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직 칼럼] 느림의 미학과 풍광을 즐길 수 있는 도로 필요
우리 제주 땅이 사는 사람 수에 비해 전국에서 가장 많은 도로를 가지고 있으며 면적으로 비교해도 광역시를 제하면 엄밀한 의미에서 가장 높은 도로 밀도를 가진 곳이 제주도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아직 제주에 길이 모자란다고 생각들을 하는지 새 길을 뚫고 옛 길들은 넓히고 곧게 펴는 작업을 제주 곳곳에서 하느라 숲이며 논밭이며 사방이 파헤쳐져 땅과 자연이 신음하고 있습니다.
선정 이유 중에 하나가 도로의 포장율이 가장 낮고 곧고 넓은 길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한번은 춘천에서 화천을 가면서 강줄기를 따라 나 있는 도로를 타고 가본 적이 있었습니다.
왼쪽은 산 오른쪽은 강의 절경이 보이고 길은 위 아래 좌우로 계속 구비치고 있어 속도를 낼 수도 없었고 졸 짬도 주질 않아 오히려 직선의 고속도로를 달리는 것보다 안전하고 운치 있는 길은 이런 길이겠구나 생각을 해본 적이 있었습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이 길을 최고의 드라이브 코스로 말하고들 있다 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속도보다는 느림과 풍광을 즐기며 쉬엄쉬엄 굽이굽이 갈수 있는 5.16 도로 같은 길이 제주의 관광산업에 더 보탬이 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남쪽에서부터 시작되었던 5.16 도로 확장 사업도 제주의 미래와 한라산의 수많은 생명체들, 그리고 5.16 도로를 싸고도는 가로수 거목들을 생각한다면 더는 진행하지 말고 그 정도에서 그쳤으면 하는 마음 정말 간절합니다.
그러나 오랜 시간 공들여 잘 가꾼 친환경 농지며 과수원과 숲, 그리고 지하수의 숨골이라고 할 수 있는 곶자왈을 밀어부쳐 도로를 만들지 않아도 기존 우회도로의 확장 같은 대안이 있는 조천 우회도로 신설 계획은 정말 이 도로의 신설이 제주민의 삶을 위한 것이었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길이라는 것이 기본적으로 그 지역 주민이 가장 먼저 필요를 느껴 만들어 지는 것이 당연 한 것인데도 신설지역 주민 모두가 환경파괴, 상권 붕괴, 침수 피해 예상 등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 반대하고 있는 도로를 굳이 천억이 넘는 국고를 들여 개설하려는 국토개발청의 의도를 그들이 내세우는 교통량의 소통과 농·수·축산물의 수송을 고려한다 하더라도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 많았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잘 포장된 고속화 도로보다 땅 내음을 맡을 수 있고 올래 같은 돌담이 남아 있어 생태적이며 자연이 살아있는 마을 안 오솔길들이 어쩌면 제주 고유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면서 제주의 국제적인 관광 산업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하드 인프라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벌써 제주의 도로 면적이 마라도 면적의 133배를 넘어 섰다고 합니다.
이러다간 아스팔트 포장도로가 아름다운 제주 섬의 숨통을 모두 덮어버리는 것은 아닌지 심히 걱정이 됩니다.
신설하려던 그 길이 정말 제주인의 삶을 위해 꼭 필요한 길이었다면 길의 신설을 공포하기 전에 더 신중한 검토와 다각적인 의견 수렴이 있었어야 했을 것입니다.
국토 개발청의 조천우회도로 백지화 발표로 인해 그간 도로 건설의 준비 단계로 환경영향 평가와 기초 설계를 위한 적잖은 비용을 모두 날리게 되었다 손 치더라도 이번 결정은 제주의 미래를 위해서 잘 된 결정이었다고 생각합니다.