 유사시 이동소요시간의 제약으로 인해 대안으로 고려될 수 없다. 이처럼 유일무이한 입지여건이 구비된 제주도의 관점에서 국가안보의 논리를 감안하면 이지스함 모항 건설을 수용해야 하지만 동시에 수용의 부대조건을 요구할 수 있다. 즉, 대안입지의 부재를 협상카드로 활용한다면 평화의 섬 이미지를 훼손하는 군사기지 건설에 따른 반대급부를 충분히 획득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반대의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칼자루를 쥐어야 할 제주도가 무심코 건네 준 칼이 제주도를 겨냥하고 있는 판국이 전개되면서 해군기지 입지예정지로 결정된 지역사회뿐만 아니라 제주사회 전반을 아우르는 파급효과를 기대할 수 없게 되었다. 도세가 열악한 제주도로서는 변방의 섬이나 1%의 섬, 또는 제주 홀대론의 변명논리에 안주할 것이 아니라 주어진 기회를 협상카드로 활용하는 적극적 대응이 필요하다.
 
해군기지 예정지로 결정된 지역사회는 찬성과 반대로 양분된 집단 간 갈등이 악화되고 있지만 제주도의 중재기능은 중립성을 상실한 것으로 보인다. 제주도정으로서는 분열된 공동체를 통합한 후 해군기지 건설주체를 대상으로 부정적 영향의 저감대책과 긍정적 파급효과의 극대화 방안을 요구해야 하지만 오히려 찬성주민과 해군의 입장만 옹호한 채 반대주민을 격리하는 관점을 취하고 있다. 해안매립의 방식으로 어업권을 제외한 일반토지의 수용이 최소화된 해군기지 건설의 특성으로 인해 보상 수혜대상이 일부주민으로 제한된 점을 감안하면 보상업무절차의 개시는 대다수 반대주민을 궁지로 밀어 넣는 것과 다름없다. 결국 제주도정이 소수 찬성주민의 입장만 대변하여 해군기지 건설을 강행한다면 반대주민으로 하여금 극한의 대결을 선택토록 강요하는 것과 다름없다.
 
해군기지 건설의 부당성을 방방곡곡 홍보하고자 하는 반대주민으로서는 2009년 6월 제주에서 개최될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기회일 것이다. 미국이나 일본, 유럽 국가처럼 경제적 및 군사적 관점에서 슈퍼파워 국가로 분류되지도 않고 제주 외국관광시장의 주요국가도 아니지만 말레이시아와 태국, 싱가포르 등의 동남아시아 국가연합 회원국은 국제자유도시를 지향하는 제주로서는 벤치마킹의 대상이자 잠재적인 관광시장으로 접근해야 한다. 해당 국가에 소속된 언론사뿐만 아니라 세계 주요 매체에서도 취재경쟁이 예상되는 아세안 특별정상회의를 겨냥한 해군기지 반대주민의 대규모 시위는 제주의 이미지에 악영향을 주게 될 것이다. 경호공간의 확보로 시위대와의 직접 접촉은 차단되겠지만 함성과 주변상황으로부터 시위대의 존재는 충분히 인식될 수 있다. 결국 평화의 섬이자 세계적 관광지를 지향하는 제주에 이지스함이 정박할 해군기지 건설을 만천하에 공개한다면 제주로서는 결코 득이 될 수 없다.
 
시위대의 규모는 반대주민뿐만 아니라 군사기지 자체를 반대하는 시민단체 활동가, 그리고 회원국인 미얀마의 민주주의를 염원하는 전 세계 활동가마저 합류한다면 예상 밖의 돌발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 시위대의 접근을 원천 봉쇄하고자 하는 경찰병력의 과잉 대응으로 시위의 양상이 폭력화되면 관광제주의 이미지 훼손은 불가피해진다. 이처럼 특별정상회의가 시위의 영향으로 평가절하 되면 중앙정부로서는 제주도를 대상으로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결국 중앙정부로서는 제주도에 대한 지원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책임을 묻게 된다면 국제자유도시를 지향하는 제주의 비전은 실현성이 불투명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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